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사랑...점유와 소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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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사랑...점유와 소유 사이
  • 김이나 에디터
  • 승인 2018.05.08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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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리뷰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올드 패션드 러브 스토리
▲ '라이크 크레이지' 공식 포스터

 

최근엔 ‘올드하다’는 단어는 금기시 되고 있다. ‘늙은, 오래된, 구식의’ 를 뜻하는 ‘old’는 굳이 써야 하지만 않으면 쓰고 싶지 않은 단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고 진부하고 낡은 것은 거부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올드 패션드 러브 스토리'다.  'old-fashioned'. 취향이 약간 구식인 그러나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사랑 이야기. '라이크 크레이지'는 그런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란게 그렇다. 사랑을 시작하는 방식이, 사랑이 익어가는 방식이,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그런 것들은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천년 동안 인간을 기쁘게 하고 괴롭히고 아프게 한 감정이니 말이다. 오래된 그러나 오래 지속되온 것.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절제된 대사와 표현 방식은 트렌디하지만 전개되는 방식은 고전적이다.

첫눈에 반한 애나와 제이콥. 그날로 만남을 시작한다. 물 흐르듯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 싫어서 비자만료도 무시한 채 사랑을 이어가지만 결국 ‘세상’은 둘을 갈라놓고, 그리 어렵다는 '롱 디스턴트' 연애를 이어가지만 결국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를 깨닫게 된다는,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

어디 요즘 ‘세상’이 갈라 놓는 러브스토리가 있으랴만. 아 있긴 있다. ‘타임 슬립’.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 연인을 갈라놓긴 한다.

심지어 주연배우들의 외모도 무척 고전적이다. 

 

▲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 컷

 

점유와 소유 사이에서  

 

올드 패션드 러브 스토리라고 시작을 했으니 더욱 올드한 얘기를 하더라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서로를 향한 소유욕이다.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이 한 번쯤은 해봤을 말, “너를 작게 만들어서 내 주머니에 넣어 가고 싶다.” 

24시간을 너와 함께 있고 싶은 것. 밤새 이야기하고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싶은 것. 나를 사랑하는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고 또 나도 너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시작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사랑인지 소유욕인지 집착인지를 두고 갈등을 빚는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집착인지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어려운 게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의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이 점유하는 공간을 생각해 보았다.

제이콥은 애나에게 의자를 만들어 선물한다.가구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인 그가 그녀의 공간에 들여놓은 의자. 그녀의 마음에 자신이 들어가 안주하고 싶어한다. 널 소유하고 싶지만 지금은 너를 점유할 뿐. 그마저도 비자문제로 애나가 재입국이 불가능해 지면서 수줍은 점유의 시도 마저도 불확실해 진다.

런던과 LA에서 각자 살아가는 그들. 기약할 수 없는 재회로 괴로워한다.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나 아닌 다른 누굴 만나고 있을까. 그녀의 마음에 나는 아직 자리하고 있을까.

애나의 부름으로 결국 제이콥은 런던으로 향한다. 그 때 제이콥이 그녀에게 가져간 것은 그녀의 의자. 나는 너를 점유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내비친다. 너의 마음에 이 의자처럼 머무르게 해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서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장치기도 하지만 다시 헤어지다라도 그녀의 마음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불안한 점유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결혼이다.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도하지 못했던 소유의 방식. 서로를 소유한 연인들에게 점유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들은 혼인서약과 서류작업을 거쳐 다시 비자발급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소유는 법적으로 승인받았지만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그들. 점유도 소유도 완전하지 않은 그들이다.

 

제이콥의 의자와 사이먼의 퍼즐 

 

비자문제로 재입국이 힘들어진 애나에게 다가온 사이먼. 자신이 애나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삶은 완벽해 질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은 다 맞추지 못한 퍼즐이며 그 마지막 조각이 애나라고.

그에게 애나는 퍼즐 한 조각이다. 그의 완벽한 공간을 완성시켜준다는 의미에서 그 조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렇다고 그 조각을 위해 공간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퍼즐이 점유하는 공간은 오로지 다른 조각과의 연결을 위해 존재할 뿐이며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드디어 미국으로 입국한 애나.그렇게 꿈에 그리던 재회가 이루어졌지만 어색한 그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소유와 점유가 일치하는 순간을 맞이했지만 서로를 안은 채 시선을 피하고 있다. 서로를 그리워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지만 서로에게 내어주는 공간이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었음을 느낀다.

속편이 있다면 어떨까. 또 다시 올드 패션드 스타일로 풀어낼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주연배우 안톤 옐친은 2년전 유명을 달리 했다.안타깝다.  

 

▲ 안톤 옐친의 묘지 / AYResearch.com

 

(카카오 브런치에도 수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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