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마한의 영토분쟁 흔적 드러낸 정읍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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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마한의 영토분쟁 흔적 드러낸 정읍 고분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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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정읍 고분 56기에 사적 지정…인근에 마한 고분도 공존

 

전라북도 정읍 일대는 언제부터 백제 땅이 되었을까.

우리는 전라도 지역이 백제 건국 초기부터 백제 영토로 편입된 것으로 배웠다. 하지만 전라북도 정읍에는 마한 유적과 백제 유적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마한이 오랫동안 호남지역을 지배했지만, 백제가 고구려에 한성을 빼앗기고 남하하면서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청은 전북 정읍시에 있는 「정읍 은선리(隱仙里)와 도계리(道溪里)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3호로 지정했다. 지난 2005년과 2013년 두 차례의 정밀지표조사를 해보니, 정읍 영원면 일대의 반경 2km내 구역에 275기의 백제고분이 발견되었다. 이중 영원면 은선리와 덕천면 도계리에 집중 분포된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56기를 사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 무덤이 백제의 것으로 추정했다. 이 고분군은 전라북도의 백제고분으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최대 규모라고 한다.

 

▲ 전북 정읍 은선리 고분군 19호분/ 문화재청

 

인근에 마한계 분구묘도 있다. 분구묘(墳丘墓)는 미리 흙이나 돌로 봉분을 쌓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든 마한계 무덤으로, 무덤 옆으로 통로를 내어 석실로 내부를 만든 백제의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과 차이를 드러낸다.

두 형태의 무덤이 인근에 공존하는 것은 마한이 지배하던 정읍 일대를 백제가 빼앗아 지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면 백제가 정읍 일대의 마한 땅을 뺏은 시기는 언제쯤일까. 문화재청 발굴 조사에서 정읍 고분의 대다수가 백제의 사비기(538~660년) 고분이지만, 일부에서는 그보다 앞선 웅진기(475~538년)에 만들어진 것도 확인된다. 따라서 백제가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마한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사비(부여)로 천도할 무렵에 정읍 일대를 완전하게 점령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근에 고사부리성(사적 484호)도 있는데, 백제가 사비 시대에 지방을 5개 구역으로 나누어 그중 중방(中方)의 중심지로 활용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정읍 고분군의 연구를 통해 앞으로 백제의 중앙과 지방, 대외관계, 정치세력의 변천 등에 관한 밀도 있는 연구를 진척시켜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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