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제철소 삼화제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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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제철소 삼화제철을 아시나요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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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에 지어져…생산성 낮아 폐쇄되고 포스코가 고로 1기 인수해 전시

 

올해는 포스코 출범 50주년이 되는 해다. 포항 허허벌판 바닷가에 창업자 박태준이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돈도 기술도 없이, 맨손으로 제철소를 지었다고 포스코 역사는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근대화 과정에 포스코에 앞서 제철소가 있었다. 이름하여 삼화제철(三和製鐵)이다.

삼화제철은 지금 강원도 동해시에 있었다. 행정구역이 바뀌기 전엔 삼척군 관할이어서 삼척제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삼화제철은 일제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 일본은 2차 대전말기에 한국과 중국, 몽골, 북해도, 대만 등에 조강능력 50톤 규모의 소형용광로를 곳곳에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무연탄과 철광석 산지를 인근에 둔 삼화제철이다. 삼화제철은 태백과 삼척의 무연탄과 강릉·양양 일대의 철광석을 원료로 쇳물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고레가와 긴조(是川銀藏)라는 일본 기업인이 있었다. 그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업가’ 혹은 전후 일본의 주식시장에서 ‘최후의 승부사’로도 널리 회자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1943년 말 자본금 100만 원으로 강원도 동해시에 고레가와(是川)제철을 세웠다. 국책회사 동양척식(주)과 조선총독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고, 국책금융조직인 산업설비영단의 시설자금과 전시금융금고의 운전자금으로 소형 용광로 제철사업에 진출했다.

고레가와제철은 무연탄 제철의 기술적 결함, 심각한 자원의 제약, 급격한 원가 상승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조선총독부의 금융 수혈로 간신히 버티다가 곧이은 일본 패망과 함께 우리 손에 넘겨졌다.

 

▲ 1961년 9월23일 국내 최초의 용광로인 삼화제철소의 제3용광로 기화식에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첫 화입을 하는 모습(KTV 대한뉴스 333호 화면 캡쳐)

 

일제가 경영하던 이 적산(敵産) 기업은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를 거치면서 삼화제철공사라는 국영기업으로 운영되다가 1958년 5월 범한무역(주) 사장 설도식에게 불하되면서 대한민국 최초 민간 제철인 삼화제철(주)로 출발했다. 범한무역의 설도식은 철강인으로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고, 삼화제철을 인수한 후에도 삼화제철의 조업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다.

해방초 삼화제철의 생산 능력은 하루 평균 30톤이었다. 5고로까지 가동해도 선철 생산량은 월 3,600톤에 불과했다. 1945년도에 남한에서 생산된 선철이 고작 13만9,000톤이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장군은 철강산업에 대한 야망이 컸다. 그는 쿠데타 직후인 1961년 9월 23일 국가재건국민회의 의장 자격으로 군복을 입은채 삼화제철 제3용광로에 불을 붙이고 쇳물이 흘러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박정희는 철강이 산업의 기초소재이며, 철강산업이 산업 전방과 후방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삼화제철은 박정희의 꿈을 여지 없이 짓밟았다. 삼화제철의 용광로는 경제성이 낮았다.

1962년~1972년까지 한국에서 삼화제철이 유일하게 제선시설을 보유했지만 1966년부터는 설비가 노후되어 거의 폐기 수준에 이르렀다. 1965년 8월 동국제강이 연산 3만 톤의 소형용광로를 설치했지만, 고압조업을 시험하는 단계였다. 시험 과정에서 동국제강은 선진국 제철소에서 100kg이면 충분한 코크스를 600Kg나 투입해야 하는 기술 능력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삼화제철에 실망해 동국제강, 연합철강, 인천제철, 한국철강 등 국내 철강공장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종합제철소 건설 구상을 구체화 시킨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은 마침내 박태준에게 새로운 제철소 건립을 지시하게 된다.

포항제철의 설립을 계기로 삼화제철은 무용지물이 된다. 삼화제철은 낮은 경제성 때문에 포항제철 1고로가 준공되기 직전인 1972년부터 가동을 중단하고 모든 설비를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했다.

가동중단된 삼화제철을 1973년 10월 동국제강이 인수해 생석회 소성(燒成)공장으로 활용하다가 1991년에 건설회사인 대동건설(주)를 넘겨 제철소 부지는 아파트 건설 부지로 전용하게 되었다.

고철이 되어버린 제철설비는 철거되는 과정에서 8기중 1기는 1993년 포스코에 넘겨졌다. 포스코는 이를 인수해 원형을 복원한 뒤 2003년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남한에 건립한 용광로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용광로다. 이 용광로에선 포항제철이 건립되기 전까지 하루 20톤의 선철을 생산했다.

문화재청은 국내 최초의 용광로이자, 우리나라 제철 기술과 제철공업 발달사에서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사적·산업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2005년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했다. 높이 25m, 직경 3m, 중량 30톤이다.

 

▲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된 삼화제철소 고로. 1993년 포스코가 인수해 원형을 복원한 뒤 2003년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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