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흥미로운 한일전이 벌어지고 있다. MBN의 <한일가왕전>이 그것이다. <한일가왕전>은 같은 방송사의 <현역가왕>에서 선발된 7명의 한국 가수와 일본의 위성 방송인 WOWOW와 OTT인 ABEMA에서 방영된 <트롯걸스재팬>에서 선발된 7명의 일본 가수가 벌이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지난 2일 방영된 <한일가왕전> 첫 회에서는 양국 가수들을 소개하는 한편 탐색전을 벌였다. 여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그랬듯이 출연자들의 서사를 쌓기 시작했고 국가 대항전이니만큼 대결 구도, 특히 이미지가 겹치는 참가자들의 라이벌 구도나 갈등을 의도하는 듯 보였다.
일본의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
<한일가왕전> 제작진은 프로그램 소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트롯 국가대표 Top7이 펼치는 한일 음악 국가 대항전’이라는 표현을 썼고, 일본 진출을 통해 해외로 뻗어 나가는 K-트로트의 위상 상승을 꾀한다고 기획 의도를 내세우기도 했다. 즉 ‘한국의 트로트’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일본 측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은 ‘트로트’ 혹은 ‘트롯’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엔카’와 같은 의미로 여기는 듯했다. 트로트를 ‘한국어로 부르는 한국적 엔카’라는 의미 정도로.
사실 <트롯걸스재팬>의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참가자들이 부른 엔카는 일본어로 부르는 트로트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비슷하게 들린다. 이런 면에서 한국인들도 엔카를 ‘일본어로 부르는 일본적 트로트’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엔카는 무엇이고 트로트는 무엇일까? 찾아보니 많지는 않아도 트로트와 엔카를 비교 연구한 학술 문헌이 꽤 있었다. 한 편의 칼럼으로 많은 내용을 종합할 순 없지만, 대략의 개요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 오카야마대학의 고바야시 다카유키 교수가 그의 저서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에서 일본 측 문헌을 통해 종합한 바를 요약하면 엔카는 '근대 일본의 대중음악 즉 가요곡의 한 장르인 일본풍의 음악'이다.
그런데 엔카가 처음부터 엔카라고 불린 건 아니었다. 1960년대 이후 일본 대중음악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오늘날 엔카라고 부르는 고전적 대중음악의 장르에 ‘엔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엔카라는 명칭이 정착되자 과거에 ‘유행가’ 등으로 불리던 이런 장르의 음악을 소급해서 엔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트로트’ 항목을 보면, 1930년대 중반에 정착된 대중가요 양식으로 신민요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이라고 한다.
반면 일제강점기 대중음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단국대 장유정 교수는 저서와 논문 등에서 트로트를 1910년대에 처음 형성되었던 신식의 노래라고 설명한다.
트로트 역시 처음부터 트로트라 불린 건 아니었다. 장유정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에 장르 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해 1960년대에 정착되었다고 본다. 그전에는 대중가요 혹은 유행가 정도로 불렸다고 한다. 트로트가 장르 이름으로 정착된 후 일제강점기 등 과거 같은 장르의 음악을 트로트로 부르게 되었다고. 다른 연구자들도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경향이다.
닮은 듯 다른 엔카와 트로트
그렇다면 엔카와 트로트가 비슷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음악적 요소와 구성에 답이 있다.
우선 리듬이 비슷하다. 엔카와 트로트는 대개 2박자 구조다. 빠르기는 노래마다 다르지만 ‘꿍짝 꿍짝’하는 리듬이 깔린다. 이 리듬은 20세기 초반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 유행하던 ‘폭스트롯(foxtrot)’이라는 사교춤의 춤곡에서 유래했다.
즉 ‘트로트’라는 명칭은 폭스트롯에서 파생되었다. 물론 엔카나 트로트에는 왈츠풍의 3박자 계열의 노래도 많지만 이 장르의 분위기는 ‘꿍짝 꿍짝’하는 리듬이 장악한 면이 크다.
멜로디 진행 또한 비슷하게 들린다. 정확히는 고전적 엔카와 전통 트로트에서 사용하는 음계(scale)가 비슷하다.
일본 측 학자들은 엔카에 쓰인 음계를 ‘요나누키 음계(ヨナ抜き音階)’라 정의한다. 일본의 전통적 선율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그런데 ‘요나누키’라는 용어 자체가 8음계에서 네 번째 음인 ‘파’와 일곱 번째 음인 ‘시’를 뺐다는 의미다. 즉 ‘도레미솔라’의 5음계다.
한국의 트로트에서도 5음계의 곡조가 많다. 한국의 전통 가락 또한 5음계가 기본이다. 그런데 과거 한국에서 ‘트로트 왜색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일본의 요나누키 음계를 썼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사실 5음계에서 단조 진행을 ‘라도레미솔’이 아닌 ‘라시도미파’로 변형하면 이색적으로 들린다. 다만 일본풍으로 들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 면에서 엔카가 트로트의 원류라고 보는 연구가 많다. 비단 일본 학자뿐 아니라 한국의 학자도 있었고 심지어 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기도 하다. <표준국어대사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엔카가 트로트의 원류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전문가가 아닌 일본인 중에도 트로트가 엔카에서 유래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뿌린 엔카의 씨가 트로트라는 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로트를 두고 환류문화(還流文化) 담론이 있기도 했다. 즉 되돌아온 문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두 나라 연구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엔카와 트로트의 원류가 누구인지 꼽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양국의 음악이 서로에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 온 건 사실이다.
이를 ‘고바야시 다카유키’ 교수는 “대중음악은 ‘토착적’인 것과 ‘월경적’인 것이 결합해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엔카와 트로트가 내면적으로는 모국의 전통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면이 있고, 형식적으로는 서구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트로트가 엔카에 영향을 받고 엔카 또한 트로트에 영향을 받는 등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해 보인다. 장유정 교수 등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다.
환류(還流) 혹은 한류(韓流)
한편, <한일가왕전> 홍보를 보면 한국 측 제작진은 트로트를 한류로 포장하려는 듯하고, 일본 측 제작진은 트로트를 엔카에서 유래한 ‘환류문화’로 인식하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환류문화(還流文化)의 일본어 발음은 한류문화(韓流文化)의 그것과 같다.
이렇듯 <한일가왕전>은 한국과 일본의 대항전이라는 콘셉트에 트로트와 엔카라는 양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까지 더해져 화제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시청률 또한 좋게 출발했다. 지난 <한일가왕전> 1회의 분당 최고 시청률은 12.5%였고 전국 시청률은 11.9%(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화요일 지상파-종편-케이블 포함 전 채널 1위를 석권했다. <한일가왕전>이 계속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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