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올해 들어 주로 1300원~1350원 사이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4월 초부터 빠르게 상승해 4월 15일에는 1380원 위까지 뛰어 올랐다.
환율 급등과 함께 증시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3%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장기국채 금리도 3.5%를 넘어섰다. 원화 표시 자산 가격이 동시에 약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달러화의 강세를 들 수 있다. 달러 지수는 3월 102에서 최근 105.8까지 급등한 상태인데,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뒤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등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지자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빠르게 강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연준의 통화 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는 이제 올해 중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연결되면서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통화정책 기대 변화는 결국 물가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단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가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 3.5%를 기록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연준의 예상과 달리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현재 2.4% 대인 PCE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에 도달하기까지 더 오랜 기간의 긴축 기조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그 자체의 위험도 있지만, 잠재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으로도 지목되며 물가 기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은 원자재 공급망의 훼손 가능성과 함께 언제든 자원 무기화 현상이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자체가 물가를 끌어 올리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달러화 강세보다 과도한 원화 약세
그런데 우리나라와 관련해 더 큰 문제는 달러화 강세 압력과 함께 내부적으로 그 이상의 원화 약세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 이후 달러화 지수 상승률은 6% 정도인데, 원달러 환율 상승률은 10%에 달한다. 유로화나 엔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약한 모습인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한계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부동산 시장 불안과 대규모의 변동금리형 가계 부채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고, 이러한 구조는 한국은행이 물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금리 인상 만으로도 내수 소비는 뚜렷한 침체를 겪고 있고, 부동산 시장의 위험 역시 작지 않은데,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긴축을 결정하긴 어렵다.
반면 금리 인하는 지금도 빠르게 오르는 환율을 더 끌어 올릴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수출 제조업체에 일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물가 상승이 가팔라지며 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 부양 효과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해도 플러스마이너스 효과가 크고, 그렇기 때문에 정책 결정 자체가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외환시장 참가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점도 이유다. 주요 원자재 중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질 때 원화 가치 변동성이 더 큰 것은 우리나라 통화가 여전히 이머징 국가 통화로 인식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민감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유가 상승은 다수의 주요 통화에 실물 대비 근본적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동하지만, 환율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인도 등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통화 가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정책 불확실성까지 커져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치권은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는데, 이러한 정책들 중에는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책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필요한 정책들이겠지만, 규모나 정책 사용 후 전개될 유동성 급증 현상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게다가 통화정책적으로 충분한 긴축이나 완화를 못 하며, 통제할 수 없는 원자재 가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경제 구조 하에서 이러한 우려는 더더욱 크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심각 수준'으로 이어지진 않을 듯
물론 아직까지는 이번 원화 가치 급락이 계속 이어지면서 외환위기가 나타난다거나, 급격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통제할 수 없는 원화 자산 가치 급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일단 높은 물가 자체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내수를 위축시키고 있어 올해 하반기에 물가는 다시 하락세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려만큼 물가의 급등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또한 이스라엘-이란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국제 원유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글로벌 수요 측면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가 지금과 같은 원화 가치 불안 상황에서 이를 더 자극할 만한 정책을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4월은 이미 위축된 심리들로 인해 원화와 원화 자산의 가격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저가 매수의 시점으로 판단하지만, 급하게 서둘면 어려운 시기가 길어질 수 있다. 정부든 국회든 투자자든 모두 신중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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