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 뜬금없는 확신보다 0.1% 돌발변수에 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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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뜬금없는 확신보다 0.1% 돌발변수에 긴장해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25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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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의지가 대화 재개의 관건…자칫 중국이 간여할수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번주초 워싱턴으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북미정상회담은 지금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북 문제로 늘상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평양에 가 김정은을 만나고 미국으로 날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던 사람이니,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슨 근거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의심도 들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이 우리 정부를 향해 “제 정신 없이 놀아댄다”고 비난하고 북한 김계관이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 때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북 회담을 개최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먼저 말한 사람들이 북한이다. 김계관에 이어 최선희가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운을 뗐다.

 

트럼프가 6월 12일로 예정되었던 싱가포르 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하자 청와대가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잠도 자지 못하고 미국까지 가서 트럼프를 만나고 돌아왔는데, 귀국 다음날 트럼프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북한, 미국, 우리정부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정의용 실장이 회담 성사 가능성이 99.9%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했으니, 정부의 낙관론을 짐작할만하다.

청와대 참모들의 이런 낙관론은 좋은 것만 보고 불편한 것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고의 편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미-북간에 날카로운 독설이 오가는데 우리 정부만 좋은 얘기만 들고 판단했던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서한이 공개된 후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고 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려 하나. 북한이 완전하게 핵 무기를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트럼프의 수뇌들을 맹비난할 때에 북한의 저의를 읽을수 있고, 미국의 반응을 예측할수 있지 않았나. 못 쓰게 된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것으로, 북한은 1단계 경제제재를 풀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두 번이나 평양을 다녀갔다. 첫 번째는 극비리에 실무협상차 갔고, 두 번째는 억류자 3명을 풀어달라고 할 겸 해서 실무적인 협상을 했다. 그때 미국의 원칙을 설명했는데, 북한이 실망한 것 같다. 북한은 핵 무기와 시설을 조금씩 폐기하면서 시간을 끄는 살라미 전술을 쓰려 한데 비해 미국은 단번에 핵 무기와 시설을 없애라는 것의 차이였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다. 북한은 시간을 끌며 당장에 급한 경제제재를 풀어 인민들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미북 관계가 틀어질 경우 다시 핵으로 무장하려던 속셈이고, 미국은 이 속셈을 들여다 본 것이다.

 

당황한 것은 북한인 것 같다.

미국과 맞짱 뜨면 큰 덩치의 골리앗이 밀릴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김계관이니 최선희를 앞세워 돌을 던지면 골리앗이 움찔하고 물러날줄 알았을 것이다. 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는 김정은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위임에 따른 담화’를 내고 한발 물러섰다. 그 위임이란 김정은의 위임임은 쉽게 알수 있다. 김계관은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선 당황함과 다급함이 묻어난다.

 

회담이 다시 열릴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도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언젠가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단 조건이 있다. 트럼프는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밝혔다.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 타결 방식, 즉 한꺼번에 핵무기를 폐기하는 방식을 북한이 받아들일 경우 회담을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6월 12일 정상회담이 물건너 가더라도 그 이후에 미북간 실무 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있다. 실무협상이 마무리되면 정상회담이 열릴수도 있다.

다시 회담이 열릴 경우 누가 중재자가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동안은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실패 과정을 보면서 중국이 끼어들 가능성이 크다. 태영호 전 북한 주영국공사는 자신의 저술에서 중국이 북한 핵무장을 가장 견제한다고 했다. 리비아의 핵 협상에서 영국의 토니 블레어 내각이 중재에 나섰다. 중국이 중재자로 나설 경우 한반도 상황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참모들이 뜬금 없는 낙관론을 정리하고 냉정하게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99.9%의 뜬금없는 확신보다는 0.1%의 돌발변수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백악관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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