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린 칠궁에서 장희빈과 최숙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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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열린 칠궁에서 장희빈과 최숙빈 만나 보자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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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6월 시범개방 거쳐 내년부터 전면 개방…7명 후궁 신위 모셔

 

조선 제19대 숙종(재위기간 1674∼1720) 때에 경신(1680), 기사(1689), 갑술(1694)의 세차례 환국(정권교체)을 거치면서 당쟁이 최고조로 달했다. 그중 기사, 갑술 두 환국은 숙종과 희빈 장씨, 숙빈 최씨의 사랑 싸움과 얽히며 전개돼 드라마와 영화, 소설의 주제로 많이 다뤄졌다.

연적 관계인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자식들은 숙종 다음 임금인 20대 경종, 21대 영조로 이어진다. 조선의 당쟁은 두 여인이 낳은 왕자들의 정통성 논쟁, 왕위 계승전쟁으로 이어졌다.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는 궁중 나인으로 궁궐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張炯)으로, 양반 다음 계급인 중인 가문이었다. 숙종은 재위 10년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씨가 왕자 균을 낳아 주었다. 임금에 오른지 14년만이다. 숙종이 기쁨에 넘쳐 후궁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봉하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서인의 거두 송시열이 반대상소를 올리다 사약을 마시고, 신분 상승으로 노리던 희빈 장씨가 왕비가 된다.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특히 부인을 여럿 둘수 있는 조선의 왕은 한 여자에 매이지 않는다. 인현왕후를 폐위시킨지 5, 6년이 지난 후 어느날 숙종은 궁궐을 거닐다 불켜진 방에서 한 궁녀가 폐비 민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축원을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가 나중에 숙빈 최씨다. 이때가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사랑이 식을 무렵이었다. 숙빈 최씨는 숙종의 아이를 갖는다. 그가 연잉군(나중에 영조)이다.

영조의 어머니 최숙빈은 무수리 출신으로, 희빈 장씨보다 더 낮은 계급이었다. 무수리는 궁중 나인들에게 세숫물을 떠다 바치는 여종을 말한다. 천하디 천한 신분의 여자가 왕자를 낳았다.

두 여인의 질투가 빚어 낸 암투는 장희빈의 몰락으로 귀결되었고, 이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최숙빈이었다.

조선 숙종에서 경종, 정조에 이르기까지 3대 100년에 걸친 당파 싸움과 권력 투쟁은 장희빈과 최숙빈 두 여인의 치열한 사랑싸움의 결과였다. 장희빈은 잠시 정실왕비가 되었다가 쫓겨나 공식적으로 왕비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 임금의 은총을 받은 두 여인은 모두 후궁으로 기록된다.

 

▲ 칠궁내 육상궁 모습 /문화재청

 

아이러니한 것은 치열하게 사랑 싸움을 벌였던 두 후궁의 신위가 한 곳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다. 죽어서 화해하라는 뜻인가. 장소는 지금 청와대 경내인 칠궁(七宮)이다.

칠궁은 조선 시대에 왕이나 추존왕을 낳은 생모이지만, 정식 왕비로 책봉되지 못한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위해 육상궁이란 사당을 지었다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장희빈의 신위를 모신 대빈궁을 지었다. 이에 더해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를 모신 경우궁 등이 추가되면서 현재 총 7개의 궁이 되었다. 이 7개 궁을 통털어 ‘서울 육상궁(毓祥宮)’이라고도 한다.

칠궁 안에 모셔진 7명의 신위는 ①숙종 후궁 영조 생모인 숙빈 최씨(육상궁) ② 숙종 후궁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대빈궁) ③ 영조 후궁 진종 생모인 정빈 이씨(연우궁) ④ 영조 후궁 장조(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선희궁) ⑤ 선조 후궁 원종 생모인 인빈 김씨(저경궁) ⑥ 정조 후궁 순조 생모인 수빈 박씨(경우궁) ⑦ 고중 후궁 영친왕의 생모인 순비 엄씨(덕안궁)다.

 

▲ 영조 후궁 사도세자 생모 모신 영빈 이씨 모신 선희궁 /문화재청

 

칠궁은 1966년 사적 14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김신조 일당의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면서 굳게 문을 닫았다. 행정 명칭은 궁정동이다.

궁내에 일곱 후궁의 영가를 만날 수 있다. 대빈궁에 가면 숙종이 내린 독약을 먹지 않기 위해 발악했던 장희빈의 영가를 볼수 있다. 장희빈을 몰락시킨 숙빈 최씨의 영가도 이웃 육상궁에서 만나게 된다.

칠궁은 시크릿 가든이라고 할수 있다. 피비린내 나는 궁정 싸움을 뒤로 하고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정부는 2001년 33년간의 침묵을 깨고 칠궁을 일반에 개방했다. 다만 청와대 관광객에 한해 관림이 허용되었다.

 

▲ 육상궁 외경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앞으로 칠궁을 전면 개방한다는 방침으로 우선 6월에 한해 칠궁을 시범개방키로 했다.

시범 개방기간에는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칠궁만 단독으로 볼수 있다. 한 달간 화~토요일간 매일(일·월요일은 휴궁) 5회(오전 10시‧11시, 오후 2시‧3시‧4시), 회당 60명씩이며, 무료다.

시범개방을 거쳐 7월부터 12월까지는 주중(화~금)에 매일 5회씩 개방되고, 토요일에는 10회로 늘려 개방한다. 7월부터 관람인원도 회당 100명씩으로 늘어난다.

내년 1월부터는 관람객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다시금 추가 확대 개방을 추진할 계획이다.

청와대와 칠궁의 연계관람은 현행대로 청와대 누리집에서 예약하고, 칠궁 단독 관람은 입장일 6일 전에 경복궁 누리집(www.royalpalace.go.kr)에서 사전예약으로 참여할 수 있다.

 

▲ 칭궁내 육상궁의 주(왼쪽 정빈 이씨 오른쪽 숙빈최씨)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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