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 마르크스」…인류의 재앙 예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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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 마르크스」…인류의 재앙 예상했을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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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주년 작품…더이상 환상에 끌려가지 않은 듯 흥행 실패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5. 5. ~1883. 3. 14).

두 유태인의 유령이 세계를 움직였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칼 마르크스다.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두 인물의 신봉자들은 옳은 방향이든, 그릇된 방향이든 세상을 흔들었다. 예수의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서양사의 중심이었고, 마르크스의 공상주의는 200년 동안 서양은 물론 동양의 격변의 한가운데 선 중심사상이었다.

올해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그의 고향인 독일 라인주 트리어(Trier) 시내에 거대한 마르크스 동상이 세워졌다. 사회주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는 중국이 기증했는데, 트리어시에서 그 동상을 받아들일지 여부로 논란이 일었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인류에 큰 재앙을 불러왔고 더구나 중국이 선물한 것이었기에 논쟁이 있었지만, 트리어 시의회는 동상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중국에서도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1시간여에 걸친 연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당·국가 지도사상으로 사상적 무기를 제공했고 중국을 낡은 동방대국에서 인류사상 일찍이 없던 발전의 기적을 이루게 했다”며 “당이 변함없이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지혜와 이론역량을 흡수하고 ‘신시대 중국적 사회주의’를 견지·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산업화가 성숙한 서유럽보다는 낙후한 러시아에서 먼저 실현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인류역사상 최초로 건설된 공산주의 국가는 1991년 소련 해체까지 74년간 실패로 귀결되었다. 북한에서 1945년 공산국가가 건설되어 오늘까지 73년간 이어져, 조만간 소련의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북한 공산체제의 3대 세습을 인정했을까.

 

▲ 영화의 한 장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네이버 영화

 

영화 「청년 마르크스」를 보았다.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26일까지 누적 관람객 4,000명에 미치지 못하니, 흥행에는 실패한 것 같다. 하지만 젊은 한때 마르크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써 옛 추억을 더듬어볼 기회가 되었다.

 

▲ 영화의 한 장면, 마르크스와 부인 예니 /네이버 영화

 

스토리는 다큐멘터리성으로 전개된다.

1844년 칼 마르크스는 아내 예니와 함께 프랑스 망명길에 오른다. 공장주의 아들이면서도 노동자 계급에 대해 연구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나게 된다. 엥겔스는 친구이자 후원자로서 마르크스로 하여금 세계 변혁의 비전을 구상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가 만든 수탈구조 속에서 자본가의 횡포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제도를 지키기 위한 권력의 검열과 급습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닥쳐온다.

당시 사회변혁을 주도하던 푸르동, 바이틀링 등은 무정부주의 또는 공상적 사회주의에 입각해 대중을 선동한다. 마르크스는 이에 맞서 과학적 공산주의를 제창한다. 노동이 생산의 근본요소이며,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형성한 생산관계의 고리를 끊기 위해 세계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며 1848년 역사적인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다.

영화는 1844년에서 1848년까지, 마르크스 나이로 치면 26세에서 30세까지의 짧은 기간을 다룬다. 앞서 그가 자라는 과정과, 후에 「자본론」이 나오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청년 마르크스’라고 제목을 지은 것 같다.

 

공산당 선언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공산당이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이 이 유령을… "으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끝맺는다.

필자는 대학시절에 이 공산당 선언을 몰래 읽었다. 한글로 번역된 것을 구하지 못해 영문으로 읽었다. 당시엔 불온서적이었다.

 

▲ 1973~1983년 사이의 공산국가 /위키피디아

 

마르크스가 200년간 인류 역사와 지성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의 삶과 그의 저술은 공산주의자들의 선망이자 추종의 대상이었고, 그를 반대하는 이론가들은 그의 저술 하나하나 논박했다. 그의 이론을 구체화한 공산당, 사회주의 정당이 생겨났고, 2차 대전 이후 동서냉전은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 주의의 대결이기도 했다.

▲ 마르크스의 부인 베스트팔렌 예니 /위키피디아

마르크스는 우리 근현대사에도 깊이 뿌리 내렸다. 일제치하 항일 운동세력에 마르크스주의는 구한말의 기독교만큼이나, 새로운 새계를 열어주었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 상당수 독립운동세력들이 공산주의로 경도되었다. 해방 이후 분단시절에 많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에 심취했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애매한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이제 마르크스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공산주의 국가는 무너지거나 변했다. 구소련은 해체되어 관으로 들어갔고, 중국 공산당은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베트남, 쿠바도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했다. 오직 남은 곳은 북한이다.

북한이 몸부림친다.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비천하다. 이념이 무엇이길래, 인민을 가난에 굶주리게 하고 독재자 일가가 3대째 부귀영화를 누리는가. 청년 칼 마르크스가 원하던 세상이 그런 곳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밋밋하고 재미없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더 이상 공산주의 환상이 매력을 끌지 못하기에 흥행에 실패했을 것이다.

 

▲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칼 마르크스 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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