[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푸바오앓이와 ‘전지적 푸바오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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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푸바오앓이와 ‘전지적 푸바오 시점’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4.04.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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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푸바오가 한국을 떠난 지 열흘이 훌쩍 넘었지만 ‘푸바오앓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 계속 앞구르기를 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이에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강철원 사육사의 설명에 안도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최근 영상에서 먹방요정답게 잘 먹고, 중국 사육사가 손을 만져도 안정적인 모습인걸 보면 바뀐 환경에도 잘 적응 중인 것 같다. 맹수인 판다가 사람에게 손을 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교감’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Adorable)’이라는 제목으로 푸바오의 중국 도착 소식 기사와 사진이 실리기도 했고, 중국팬이 사비를 들여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푸바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응원 광고를 띄우기도 했다. 그야말로 K팝 스타 부럽지 않은 판다다.

이제는 사생팬까지 등장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푸바오가 있는 쓰촨성 워룽 선수핑 기지 몰카 영상과 사진이 게재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푸바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반가움도 잠시, 사생팬에 의한 ‘사육사 학대’가 아니냐는 비판도 따른다. 푸바오의 별명 중 하나인 ‘슈푸스타’다운 존재감이라고 하기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현상임에 분명하다. 

행복을 주는 보물, 푸바오의 1354일 판생 1막

푸바오의 랜선 이모로 지낸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마음이 공허할 때, 그리고 불면의 밤에도 푸바오와 함께 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고, 때로 힘든 시간들에 심리적 안정제가 돼 주기도 했다. 푸멍(푸바오+멍때리기)하는 순간만큼은 세상걱정근심이 잊혀졌다. 판다에게 위로 받을 줄이야. 우연히 접하게 된 영상에 빠져 푸덕이(푸바오 덕후)가 되기까지 푸바오는 이미 심리적으로 반려동물과 같은 존재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애니피(animal therapy)’ 효과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자연번식을 통해 태어난 최초의 판다 푸바오는 전체 1900여 마리의 판다 가운데 유일하게 ‘성장서사’를 지켜볼 수 있었던 존재다.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의 만남부터 오매불망 기다리던 푸바오의 탄생, 그리고 성장에는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새끼를 돌보고 때론 훈육할 줄 아는 아이바오의 모성애와 공동육아를 담당한 강철원(강바오), 송영관(송바오) 두 사육사의 헌신이 빚어낸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자리하고 있다.

장난끼 가득한 푸바오와 할부지로 불리는 사육사들의 케미는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 MSG 첨가 없는 순한 맛 그 자체였고, 단절과 해체의 시대에 이들 ‘바오가족’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과 감동을 선사했다. 관련 영상이 이미 중국인들에게도 알려지며 푸바오는 지금껏 중국으로 반환된 판다들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특급 관심을 받고 있다.

 푸바오가 일반 관람객들을 만나는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3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강철원 사육사에게 유채꽃 선물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생 2막은 푸바오 시점으로

미중갈등을 계기로 ‘판다외교’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중국은 최근 판다를 돌려받은 미국과 스페인에 각각 판다 한 쌍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판다외교 재개 움직임에는 푸바오의 인기가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푸바오 신드롬’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거액을 지불해야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임대방식에 우리는 푸바오에 이어 2027년 7월 이전에 또 한 번 루이, 후이바오 쌍둥이 판다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성체로서의 삶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이들의 부모인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임대기간도 15년으로 정해져 있다. 모두 반환해야만 하는 선물인 것이다.

며칠 전 푸바오를 서울대공원으로 데려오자는 시민 제안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푸바오를 보고 싶어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주장이겠지만 ‘판다외교’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같은 판다를 돌려보낸 후 재임대 사례가 없을 뿐 더러, 에버랜드 같은 사기업이 아닌 서울시의 세금 투입이 가능해야 하는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민들도 다수 있다.

무엇보다 같은 한국일지라도 서울대공원은 푸바오가 살던 곳이 아니다. 최소한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사육사와의 적응의 문제는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제안이지만 만약 현실이 된다 해도 에버랜드에서 작은 케이지로, 중국의 판다기지를 거쳐 또다시 서울대공원이라니, 새로운 곳에서 적응 중인 푸바오에게 멀미날 일이지 싶다.

판생 1막을 통해 푸바오는 우리에게 위로와 큰 행복을 주었다. 그렇다면 성체로서 사회적 만남을 가져야 하는 판생 2막은 인간 시점이 아닌, ‘전지적 푸바오 시점’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안타까운 건 판다외교도, 푸바오앓이에서 비롯된 서울대공원 논쟁도 최고의 영장류학자 드 발이 말했던 ‘동물 중심의 의인화’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다는 거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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