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수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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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수도인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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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이 모두 점령한 곳…유태교와 기독교, 이슬람이 공존하는 곳

 

예루살렘 이스라엘 점령 지역에 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개관하자, 팔레스타인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이날 개관식 행사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유태인인 재러드 쿠슈너, 결혼 후 유태교로 개종한 장녀 이방카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이스라엘에선 베냐민 베타냐후 총리 등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뒀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12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 이전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유대교 뿐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로 꼽히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자국 수도로 주장해왔다. 유엔은 1947년 11월 예루살렘의 종교적 특수성을 감안해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규정한 바 있다.

미국이 예루살렘 대사관을 개관하자, 이스라엘이 환호하는 사이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피로 얼룩졌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발포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에 의해 팔레스타인 시위대 52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

 

▲ 예루살렘 전경 /위키피디아

 

그러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인가.

물론 예루살렘은 2천년 동안 전세계를 떠돌며 전전한 유태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다. 그들은 언젠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겠다는 뜻을 마음속에 품고 객지에서의 고난과 각국의 탄압을 이겨냈다. 또한 성경에 예수가 마지막으로 설교하고 죽은 곳도 예루살렘이다. 기독교가 지배 종교인 서방 국가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서도 예루살렘은 성지로 규정되어 있어 아랍인들에겐 양보할수 없는 도시다. 예루살렘의 오랜 역사에서 유태인이 장악한 500년 이외에는 아랍인과 이슬람 세력이 지배해왔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수도이기 어렵다.

 

예루살렘에 알려진 것은 BC 19세기 이집트 중왕조 시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4천년이 된 도시다. 사람이 살기는 5천년이 되었다고 한다.

▲ 예루살렘 위치 /김인영

예루살렘의 역사는 중동의 역사다. 고대 가나안, 이집트, 성경시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이슬람의 사라센, 십자군, 몽골, 오스만 투르크, 영국 등 유사 이래 강대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중 유태인이 지배했던 시기는 성경시대 500년 정도와 현대 70년 정도에 불과하다. 20세기 중반 이후엔 예루살렘의 절반만 이스라엘이 영토화하고 있을 뿐이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을 의미한다. 어원에 대해서는 고대 가나안 신앙에 등장하는 평화의 신 샬림(Shalim)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인들은 이 도시를 알쿠드스(al-Quds)라고 하는데,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다. 알쿠드스라는 지명은 9세기에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부터 등장했다.

예루살렘이 오늘날과 같은 도시의 형태를 갖춘 것은 BC 약 1,000년경에 다윗 왕이 구릉에 위치한 '시온의 성'을 정복한 후 유대인들이 그 곳을 '다윗의 성'이라 부르며 수도이자 신앙의 도시로 만들었다. 다윗이 죽은후 솔로몬왕은 도시에 왕궁과 신전 및 성채를 새로 건설하고 언약궤를 신전 안에 보관했다.

이스라엘 왕국이 분단된 후 남부 유다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BC 587년 유다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한 이후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된다. 페르시아 시절, 로마시절에 유태인들이 일부 예루살렘에 돌아와 도시와 성전을 재건한 적이 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로마 시절에는 기독교화되며 교화가 세워졌고, 아랍인들이 지배하면서 코란에 근거해 이슬람 성지가 되었다. 1099년 유럽의 기독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해 성채를 장악했지만 1187년 이집트에 내주었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등 기독교 국가들이 성지 관리권으로 논란의 초점이 되었고, 1차 대전중인 1917년 영국이 점령, 위임통치를 했다.

이 무렵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자”며 이스라엘에 몰려들었고, 2차 대전이 끝난후 1948년 이스라엘에 돌아온 유태인들이 영국과 전투를 벌여 독립을 쟁취했다.

 

▲ 예루살렘 통치 시기 /위키피디아

 

이스라엘 독립 당시 예루살렘은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되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했다. 1980년 7월 30일 이스라엘 국회는 예루살렘 전체를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1980년 8월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며 회원국들에게 외교관을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478호 결의, 찬성 14, 반대 0, 기권 1(미국)) 이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의 각국 대사관과 대표부는 텔아비브에 상주하고 있으며,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행정수도로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인정 문제는 공화당의 주류인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들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데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트럼프 사위인 쿠슈너, 데이비드 프리드먼 이스라엘 대사 등 친이스라엘 인사들이 대통령 주위에서 강하게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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