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가야의 실체…이번엔 아라가야 왕궁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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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가야의 실체…이번엔 아라가야 왕궁터 발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6.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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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서 대규모 토성과 왕성 처음 확인…막강한 정치권력 증거

 

우리나라 고대에 경남 함안에 아라가야[(阿羅伽倻)라는 소국이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서엔 흔적만 나타나고, 일본 고대사서인 「일본서기」엔 이 나라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 기이편 5가야조에는 아야가야(阿耶伽耶), 「삼국사기」 지리지 함안군조에는 아시량국(阿尸良國) 혹은 아나가야(阿那加耶), 「광개토왕릉비」와 「일본서기」에는 안라(安羅)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온다. 중국인 진수(陳壽 : 233∼297)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전하는 변한 12국의 하나인 안야국(安邪國)도 같은 나라로 추정된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해오지만 음운상 모두 비슷하다. 이들 명칭이 모두 아라가야를 지칭하며, 위치는 현재 경남 함안군으로 비정된다.

아라가야는 문헌을 통해 볼 때, 가야 전·후기를 거쳐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을 이루었고, 6세기에는 신라, 백제, 왜와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우리 고대사의 주역을 담당했다.

 

▲ 발굴조사지역 전경(함안군) /문화재청

 

역사서에 모호하게 드러나 있는 아라가야의 왕궁터가 발굴되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부터 경남 함안군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펼쳐 이 곳이 아라가야의 왕성터라고 확인했다.

발굴지에서는 ▲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木柵, 울타리) 시설 ▲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의 각종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토성은 그동안 가야권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비교할 때, 축조기법과 규모에서 사례를 찾을수 없는 특히함이 드러났다.

흙을 쌓는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축조 공정마다 나무기둥(목주, 木柱)을 설치했으며, 판축 과정에서 흙을 쌓아 다지는 등 매우 정교한 축조기법을 사용했다. 성벽 상부에는 2열의 나무기둥이 확인되는데,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추정된다.

토성의 규모는 현재 조사구역(2필지, 약 1,300㎡) 내에 한정 짓는다면, 전체 높이는 8.5m, 상부 폭은 20m~40m 내외이며, 규모로 치면 동시기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다.

토성 내부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과 함께 건물터, 구덩이(수혈, 竪穴) 등이 같이 발견되었다. 건물터는 현재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상건물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조성한 구덩이는 긴네모꼴이며 용도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구덩이 안에서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고, 주로 고분 등 의례 공간에서 나오는 통형기대(筒形器臺, 원통 모양 그릇받침)가 출토되어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파수부완(把手附盌, 손잡이 달린 완), 붉은색의 연질토기 등이 구덩이에서 나왔는데, 이 유물들은 건물터 내에서도 발견됐다.

토기 조각들은 대체로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의 유물들로, 토성의 축조와 사용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시기는 아라가야 세력이 대형 고총고분을 조성하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하게 교섭을 전개하였던 전성기에 해당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 권력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로서, 아라가야가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하였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본서기」 흠명기 544년과 552년 기록에 등장하는 ‘안라왕’(安羅王, 아라가야(安羅)의 임금)의 실제 거주 공간을 추정할 수 있다.

 

▲ 발굴조사지역 전경(함안군) /문화재청

 

그동안 함안군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邑誌)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또 이곳은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도 아직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까지 실질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체를 밝힐 수 없었다.

이번에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왕성과 관련된 시설을 확인하면서 전성기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의 실체에 다가가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발굴팀은 평가했다.

 

▲ 발굴조사지역 전경(함안군) /문화재청
▲ 출토유물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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