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가 힘드신가요? "츠바키 문구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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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쓰기가 힘드신가요? "츠바키 문구점"으로 오세요
  • 김이나 에디터
  • 승인 2018.04.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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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絶緣)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지금도 시내에 있는지 모르겠다. 대서소 말이다.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서류들을 서식에 맞게 바른 글씨로 써주는 곳으로 기억한다.

<츠바키 문구점>을 읽으면서 처음엔 대서소를 연상했다. 주인공 포포가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필작가의 이야기다. 의뢰인의 사연을 듣고 그가 원하는 내용을 편지지에 써서 보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대필작가다.

기본적으로 글씨를 잘 써야 할 것이다. 포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런 할머니가 싫어서 다른 나라로 떠돌았지만 할머니가 죽은 후 다시 돌아와 문구점을 맡게 된다.

▲ 츠바키 문구점 / 예담

표면적으로는 문구점이지만 알고보면 '글씨 만물상'이라고 포포가 명명하듯, 포포는 다양한 편지를 의뢰 받는다.

조문을 못 가서 대신 보내는 위로의 편지부터 첫사랑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죽은 남편이 천국에서 보내는 편지,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점잖게 거절하는 편지, 이혼 보고 편지, 절연장(絶緣狀) 등등.

이혼 보고 편지도 놀라웠지만 절연장이 인상적이었다. 절연장, 말하자면 사람과의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후 보내는 편지다. 사람은 사귀기도 힘들지만 절교 또한 쉽지는 않다.

2년 전 개인사로 무척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속칭 잠수를 8개월 정도 하고 난 후 다시 사람들과 소통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카톡이나 문자로 생존 신고(?)를 했지만 2년전까지 유지하던 관계를 아직 백퍼센트 복구하지 못(안)하고 있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기 다르다'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라서 가늠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 이유다. 내가 과거의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것은.

2년간 잠수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기 힘들었고 그걸 이해 시키기도 무척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연락을 안 했나고, 내가 필요할 때 넌 어디 있었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해 난 너무 많은 힘을 썼고, 그 어둠 속에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찾기엔 그 터널 속은 너무 어두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같은 고향에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회사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너는 죽을 때까지 교류를 해야하는 관계로 살아간다. 하지만 솔직하고 싶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데 우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명절에 보내는 영혼없는 단체 메시지, 연초에 보내는 알량한 인사, SNS의 친구 수를 늘리기 위해 동원된 친구들.

 

▲ 드라마 "츠바키 문구점" / NHK 홈페이지


나의 에너지를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 쓰고 싶다. 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제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다. 그래도 기억하고 싶다면 앨범을 들춰보면 된다. 좋았던 때를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절연장을 의뢰한 사람은 포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나이에 누구하고 절교하고 싶다니 어린애같은 생각이겠지만요, 어른 세계가 의외로 그런 거예요. 어른이 되어 뭐가 편한가 하면 그런 점이죠.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사귀지 않아도 되잖아요?"

 

대필 작가 포포의 절연장은 상대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며 끝맺는다. 물론 그런 절연장을 받는다면 상대는 무척 당황스러워 깊은 상념에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숙고도 없이 우리가 질질 끌고 온 관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단칼에 잘라내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 조절할 수 있고 잘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남겨 두자. 주인공 포포가 죽은 할머니 앞으로 긴 편지를 쓰는 장면은,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좀 담백해지고 싶다. 그리고 좀 가벼워지고 싶다.

소설 속의 그 여인처럼

  "앞으로 남은 인생은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살고 싶"  은데,,,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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