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또다른 갑질을 책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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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 또다른 갑질을 책하는 사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21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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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모바일이 만든 테트라키 사회…비이성적 광기로 가면 위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둘째딸 조현민 전무의 물컵 파동이 온나라를 흔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조 전무가 대한항공 광고를 대행하는 광고회사 팀장에게 화를 이기지 못하고 물병을 던지고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물병을 바닥에 던졌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이 광고회사의 익명의 게시판에 올라오고 사람들이 퍼나르면서 사회 이슈화됐다. 이 문제는 조현민 전무의 케이스에 그치지 않았다. 과거 그의 언니 조현아씨의 ‘땅콩 회황’ 사건이 다시 부각되고, 그의 어머니의 행위, 한진그룹 조씨 가문의 양주 도입까지 파헤쳐지고 있다.

사건을 단순화하면, 조현민이라는 재벌 3세가 광고주로서 을(乙)의 입장에 있는 광고대행사 직원을 질책하면서 성질을 참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물컵을 상대방에 던졌는지, 땅바닥에 던졌는지를 규명하면 된다.

그런데 시중의 관심은 그 사실의 여부가 아니다. 재벌이라는 특수 집단의 행태에 관심이 모아지고, 그들의 세계를 파헤치고 끌어내리려는 심리적 충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언젠가부터 합리적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사회여론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비아냥거리며, 집단 행동을 벌여왔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만든 테트라키(tetrarchy) 사회를 통해 지적 노하우가 쌓여가는게 아니라, 대중을 자극하고 괴담을 양산하는 구조가 확산하는 느낌이다. 특정인을 마녀사냥으로 몰아붙이면서, 그 주변의 사람들을 연좌로 모는 한판의 재판이 벌어지고, 현실의 권력들이 뛰어들어 재단하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감성이 집단화하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법적 근거 없이 여론 재판이 벌어지고 딸을 잘못둔 죄로, 아버지가 사과하고, 마녀를 경찰이든 검찰의 포토라인에 세우거나 포승줄에 묶어 집단적 환호를 자아낸다.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행동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선 이론이 없을 것 같다. 당사자는 사죄를 하고 그의 부친은 그를 회사일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정도로 일이 전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이른바 ‘갑질’ 행위를 비난하는 집단은 누구인가.

조현민 전무가 던진 물컵의 상대자의 광고회사는 재벌 계열사다. 그 재벌은 한진그룹보다 더 크다. 재벌기업들끼리 서로 광고를 대행해주다가 일어난 일이다. HS애드라는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면 대한항공의 광고물량을 따지도 못했을 것이다.

언론들이 조 전무의 사태를 계기로 조씨 일가를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조씨 일가와 대한항공을 몰아치는 그 매체들도 재벌과 다름없는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언론재벌이다. 우리나라 언론재벌의 경영행태가 일반 재벌보다 낫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드믈 것이다. 이들 매체는 자신의 오너를 한진 가문처럼 조지고, 패고 비판한 적이 있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경찰도 당당하지는 못하다. 물컵을 던졌다고 득달같이 압수 수색을 하던 경찰은 두르킹 사건에서 보여준 행태는 어떠했나. 힘있는 자의 일은 숨겨주고, 사회적 비난이 된 상대는 마냥 뒤지고…. 그런 행태를 보여줬을 뿐이다.

우려되는 것은 조현민이라는 재벌 3세의 잘잘못보다는 집단주의적 사고가 만들어낸 광기의 사회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만들어낸 네트워크 여론이 비과학적 감성에 의해 이끌려 가고, 권력 기관이 이를 추수한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 사회의 틀을 벗어나기 십상이다. 일종의 집단적 주술에 의해 사회가 움직인다면, 그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세상은 천사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는 실수를 하고, 누군가는 성질이 못된 일을 벌일수도 있다. 그런 일이 집단적 미움의 대상이 될 때 마녀사냥의 바람이 불고, 집권자들은 그 광기를 이용한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카톨릭과 절대주의 왕정이 야합해 마녀사냥을 이용했듯이….

조현민 사태의 중심에는 기득권적 언론과 새롭게 형성된 사이버 군중이 있다. 기득권적 언론이 자신의 구조적 모순을 감춘채 사이버 군중에 자극하는 양상이다. 대한항공이 사이즈에 비해 충분한 광고물량을 내어주지 못한 게 원인이었을까.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전무에 관해 이런 글을 썼다.

“이 사건을 단순히 "갑질"이라는 도덕적 잣대만 들이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재벌의 부모는 자식이 최고 경영자로서 스트레스를 감내할 정신 건강이 있는 자식인지부터 객과적으로 살펴보고 자리를 내어 줌이 자식들을 망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도 모든 것을 도덕적 잣대, 인격의 결함으로만 몰고가면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이 있어서 속으로 아픈 사람들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요즈음 인기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활동을 접는 경우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너무 쉽사리 도덕의 매질부터 하지 말자. 당신도 나도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다. 누구나 감기가 걸리듯 정신도 감기가 걸린다.“

 

▲ /대한항공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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