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흑산」…혼란한 조선말 지식인과 민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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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흑산」…혼란한 조선말 지식인과 민초의 삶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12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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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간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소망

 

김훈은 소설 「黑山」(2011 학고재)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 산다"

 

소설 「흑산」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조선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대신에 그의 둘째 형인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써 내려갔다. 김훈이 집필 후기에서 밝혔듯이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고 나아간 사람”으로 정약용보다 정약전을 선택한 것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2012,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을 중심으로 형제들을 두룬 것과 대조를 이룬다.

 

▲ /책표지

김훈의 「흑산」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과 그의 사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이 성리학의 질서에 회의를 느끼며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다가 고초를 겪은 과정을 그렸다. 여기에 역사 기록에 한줄도 나오지 않는 민초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해서 말하려 했다.

주인공 정약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조카사위 황사영, 형 정약현, 참형당한 정약종이 정약전 주변을 맴돈다. 동생 정약용은 스치고 지나간다. 김훈의 상상력이 지어낸 조선의 민초들은 그 시대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국연결책 마부 마노리, 정씨 노비에서 면천된 육손이와 김개동, 흑산도 청년 창대와 그의 아버지 장팔수, 조풍헌, 배첩 순매, 흑산도 별장 오칠구, 천주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궁녀 길갈녀, 중국인 신부 주문모, 모집책 젓갈장수 강사녀와 딸, 아리와 어미, 등짐장수 오동희, 옹기장수 최가람이 소설을 풍부하게 해준다. 천주교에 입문했다가 배교하고 포도청의 첩자 노릇을 하는 박차돌, 여동생 박한녀, 집장사령 오호세 등도 조선시대의 내면 풍경을 이해하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가까운 곳, 남양주시 마재에는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의 네 형제가 살았다. 첫째 정약현은 딸 명련의 남편으로 황사영을 맞는다.

시대는 정조가 죽은 후 순조가 11세로 즉위하고, 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실시하던 때였다. 외척이 준동하고, 노론 벽파가 권력을 다시 잡았다. 그들은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천주교를 끌어들였다. 정약전의 형제들은 당쟁의 피해자였다.

네 명의 정씨 형제는 소용돌이 치는 조선후기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은 천주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약종과 황사영은 죽음으로 맞서면서 끝까지 천주교를 버리지 않았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순교하고자 스스로 결심한 셋째 정약종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

 

진정 작가가 초점을 맞춘 시람은 황사영이다. 정약전의 조카 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는다.

제천 배론 토굴에 숨어있던 황사영은 조여 오는 체포 망에 걸려든다. 포졸과 군관들이 토굴을 덮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야! 알렉시오. 너 황사영이지?"

세례명 알렉시오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고 능지처참을 당한다.

 

▲ 김훈/책표지

작가는 조선 말기 혼란한 세상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성들의 모습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굴욕을 참으며 새로운 삶을 찾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죽음을 선택하는 이도 있다. 죽음이 곧 삶이라는 김훈식 방정식이다.

민초들이 당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가슴 속에 새겼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소설 속에서 "주여, 주여 하고 부를 때 노비들은 부를 수 있는 제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웠다"라고 묘사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틈틈이 흑산도, 경기 남양 성모성지, 충북 배론 성지 등을 답사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무대는 흑산도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해 절해고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정약전은 이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썼다. 자산어보의 ‘자’(玆)라는 한자도 ‘검다’는 뜻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두에 “‘자’(玆)는 흑(黑)이라는 뜻도 지니므로 자산은 곧 흑산과 같은 말”이라며 “흑산이라는 이름은 음침하고 어두워 두려운 데다가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흑산 대신에 자산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자산이라는 말을 제명(題名)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정약전이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부른 것에 대해 창대에게 말한다.

"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黑은 너무 캄캄하다. 玆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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