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주의 세상보기] 당신과 나의 아름다운 거리(距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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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의 세상보기] 당신과 나의 아름다운 거리(距離)
  • 나은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4 17:4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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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주 칼럼니스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름다운 거리가 있다, 햇살과 자유의 바람이, 서로에게 드나들도록    [‘박노해의 걷는 독서’ 中]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군가와 감정의 부딪힘이 생길 때 특히.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집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어 외로워지는 건 아닐까? 의식적으로 거리를 재며 살 수는 없지만 가끔은 건강한 거리, 자유로운 거리, 평화로운 거리 두기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일까?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마늘을 한 바가지 까다가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마침 물까치의 탄생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작은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눈도 뜨지 않은 새끼들은 비틀거리면서도 노란 입부터 야무지게 딱딱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 어미 새는 갓 태어난 새끼들의 입에 잘게 찢은 먹이를 넣어준다. 어미 새들은 독특한 소리로 새끼들의 식욕을 자극한다고 한다.

딱 벌린 새끼들의 노란 입이 어찌나 큰지 제 머리보다도 더 커 보였다. 약한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든 조물주의 조화이리라. 시골집 처마 아래 제비집에서 보았던 새끼 제비들도 그렇게 입이 컸었다. 엄마 아빠 제비가 저 멀리서 날아오면 새끼 제비들은 목을 쭉 빼고 노란 입을 더 크게 벌리곤 했다. 어린 눈에도 제비보다 입이 먼저 보이는 게 우습고 재미있었다.  

놀라운 건 그다음 장면이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을 노리는 뱀의 차가운 눈빛과 소리 없는 움직임. 위험을 감지한 어미 새들은 뱀을 다른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부리로 공격하고 교란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결국 새끼는 뱀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다행히 아직 할딱이고 있는 한 마리 새끼를 살리기 위해 먹이를 물고 와 어떻게든 먹이려는 어미 새의 모습이 너무 측은했다. 그러나, 결국 아기 새는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미 새는 죽은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앙상한 다리로 한참을 서성였다. 어미 새의 모성.  

둥지 안에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는 어미새의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둥지 안에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는 어미새의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어린 새들이 스스로 날고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새들이 쏟는 헌신은 감동적이다. 새들은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몸으로 보여 준다. 어디서 어떻게 먹이를 구하는지, 가까이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건 어떤 건지. 물 목욕도 그렇다.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어미 새들은 맑은 물로 목욕을 한다. 말끄러미 지켜보던 어린 새들은 머뭇머뭇 물가로 내려오고, 조심스레 발을 물에 담가본다. 그런 다음 엄마 아빠처럼 깃으로 물을 끼얹기 시작한다. 어미 새가 물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면 새끼들도 따라쟁이처럼 신나서 물 목욕을 시작한다. 깨끗이 목욕을 마친 어미 새는 부리로 깃털을 가지런히 다듬는다.

그리고 더벅머리처럼 헝클어진 새끼들의 깃털을 빗질하듯 예쁘게 정리해 준다. 불개미 소굴로 들어가 불개미 목욕을 가르치는 것도 놀라웠다. 불개미 산을 이용해 진드기나 벌레를 퇴치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지혜를 터득했을까? 가장 훌륭한 교육은 부모의 솔선수범이다. 나는 입으로만 아이들을 훈계하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물까치 무리에서 제일 인상적인 점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동 육아였다. 긴 꼬리가 물빛을 닮은 물까치는 40~100마리씩 무리를 지어 산다. 약한 동물이 무리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은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천적이 나타나면 누군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그사이 다른 새들은 재빨리 피한다. 어미 새가 둥지를 지키지 못할 때는 도우미 새가 등장한다.

어디선가 먹이를 물고 나타나 어린 새끼들에게 먹이를 준다. 번식을 할 수 없는 성조나 아직은 어린 새들, 먼저 태어난 형제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낳은 새끼는 아니어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개체를 도와줌으로써 자기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둥지 안에서 어미새를 기다리는 어린새들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둥지 안에서 어미새를 기다리는 어린새들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제가 낳은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를 하기도 하고, 자기 자식을 위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짓밟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보다 몇백 배 낫다. 나보다 약한 사람, 힘든 사람을 보듬어 주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임을 물까치 떼가 증명한다.

출산율 세계 최저인 인구 절벽의 국가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급격한 출산율 감소의 원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출산 후 육아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물까치 사회에서 도우미 새의 역할을 더 이상 할머니들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국가나 사회가 그것을 대신해 줄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줘야 하지 않을까? 물까치의 맑은 눈이 우리를 꾸짖는 것 같다. 당신의 주변을 돌아보라고. 

어린 새가 자라서 둥지를 떠나는 이소(離巢). 어미 새와 새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스스로 날아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새끼들은 홀연히 둥지를 떠난다. 어미 새 또한 이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깔끔하고도 상큼한 이별이 있을까? 아낌없이 사랑하고 헌신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 때가 되면 당연히 독립을 하고, 더 이상 줄 것도 받을 것도 기대하지 않는 관계.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개체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태생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건 다른 동물이건 마찬가지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가족 탄생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와 인연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살다 보니 가장 힘든 게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 두기 같다. 평생을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새들의 이소(離騷)는 새끼나 어미 새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점이다. 둥지를 떠난 새는 자기만의 둥지를 짓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제 어미가 그랬듯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새끼들이 다시 이소를 하기까지 잘 키우고 지켜내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쏟으며 살아가리라. 철저한 내리사랑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모든 동물에 적용되는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새끼가 떠난 자리에서 어미 새들은 다시 일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와 서로 한 몸인 듯 모든 걸 돌보며 키워낸다. 부모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으므로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어 하는 자식과 순종적이면서도 안정된 길을 가길 바라는 부모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

아이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아이가 온전히 잘 커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아이들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부모가 그것을 인정하고 지지해 줄 때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독립을 준비할 수 있다. 단단한 자기 세계를 만들지 못한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 도움을 기대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할 땐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부모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건강한 아이가 우리의 미래이므로.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폭행 사건, 살인 사건, 극단적 선택 등, 하루가 멀다고 씁쓸한 뉴스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 사건이 가족을 별개의 존재로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비극인 것 같다. 내 아들, 내 딸이니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거두어야 한다. 콩 한 포기를 심어도 맘껏 뿌리내리며 자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게 중요하다.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양분을 끌어올리고, 비바람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줄기로 가지와 잎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어른의 역할이다. 과보호와 간섭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사랑하는 이와 나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돌아볼 때다.  

가까이 가야 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아는 것.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온정과 그리움이 함께하는 거리 두기. 그것이 진정한 사랑법 아닐까? 물까치들의 담백한 사랑법을 배우고 싶다. 햇살과 자유의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거리, 그런 아름다운 거리에 머물고 싶다.  

나은주 칼럼니스트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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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lan22 2023-10-15 18:00:25
작가님 글을 읽으며 이소란 단어를 또다른 의미로 이해하게 되네요. 담백한 사랑법과 적절한 거리두기를 연습해야겠어요~^^

꿈그리기 2023-10-15 09:07:14
좋은 글 읽고 반성하는 아침입니다.
동물보다 못한 내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저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지만 가끔은 예기치않은 상황이라는 놈이 끼어들어 훼방 놓기도 하죠 ㅎㅎ
그러나, 때론 가까운 거리애서 바라보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주 심한 가을을 타는 이유 때문이겠지요.

구월이 2023-10-15 16:32:25
새들의 '이소'를 본받으며 살아야하는데
막 결혼을 시킨 부모의 맘은 쉽지 않네요
참 깔끔은 자연의 원리,
그래도 동물들도 아프고 그립지만 참고 살겠죠~

행복한 날 2023-10-18 12:30:24
아이를 내 소유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아닌지..반성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나의 곁을 떠날 아이들에게
홀로 설 수 있는 지혜를 길러주는 제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

정나도 2023-10-15 07:01:43
글을 읽으니 좀 씁쓸하네요.
이제 아이들을 독립시켜야될 때가 가까와져서 그런가봐요.
동물들의 지혜를 본받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