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는 기축통화 패권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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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는 기축통화 패권의 폭력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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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의 역설…미국 경제가 호황이면 불안한 신흥국의 처지

 

신흥국 위기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1주일만에 3차례나 금리를 인상해 무려 40%의 기준금리를 책정했고, 이란은 암시장의 외환거래를 중단시켰다. 준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홍콩 통화당국이 빠져나가는 달러를 막기 위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퍼부어 환율 상한선을 지키고 있다. 지난주에 터키의 리라화, 남아프리카의 랜드화, 브라질 헤알화등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신흥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보유외환을 풀면서 통화를 방어하지만,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긴다. 고리 하나가 끊기면 다른 고리가 약해지고, 이 붕괴가 연쇄적으로 나타나면 1998년처럼 신흥국 위기의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

20년전에도 그랬지만, 신흥국 위기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패권에서 발생한다. 전세계 달러 유통량의 3분의2가 미국 밖에서 유통된다. 미국 금융시장은 전세계 달러를 빨아당겼다가 풀어내는 심장 역할을 한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국으로 달러가 몰려가고,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리스크가 높다는 이유로 달러는 미국으로 방향을 바꾼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2015년말 중도우파 진영의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정권이 집권해 앞서 좌파 정권과 달리 시장에 부응하는 정책을 폈다. 달러가 몰려왔다. 하지만 올들어 마크리 정부가 물가목표를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를 빠져나갔다. 핑계는 마크리 정부의 개혁 지역이지만, 실제 이유는 미국에서의 투자이익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그래픽=김현민

 

올들어 미국의 10년물 국채(TB) 수익률이 3%에 근접하며 치솟았다. 2년전만 해도 2%대였던 TB 10년물 수익이 최근들어 급등해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한 곳에 돈을 묻어둘 필요가 없어졌다. JP 모건 체이스의 재미 다이먼 회장은 조만간 TB 10년물 수익률이 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신흥시장은 달러 빈혈 상태에 빠지고, 자국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심각할 경우 통화위기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흥국(emerging market) 경제는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 자본이 유입되느냐, 유출되느냐에 흥망성쇠의 기복을 겪어 왔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이 저금리 상태였을 때 전세계의 달러 자금이 신흥국으로 몰려갔다.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 돈이 흘러 넘쳤고, 아시아 국가들은 빌린 돈,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 썼다.

그러다가 미국 경제가 10년 장기호황을 구가하면서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신흥국 시장에 몰려갔던 달러가 미국시장을 귀환했다. 아시아 신흥국들은 달러 빈혈상태에 빠져 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한국에 걸쳐 통화위기의 태풍이 지나갔다. 곧이어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번졌다.

그후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금리는 제로금리로 떨어졌고, 미국에서 다량으로 방출된 달러가 다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신흥국으로 돈을 벌러 갔다. 그곳에서는 높은 이자를 주었다. 신흥국들은 값싼 돈 맛에 빠져 들었고, 채권을 마구 팔아 달러돈을 끌어와 부동산을 샀다. 홍콩과 중국의 부동산, 베트남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하지만 이젠 그 돈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생각보다 빠르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우려가 켜졌다. 4월 미국의 실업률은 3.9%였다. 미국이란 거대국가에서 완전고용 상태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1분기 성장률도 2.3%로 탄탄한 성장세가 이어졌다.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또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글로벌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중앙은행의 행동은 모순적이다. Fed가 금융정책을 결정할 때 미국이란 경제 틀에서 인플레이션과 고용현황을 기준으로 삼지만, 세계 경제는 미국경제와는 상관없이 Fed의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런 점에서 Fed 결정은 자국 위주이며, 도널드 트럼프 식으로 말하자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입각한다. 미국을 우선으로 하는 Fed의 정책은 달러 패권주의를 낳고, 그 결과로 신흥국은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Fed라는 신이 결정하는 대로 떠다니는 부유물이 된 것이다.

 

▲ /그래픽=김현민

 

그렇다면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신흥국 6월 위기설이 올 것인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우선 20년전보다 신흥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테크닉이 수준 높아졌다는 점을 들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1주일만에 금리를 10% 포인트 이상 올리는 기법을 활용하고, 홍콩은 외환방어 실탄을 무제한 쏟아냈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일단 투기세력을 무찔러야 한다는 학습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또 신흥국들의 방어력도 높아졌다. 신흥국들이 든든한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았고, 재정적자율도 과거보다 현격하게 낮아졌다.

일단 홍콩은 통화를 방어했다. 아르헨티나가 방어할지는 한두 주 더 지켜보아야 한다. 이란의 문제는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는지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단 글로벌 자금 흐름의 방향이 바뀌었다. 미국 경제 호황이 지속되고, 신흥국 경제와의 괴리를 높여갈 때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약한 고리에서 혁명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 이론은 신흥시장 위기론에서도 적용된다. 외환보유액이 취약한 나라, 경제정책을 잘못 취하는 나라, 정치 갈등이 심한 나라, 미국에 대항하는 나라의 경제 고리가 약하다.

미국의 세계 지배 수단은 군사력과 달러 패권 두가지다. 영국이 2세기 이상 세계를 지배할 때도 파운드는 기축통화가 되지 못하고, 금이라는 다국적 물질이 국제결제수단이었다. 미국은 종이화폐를 흔들면서 신흥국들에게 태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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