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 간다 종으로 본 「뜻밖에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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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간다 종으로 본 「뜻밖에 미얀마」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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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불교의 나라, 강렬한 민족의식, 지혜와 높은 문화수준

 

조용경씨가 쓴 「뜻밖에 미얀마」라는 기행집에 이런 스토리가 나온다.

 

“(쉐다곤) 파고다 경내 북서쪽의 종각 안에는 무게가 24톤이나 되는 거대한 범종인 마하 간다(Maha Gandha)가 매달려 있다. 이 종은 1778년 콘바웅 왕조의 제4대왕인 신구 왕의 명으로 제작되었다. 금, 은, 동, 철, 납 등 다섯 가지 금속의 합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3.34 미터, 하부의 직경이 2.05 미터에 달하는 큰 종이다.

이 종에는 많은 미얀마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제2차 영국·버마 전쟁이 벌어졌던 1825년 영국 군대가 이 종을 강탈하여 영국으로 싣고 가려고 하다가 에야와디강에 빠트려 버리고 만다. 영국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종을 건지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한 버마인 고승이 나타나 영국인들에게 “종을 영국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내가 이 종을 건져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영국군 책임자는 자신들의 기술로도 건지지 못한 종을 건지겠다는 스님의 제안에 코웃음을 치며 승낙을 했다. 그런데 고승이 이끄는 사람들은 불과 3일 만에 종을 끌어 올려서 영국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스님은 사람들을 시켜서 촘촘하게 엮은 굵은 대나무 띠로 강바닥에 떨어진 종을 겹겹이 묶도록 했다. 대나무 특유의 부력으로 거대한 종이 물 위에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종은 다시 쉐다곤 파고다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스토리는 책 제목 그대로 「뜻밖에 미얀마」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첫째, 미얀마는 불교국가라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미얀마 인구의 89.5%가 불교 신자이며, 미얀마 전역에 6만1,000개의 사찰이 있고, 승려의 수는 대략 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미얀마가 불교국가가 된 것은 1050년경 아노라타 왕은 남부 몬족을 정복하고 수도를 바간으로 정한 이후 몬족 출신의 승려 싱 아라한에게 가르침을 받고 불교에 심취했다. 왕은 다양한 부족을 통합하기 위해 소승불교인 상좌부(上座部) 불교를 국가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이후 미얀마는 불교왕국이 되었다.

저자는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 공감한다. 곳곳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파고다, 일출과 일몰 때 지상의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놓은 태양…. 미얀마는 황금빛 파고다로 가득찬 불교 왕국이다.

 

▲ 마하 간다 종 /위키피디아

 

둘째, 외적의 침입에 민족의식이 강렬했다는 사실이다. 미얀마는 여러차례 외적의 침공을 받았다. 첫 번째가 몽골이고 그 다음이 영국이다. 일본도 일시적으로 참공한 적이 있다.

1287년 원(元)나라 쿠빌라이 칸이 이끈 몽골군의 침공으로 파간왕조가 붕괴되었으며, 몽골군은 1299년에 퇴각했다. 몽골군의 점령은 짧은 기간에 그쳤지만, 미얀마는 분열과 통합과정을 거쳤다.

마하 간다의 종이 영국군에 일시적으로 빼앗긴 시기는 인도를 집어삼킨 영국이 동쪽의 버마를 상대로 세차례나 전쟁을 일으키던 초반이다. 영국은 1886년 콘바웅 왕조를 패망시키고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영국의 식민통치는 미얀마 불교의 시련기였다. 60년간의 식민 통치기에 영국은 미얀마 전 지역에 기독교를 포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탄압했다. 영국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식민당국은 주요 보직에 이슬람교도들을 심어 가혹하게 미얀마 불교를 짓눌렀다.

이에 미얀마의 독립운동은 불교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승려들이 민족주의 깃발을 들었고, 승려 사야산을 중심으로 반영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마하 간다의 종은 영국에 빼앗긴 종을 되찾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 영국군에 빼앗긴 셰다곤 파고다의 마하 간다 종을 되찾는 그림이 종 옆에 붙어 있다.

 

셋째, 마하 간다의 종은 미얀마인들의 지혜와 상부상조의 정신을 보여준다. 비롯 서양의 화포에 눌려 전쟁에서 졌지만, 높은 문화수준이 낳은 미얀마인의 지혜와 협동정신은 영국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저자 조용경씨도 처음 미얀마를 찾았을 당시 “쥐뿔도 없는 나라가…” 하며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얀마를 무시했다고 한다. 마치 승전한 영국군 지휘자처럼….

하지만 저자는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미얀마를 열여섯차례 다녀오면서 바라보니 미얀마의 문화 수준이 높을뿐더러 이타심이 강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미얀마는 최빈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기부 인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미얀마는 매번 다른 풍경을 선물했다. 계절마다 다른 하늘색, 알록달록한 의상들, 황금빛으로 빛나는 파고다, 일출과 일몰 때 지상의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놓는 태양,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신비로운 고대의 유물과 유적들…. 미얀마 여행을 하면 할수록 사고방식이 자유로워졌고, 삶의 희열을 느끼는 농도가 진해졌다.

그런 문화가 있었기에 영국군이 욕심을 내서 가져가려던 범종을 미얀마인들은 다시 찾아올수 있었던 것이다.

 

▲ 1825년 쉐다곤 파고다를 점령한 영국군 모습을 그린 판화 /위키피디아

 

조용경씨는 우리나라 철강신화를 일군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측근이었다. 박 전회장이 정치에 몸담을 때 정치담당 비서를 했다. 그는 포스코건설 송도사업 본부장과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역임한후 정치에 뛰어든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가 은퇴했다.

▲ 책 표지

조용경씨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는 ‘원시를 찾아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몽골, 인도의 라다크 등 때묻지 않은 곳으로 오지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자신에게 딱 맞는 나라를 찾았으니 그곳이 바로 미얀마다.

조용경씨는 2014년부터 블로그에 ‘사랑해요 Myanmar’라는 타이틀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가 이어지자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한 단체의 요청으로 ‘미얀마는 어떤 나라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도 했다. 이를 계기로 몇 차례 더 여러 곳에서 미얀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미얀마는 60여 년간 영국과 일본의 통치를 받았으며, 50여 년간 군부독재의 지배하에 있었다. 미얀마 민주화의 씨앗은 이제 막 싹을 틔웠을 뿐이다.

저자는 이 어린 새싹을 향해 빨리 꽃을 피우라고 채근하는 것보다는 좀 느리더라도 ‘민주화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켜봐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미얀마에 대한 애정어린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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