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경제가 파국으로 간 까닭, 북한이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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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경제가 파국으로 간 까닭, 북한이 알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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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협상” 안한다는 트럼프…남북, 북미 협상 사이에 변수 될수도

 

월요일인 지난 9일 저녁, 이란 정부는 전격적으로 자국 통화인 리알(rial)을 12.5% 절하하고 시장환율과 정부환율을 통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말이 통합이지, 암시장에서의 외환거래를 폐지하고, 정부 통제 하에 외환시장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정부환율은 1달러당 3만7,000 리알, 시장환율은 1달러당 5만9,000 리알이었다. 리알화가 폭락하면서 물가가 폭등하고 외환고갈 상태에 빠졌다. 국민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섰고, 은행에서 예금을 빼는 뱅크런 현상이 빚어졌다. 정부환율로는 자동차가 수입되지 않고, 가전제품 부품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외환 거래를 통제하자 돈이 암호통화 시장으로 흘러나갔다. 그러자 이란 당국은 암호통화시장도 거래를 중단시켰다.

이란 경제가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다. 극적인 해결방법이 없는 한, 조만간 통화위기가 불어닥칠 것 같은 분위기다.

 

▲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당사국 외무장관들이 이란 핵협정(JCPOA)을 체결한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이란 경제가 궁지에 몰린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협상 파기 위협 때문이다. 미국의 주장은 2015년에 체결된 핵협정을 파기하고 새로 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버락 오마바 정권 시절인 2015년 7월 14일 미국과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유럽 연합이 제시한 협상안을 이란이 받아들임으로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이 체결되었다. 보통 이란 핵협정이라고 불린다.

당시 합의의 골격은 ▲이란이 원심분리기를 1만9,000기에서 6,104기로 3분의1로 감축하고 ▲향후 최소 15년 간 3.67% 이하로만 우라늄을 농축하며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원자로의 설계를 변경하며 ▲15년간 신규 농축 시설을 건설하지 않으며 ▲IAEA가 이란에서 핵 활동 사찰을 재개하고 ▲이란이 합의사항을 검증 할 수 있도록 준수할 경우, 경제제재를 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핵무기 감축과 중동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부분적으로 핵시설을 보유하는 내용의 반쪽짜리 협상안을 임기말에 서둘러 승인했다. 협정은 미 의회를 통과했지만, 공화당 강경파는 불만을 표시했다. 공화당의 가장 큰 불만은 비확산정책에서 미국의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칙은 ‘zero tolerance(무관용)’인데 이란에 예외를 인정해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저농축 우라늄 농축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어정쩡한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후 새로운 국제이슈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 합의가 “나쁜 협상”이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면서 협정 폐기를 주장해 왔다.

미국이 설정한 이란 핵합의 폐기 데드라인은 오는 5월 12일이다. 이 시한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북 정상회담 이전이다. 이날까지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사항들이 반영된 재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이란 핵협정(JCPOA)에서 탈퇴하겠다고 트럼프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 이란 리알화

 

시한이 다가오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이란 금융시장이다. 이란은 명목상으로 정부가 환율을 지정하는 제도를 채택해 왔지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외환이 거래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협정 탈퇴가 가시화되면서 올들어 리알화 시장환율이 폭락세로 돌변했다. 3개월 동안 리알화 가치는 연일 최저치를 기록했고, 정부환율과 시장환율 사이에 50% 이상의 차이가 벌어졌다.

환율시장이 요동치자 이란 정부가 채택한 것은 정부환율을 절하하되, 시장환율을 폐기한 것이다. 이후 통제 경제로 들어갔다.

이란 정부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경제를 저항체제로 전환했다. 이란 정부는 5월 12일 이후 미국이 핵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이란에 대한 원유 및 천연가수 수출이 다시 금지되고, 외환거래등 일체의 대외거래가 중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란은 이웃 터키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해 두었다. 아울러 달러로 결제되는 외환거래를 유로로 대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국민들에게 국산품 애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외환 부적의 상태에서 수입을 최대한 줄이고 자립경제로 버티자는 것이다. 사설환전소 운영도 중지시켰다. 이란 리알화가 외국돈으로 교환돼 외환부족 현상을 가중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란 핵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미북 핵협상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3년전에 타결한 이란 핵협상이 ‘약한 합의’였으므로, 이를 폐기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3일 백악관 브리핑장에서도 이란 핵합의 폐기와 북한 핵협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 폐기를 공공연히 말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어떻게 미국과의 협상을 믿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전 세계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일을 하길 원하며, 특히 핵무기 없는 북한과 한반도를 바라고 있다"고 대답했다.

샌더스는 특히 "우리는 북한 사람들의 말을 단순히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순진하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또 "우리는 몇 가지 조치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취해지는 걸 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분명히 우리는 과거 행정부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북한이 핵협상을 타결하고도 이행치 않은 일, 이란에서 불완전한 협상을 한 것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된다.

 

핵문제 해결에서 이란과 북한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란은 “원자력 에너지를 원한다”는 입장으로, 핵실험까진 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여섯 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다. 이란은 산유국으로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있어 국제적 경제제재가 효과를 보았지만, 북한은 폐쇄경제를 유지하므로 경제제재의 효과가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

지정학적 차이도 있다. 이란은 중동의 맹주여서 유럽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P5(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1(독일)이 공동으로 대처했지만,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신냉전의 한축으로 암묵적 지원을 하기 때문에 국제적 협조가 약하다.

 

미국과 이란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자 유럽이 중재에 나서고 있다. 국빈방문 형식으로 23일부터 사흘간 방미 일정에 들어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이란 핵 협정(JCPOA) 탈퇴를 적극적으로 만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북한 핵 문제에서 우리는 당사자의 하나로 북한과 미국을 중재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국제사회의 여러 변수들이 총화로 밀려오고 있다. 아시아 저쪽 끝에서 벌어지는 이란 핵 문제가 북한 비핵화에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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