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살리려다 외국기업만 득볼 것”…소비자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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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살리려다 외국기업만 득볼 것”…소비자 무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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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의결

 

스세권, 맥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역세권이란 용어에 스타벅스, 맥도널드를 붙인 합성어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가까이 있는 동네에 젊은이들이 몰리고 주변 상가가 번창한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토종 브랜드인 카페베네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를 주도한 적이 있다. 세계시장을 휘어잡던 스타벅스도 한국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카페베네는 죽었다. 경영자의 판단 오류도 있지만, 정부의 규제를 이기지 못한 탓이 크다.

임영태 프랜차이즈산업협회 사무총장이 EBN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만 해도 카페베네가 스타벅스보다 매장 수나 매출이 더 컸다. 그런데 2013년 가맹사업법 개정으로 거리제한이 생기면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카페베네는 가맹점간 거리를 둬야 해서 원하는 지점에 출점을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직영점 체제인 스타벅스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다. 결국 핵심상권을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인근의 카페베네 매장은 모두 고사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이후 다 알다시피 스타벅스가 시장을 잠식했다"고 말했다. [참고기사: "토종 역차별, 카페베네 죽고 스타벅스 1위 됐다"]

 

2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을 의결했다. 일반법도 아니고 특별법으로 대기업들이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는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 것이다.

음식점, 식품업 등이 주요 대상업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별법은 대통령 공포를 거쳐 이르면 올해 말 시행될 예정이다. 소상공인은 물론 홍종학 장관이 이끄는 중소벤처기업부가 환영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에서 판을 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법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국내 대기업에겐 족쇄가 되겠지만, 외국 기업들의 진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국내 대기업이 후퇴한 자리를 소상공인들이 차지하기보다는 스타벅스와 맥도널드처럼 해외 공룡들이 그 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크다.

통상마찰의 가능성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여러차례에 걸쳐 시장 경쟁을 방해하는 진입 장벽을 걷어낼 것을 권고했다.

또 업종이 무분별하게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 신청자에 대한 자격 제한이 거의 없어 웬만한 소상인도 업종지정을 신청할수 있다. 업종 지정 신청이 무차별로 쇄도할 수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업종을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에 따르면 동반성장위원회가 실태조사와 관련 업계·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안하면, 소상공인·중소·중견·대기업계와 동반위의 추천위원, 공익위원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업종을 지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심의위원회의 전문성과 대표성은 시비를 낳을 소지가 크다. 피해업종이라 주장하는 소상인들이 반대의 결정이 나올 때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2006년에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유사하다. 다만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동반성장의 요구가 높을 때, 한 경제관료는 이런 예를 든 적이 있다. 지역의 중소 두부공장을 육성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대기업 납품을 폐지하고 주둔지 근처에서 생산된 두부를 조달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전방 군인들이 집단 배탈이 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값싸고 질 좋은 대기업의 두부가 있는데, 중소기업을 돕는답시고 애꿎은 군인들만 배탈난 것이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 소비자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득하고 싶은데,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위해 취향과 입맛을 포기해야 할 처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특별법을 약자를 위한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법안 통과후 낸 보도자료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대기업 계열사가 477개 증가했는데, 이중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분야에 진출한 기업은 387개사(81.1%)에 이른다는 점을 내세웠다. 따라서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아 소상공인의 생업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법안 발의는 더불어민주당의 이훈 의원과 자유한국당의 정유섭 의원이 했다. 포퓰리즘엔 여야가, 좌우가 따로 없음을 보여준다.

 

▲ /자료:중소벤처기업부

 

특별법(안) 주요 내용

 

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에 생계형 소상공인 보호·육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함(안 제5조)

②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및 해제 등의 심의·의결을 위하여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소속으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 구성·운영(안 제6조)

③ 소상공인단체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게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고시(안 제7조)

* 대상 업종 : ①상생협력법 상 적합업종 합의도출 후 그 합의 기간이 1년 이내 만료되는 업종, ②상생협력법 상 적합업종 합의도출 중 시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업종, ③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기간이 1년이내 종료되는 업종

④ 대기업등은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하여서는 아니되며,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소비자 후생 및 관련 산업에의 영향을 고려하여 대기업등의 사업 인수·개시 또는 확장을 승인할 수 있음(안 제8조)

⑤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한 대기업등에 대해 시정명령, 공표(안 제9조)

⑥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시정명령을 받은 후 일정기간 동안 이행하지 않는 대기업등에 대해 위반행위 관련 매출액의 5%이내 이행강제금 부과·징수(안 제10조)

⑦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고시 당시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등에 대해 영업범위 제한 권고(안 제11조)

⑧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및 해제를 위한 실태 파악 필요 시 등에 관련 단체 및 대기업등에게 자료제출 요구 및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현장조사(안 제14조)

* 동반성장위원회도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시 대기업등, 소상공인단체에 대해 자료제출 요구 가능

⑨ 제8조제1항을 위반하여 생계형 적합업종의 사업을 인수·개시 또는 확장한 자, 거짓 또는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제8조제2항에 따른 승인을 받은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함(안 제15조)

⑩ 이 법 시행일 이전에 적합업종 합의 기간이 만료된 업종·품목은 이 법 시행일로부터 1년까지의 기간 내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 가능(부칙 제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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