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페이퍼 받은 인생이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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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페이퍼 받은 인생이 기적이라고?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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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수년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거였다. 평소 찾지 않던 소설가의 책을 읽게 된 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그것도 여러 권이 올라 있기도 하고, 주위에서 읽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기도 해 관심이 생겼고. 얼마 전 뉴스에서는 이 소설의 구절을 언급하며 논평까지 내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곤 못 베이게 했다.

맛집 평가에 많이 인용하는 표현으로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을 얘기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한 권만 읽을 독자는 없을 것이라고?”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은 있겠으나, 한 권만 읽게 될 독자는 없을 것이다”라는 출판사가 할법한 말을 비틀었다. 내가 한 권만 읽게 될 바로 그 독자라는 말을 하지만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번역자가 후기에서 고백한 것처럼 나도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읽긴 했는데 읽으며 불편함과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을 읽은 감상이 번역자나 출판사 혹은 그의 충성도 높은 팬들과 같아지라는 법은 없으니까.

▲ 나미야잡화점의 기적 / 현대문학

“기적에 대한 완벽한 구성”이라는 번역자의 후기와 이를 인용한 홍보물을 많이 보았다. 물론 잘 짜인 구성과 복선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잘 엮이고 풀려나갔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곤 했다. 기적이라고?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혹은 “신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한 사전의 정의대로라면 맞다.

그렇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기적이라기엔 억지스러운 우연의 연속’이었다. 소설이라지만 부자연스러운 우연의 연속.

어떤 범행을 저지르고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세 명의 청년이 있다. 그들에게 날아든 ‘상담편지’를 두고 고민하다 ‘답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 큰 날줄이고. 이후 ‘상담’과 ‘답장’ ‘답장의 답장’이 이어지며 여러 이야기가 씨줄로 풀리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골격이다. 그 가게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타임머신이고 그들에게는 기막힌 인연의 고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

소설에서는 이 상담편지를 쓴 인물들을 담담히 그려내는데 모두 ‘환광원’이라는 아동복지시설과 인연이 있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상담한 운동선수는 옆집에 살던 ‘하루미’에게 나미야에 상담편지를 보내보라 하는데 마침 그녀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이 환광원이었고. 프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상담했던 생선가게 아들이 위문 공연하러 간 곳도 마침 환광원이었다. 이 사람의 희생을 기리려 유명가수가 된 여인도 환광원 출신이라는 식이고. 심지어 환광원 출신 ‘하루미’의 집을 털고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들었던 세 명의 청년들도 그 시설 출신이었다.

이런 우연, 아니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기적’의 이유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환광원과 나미야 잡화점이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하늘에서 그 끈을 연결”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을 두고 기적에 대한 완벽한 구성이라고 하는 걸까? 우연이 지나치게 많았지만 연속되니까 기적인 건가. 사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우연들이 엮이고 기적이 터져 나오는 소설 속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기적의 이유를 알게 되면 허탈감이 들지만, 독자들이 좋아할 소설이긴 하다. 잘 짜인 구성에 재미있기까지 한 소설.

 

커닝해서 사는 삶이 기적인가?

 

삶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싶다고 상담을 한 과거의 하루미에게 미래의 세 청년은 일본이 겪게 될 경제 흐름을 알려주며 그에 맞춰 투자하라고 권한다. 마치 문제를 알고 만든 컨닝페이퍼처럼 구체적 시기와 종목에 맞춘 조언으로 답장한다. 하루미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예언으로 믿지만, 사실은 미래서 보낸 커닝 페이퍼다. 일본이 겪게 될 수십 년의 호황과 불황 그리고 회복을 몇 줄의 편지로 알려주니 그것을 자신을 위한 예언으로 믿고 수십 년을 시킨 대로 살고.

 

▲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틸 컷

 

천기를 거슬러서라도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소설가가 훔쳐본 건 아닌가 생각했다. 어쩌면 버블시대의 호황에 늦게 뛰어들었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여 나락에 떨어졌을 많은 일본인에게 주는 위로를 담았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다만 답안을 콕 집어 준 그대로 사는 건 문제를 파악할 노력은 하지 않고 해답만 찾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씁쓸했다. 착하고 열심히만 살면 그런 행운을 가져도 될까? 그럼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노력하고 공부하며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에겐 행운이겠지만 다른 이에겐 ‘부정행위’가 될 수 있다. 그들만의 잔치로 그려져 불편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문학이 주는 희망은?

 

나에게 책을 읽는 즐거움은 글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내 모습을 대입할 수가 없었다. 소설처럼 그 기적을 맛보기 위해서는 선택되어야 하니까.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선택당해지는 그런 상황이 내게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것이 이 장르가 독자에게 주는 덕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현실에선 영원히 없을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덕목.

젊은이들은 세상을 커닝이라도 해야, 아니 지름길로 질러가야, 잘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천기누설’ ‘족보’ ‘내부자 정보’ 등등을 찾고 다니고. 그런 말에 혹해 있지도 않은 자산을 총동원하기도 한다.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힘들게 걸어간 산속에 시원하게 솟아오른 샘물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 땀 흘려 얻는 샘물처럼 가슴 뿌듯한 청량감. 그 청량함은 상상이 아니라 내가 직접 떠 마실 수 있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그런 마음을 느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겠지. 나도 누군가 커닝 페이퍼를 던져 주면 덥석 받을까? 아마 받겠지?

 

 

▲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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