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좌파’를 반복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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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좌파’를 반복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09 15: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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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리뷰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 와이즈베리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실린 ‘좌파가 우파보다 정의롭다는 건 편견’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보았다. 미국의 어느 교수가 쓴 책을 토대로 인터뷰한 기사다. 그 책에서는 ‘배려’ ‘공평’ ‘자유’ ‘충성’ ‘권위’ ‘신성’의 6가지 지표를 ‘도덕 기반’이라 제시하고 보수와 진보를 비교하였다고 했다. 좌파(진보라 표현하지 않고)는 여섯 지표 중 ‘충성’ ‘권위’ ‘신성’의 세 가지를 존중하지 않았고, 우파는 여섯 지표 모두를 존중한다고 했다. 그래서 좌파가 정의롭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미국식(이라고 쓰지만, 보수의 관점에서 해석한) ‘충성’ ‘권위’ ‘신성’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고, 단어 자체로만 따진 통계 결과를 본다면 그의 주장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내가 본 신문이 그 책에 나온 주장 일부를 가지고 눈에 띄는 타이틀-그쪽 전문용어인 ‘야마’-을 잡았겠지만, 기사를 읽다 보면 좌파와 우파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쪽 관점에서 이쪽을 보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행간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쪽 관점에서 그쪽을 본다면?

그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어 다시 읽었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다. 미국에서는 2004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6년에 초판이 그리고 2015년에 다시 개정해 나온 책이다. 앞에 언급한 책과 이 책의 연관성은 모두 미국 정치를 크게 두 개로 가르는 ‘보수’와 ‘진보’를 다뤘다는 것이다. 그 책은 보수의 관점에서 ‘도덕심리학자’가 썼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진보의 관점에서 ‘인지언어학자’가 썼다.

미국 UC버클리 교수인 ‘조지 레이코프’는 2004년 공화당의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을 때 이 책을 썼다. 대선 패배의 이유를 보수가 1960년대부터 쌓아온 ‘프레임’ 전략에 진보가 제대로 대응 못 했기 때문이라며, 진보는 ‘프레임’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특히 선거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본인의 연구 분야인 ‘인지언어학’을 이용해 풀어나간다.

 

▲ 조지 레이코프 © georgelakoff.com

 

프레임이 뇌에 박힌 구조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생활 방식을 결정한다”라고 한다.

이를 정치에도 대입할 수 있는데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프레임을 ‘인지과학자’들은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라 하는데, 우리 뇌 안에 있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접근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물을 통해 존재를 알 수 있는 구조물이다. 우리가 알고 행동하는 ‘상식’이나 ‘도덕’의 가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프레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반사작용에 가깝다는 것.

‘구조물’과 ‘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레임’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의 ‘뇌’ 속에 자리 잡은 가치 판단에 관한 굳건한 상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인 ‘보수’와 ‘진보’도 그렇게 자리 잡은 굳건한 상태 즉 ‘프레임’이다.

저자는 모든 정치는 도덕적이라고 전제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이라는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해법을 내놓는 이런 차이를 ‘프레임’으로 설명하며 미국 정치의 두 프레임을 가정(family)의 은유로 설명한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자상한 부모 모델”의 두 가정.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

 

‘엄격한 아버지’라는 은유에서 보듯이 강한 남성이 떠 오른다. 어머니는 언급조차 되지않고 아버지를 도와 가정을 지키는 보조적 역할일 뿐이다. 자녀 역시 엄격한 아버지에게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순종해야 하는 역할. 아버지는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가부장적 역할로 은유 된다. 이런 관점을 정치로 치환하면 ‘보수’의 모습이라고 한다. 강한 권위의 국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니까 국민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 때로는 다수(라고 쓰지만, 소수일 때가 많은)를 위해 희생도 해야 한다.

이런 국가의 역할을 국제관계에 대입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를 보는 관점도 ‘성인국가’와 ‘아동국가’ 혹은 ‘모범국가’나 ‘불량국가’로 나눈다. 그래서 미성숙한 혹은 불량한 다른 나라를 도와준다는 구호 아래 체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상한 부모’라는 단어에는 ‘양성’이 들어가 있다. 이런 가정은 아빠와 엄마(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가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자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교육과 자유로운 삶을 응원한다. 이웃과도 함께 사는 가치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관점을 정치로 치환하면 ‘진보’의 모습이다. 평등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교육과 복지 정책을 펼치며 국제 관계도 동반을 강조하는 친구 국가를 표방한다.

물론 이런 가정에서 자랐다고 그런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미국 정치에 자리 잡고 사회, 교육, 복지 정책 등을 바라보는 두 프레임을 설명하는 은유이다. ‘엄격한 아버지’ 같은 ‘보수’와 ‘자상한 부모’ 같은 ‘진보’. 너무나 다른 배경과 철학을 갖고 있다는 은유. ‘뇌’의 한구석에서 서서히 자리 잡아가는 삶의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단단한 구조물. 미국에서는 ‘국가는 가정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기에 은유로 이용했다고 한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중개념주의자’들의 프레임을 움직이는 게 중요

 

우리 두뇌는 “자리 잡은 프레임으로 납득 가능한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인지언어학적’ 사실이라고 저자는 거듭 주장한다. 누군가 사실을 얘기하더라도 자기의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그 사실을 무시하거나 반박한다. 자기의 프레임은 그대로 둔 채로.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누군가 ‘적폐’라고 하면 ‘통치 행위’라 반발하고, ‘뇌물’이라 하면 누군가는 ‘통치 자금’이라 주장하는 상황. 서로가 생각하는 ‘상식’의 상황과 세상이 다른 것이다.

저자는 정치에서 특히 선거를 통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상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뇌에 세상과 정치를 보는 ‘프레임’이 이미 구조화 혹은 고정된 사람들의 상식을 바꾸어 주긴 어렵다.

책에서는 미국에서 보수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이 35~40%이고, 진보를 지지하는 층이 35~40%라고 한다. 이들의 프레임은 거의 고정되어 있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들의 지지하는 방향을 변경하진 않는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0~30%의 향방은? 책에서는 ‘이중개념주의자’라고 설명한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중간에 자리하는, 그렇지만 이 “중간층에 해당하는 이데올로기는 없다”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어떤 쟁점에서는 보수적이고 또 어떤 정책에서는 진보적이다. 그래서 “이 두 성향이 다양한 비율로 배합된 ‘이중개념’ 소유자”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중도’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에서는 가치를 다양하게 분류한 이중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복지 정책에서는 ‘진보’정책을 지지하지만, 국제관계에서는 ‘보수’정책을 지지하는 등 정책 혹은 선거 슬로건에 따라 투표의 향방을 달리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이들을 섞은 이중개념주의자 모두 각자의 ‘도덕관’을 기반으로 한다. 모두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다 다르다. 각자의 관점, 뇌에 자리 잡은 프레임에 의한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 다른 것이다. 이 도덕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바로 이해한 다음에 전략을 바로 세우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특히 ‘이중개념주의자’들의 프레임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배합되었다고 하지만 ‘인지언어학적’으로는 “삶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이하고 모순된 도덕 체계에 따라 행동한다”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인지언어학적으로 대응하여 그 프레임을 건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 결과로 중간에 있는 20~30%의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진보에 투표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저자는 이를 위해, ‘다름’을 인정하고, 진보의 실패(2004년의 대선 패배)에서 교훈을 얻고, 보수의 전략(40년 넘게 프레임을 다지고 넓혀온)을 밑바닥부터 이해한 다음에 ‘공적 담론’을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적 담론의 프레임, 그 재구성을 위하여

 

저자는 보수가 (책이 처음 쓰인 시점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공적 담론을 뒷받침할 연구소를 세우고, 연구를 지원하고, 보수를 뒷받침할 교수와 변호사를 키워온 사실을 거듭 얘기한다. 물론 보수를 지지하는 기업들이 투자했고, 보수는 기업들에 유리하게 법을 개정해왔다. 반면 진보는 지난 세월에 있었던 작은 승리에 도취하여 진보의 가치, 관심 분야를 확대하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전선이 너무 넓어지고 허점이 많아져 보수의 전략적 공격에 무너졌다고 평가한다.

실패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보수가 쓰는 그들의 언어를 진보가 함께 사용해서 진보 지지층에게도 보수의 이슈와 가치를 넣어줬다며 인지언어학적으로 분석해 제시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청중에게 얘기한다면 청중은 이미 ‘코끼리’를 떠올리듯이 말이다. 책에선 이 상황이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이는 ‘심리학’ 연구에 나온 유명한 사례이기도 하고,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은유하기도 한다.

저자는 진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정책을 설명하는 언어 차원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라 강조한다. 단순히 잘 쓰인 ‘카피’가 아니라 잘 정립된 ‘가치’와 잘 정리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언어가 프레임을 활성화하기에 새로운 프레임은 새로운 언어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솔루션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설명한다. 언어가 어떻게 뇌에 작용해서 프레임으로 구축되는가와, 보수와 이중개념주의자와 대화하는 법 등을 제시한다. 이론과 실제를 다양한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과 이해를 ‘무의식’에서 ‘의식’ 수준으로 불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진정한 신념은 표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행동하라’라는 것이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신념을 ‘의식’ 수준으로 불러내어 표현하라는 것. 그러기 위해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 "Don't Think of An Elephant" 영문 표지

 

그들은 왜 ‘좌파’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할까?

 

이 책을 3년 만에 다시 읽은 후 든 생각이 있다.

글 처음에 언급한 기사뿐 아니라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은 ‘좌파’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쓰고, 한국의 야당 대표도 ‘좌파’라는 말을 반복해서 쓰는 것이 어쩌면 의도가 있는 단어 선정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좌파라는 말은 정적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단어일 수도 있지만 같은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인 것.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진보와 보수 중간에서 지켜보는 이중개념주의자, 중도층에게 보내는 ‘공적 담론’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좌파’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프레임적 사고는 설명하지 않아도 명확하다. 만약에 진보가 ‘좌파’라는 단어를 써서 자기의 정책을 설명한다면, 조지 레이코프의 ‘인지언어학적’ 표현에 의거하면 프레임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다. ‘공적 담론’ 자체에서 밀린다는 얘기다.

물론 이 책이 정치와 선거를 위한 교과서는 아니다. 다만 정치와 그 진영들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설명한 책이다. 사람이 도덕 혹은 정치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언어와 뇌에 작용하는 구조로 설명한 흥미로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장 때문일까? 2008년에 오바마가 집권하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역자는 미 대선 기간에 오바마가 사용한 화법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주장한 방향과 같다고 역자 후기에서 설명한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는 철저히 프레임에 기반을 둔 트럼프의 언어에 가난한 미국인들이 보수에 표를 던졌다. 이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진보의 가치를 갖고 있으면서 보수의 가치를 가지고도 있는 ‘이중개념주의자’, 특히 가난한 미국인들을 잘 공략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았다. 실패 다음에 성공, 그리고 또 실패. 역사의 수레바퀴가 말해주는 것을 잘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자의 새로운 책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가 지난 3월에 출간되었다. 목차를 보니 조지 레이코프의 지난 연구와 비교하여 심화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다음 독서 목록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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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21:41:48
좌파를 그럼 진보라고 불러야함?

까고있네 2019-05-25 15:44:24
정치적 방향성 - 좌 / 우
정치적 속도감 - 진보 / 보수
너네들은 좌파 맞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