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 인장이 왜 사가에서 발굴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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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비 인장이 왜 사가에서 발굴되었을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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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쪽 통의동 발굴지에서 2점 발굴…분실 또는 도난 추정

 

조선시대 왕비의 인장이 왜 사가의 땅 속에서 발견되었을까.

서울지하철 4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자하문쪽으로 100m쯤 가다 보면 장막을 친 문화재 발굴현장이 있다.

(재)수도문물연구원이 올해 1월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유적’을 발굴조사하다가 조선 시대 왕비의 인장인 내교인(內敎印) 2과(顆)가 땅 속에서 나왔다. 내교인 1과와 소내교인 1과다.

 

▲ 발굴 위치 /네이버지도

 

발굴현장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 70번지는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서쪽으로, 주변에는 조선 시대 관청인 사재감(司宰監) 터와 조선 21대 영조의 사가였던 창의궁(彰義宮) 터가 인접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교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2과가 전부인데, 발굴조사에서 내교인이 출토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왕궁도 아닌 사가의 땅 속에서 발굴된 것은 정상적이 아니다. 발굴조사단은 "대한제국 이후 혼란기에 분실되었거나 도난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 출토된 내교인장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은 2단으로 구성된 정사각형의 인신(印身) 위에 뒷다리는 구부리고 앞다리는 곧게 펴 정면을 보고 있는 동물(추정 ‘충견(忠犬)’)형상의 인뉴(印紐, 손잡이)가 있다. 동물의 형상은 위로 솟은 꼬리와 목까지 늘어진 귀에는 세밀한 선으로 세부묘사가 되어 있다. 이 내교인보다 다소 크기가 작은 ‘소내교인’도 같은 형상인데, 동물의 고개는 정면이 아닌 약간 위를 향한 모습이다. ‘내교인’의 인장은 너비 4cm×4cm, 높이 5.5cm이며, ‘소내교인’은 인장너비 2cm×2cm에 높이 2.9cm이다.

인장들의 인면(印面)에는 각각 ‘내교(內敎)’라는 글자가 전서체(篆書體)로 새겨져 있는데, 조선왕조실록 영조 14년(1761년)의 기록을 통해 ‘내교인(內敎印)’은 조선 시대 왕비가 사용한 도장임을 알 수 있다. (전서체는 한자 서체의 하나로 진시황제가 제정했으며, 도장을 팔 때 많이 사용한다.)

재질은 구리 합금인데, 청동인지 황동인지 여부는 정밀조사 후에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 내교인 2과의 인면(印面) /문화재청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인 󰡔명례궁봉하책(明禮宮捧下冊)󰡕과 󰡔명례궁상하책(明禮宮上下冊)󰡕에는 왕실재산을 관리했던 명례궁에서 관리하는 물품의 종류, 지출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이 적힌 본문에 먹으로 찍힌 ‘내교인’이라는 글자가 있어, 이를 통해 명례궁의 지출에 대한 검수가 왕비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조실록(英祖實錄)󰡕 영조14년(1761) 10월 22일조에는 "자전(慈殿)에는 자교(慈敎)가 있고 내전(內殿)에는 내교(內敎)라 일컬으며, 빈궁(嬪宮)에는 내령(內令)이라 일컫는다. 이에 만약 도서(圖署)하게 되면 세손빈에도 마땅히 그 표시가 있어야 하니, ‘내음(內音)’이라고 하여 체제를 백자(白字)와 같이 하고 궤짝과 흑통(黑筒)을 갖추되 정원에서 만들어 들이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고종(高宗) 때인 1902년(광무 6년) 조선과 대한제국의 국새를 포함한 왕실 인사의 보인(寶印, 인장)과 부신(符信, 증표를 찢어 지나다가 나중에 맞추어 증거로 삼는 물건))을 정리해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라는 책자를 간행했는데, 그 책자에는 ‘내교인’과 ‘소내교인’ 2과에 대한 도설(圖說), 크기와 재료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번에 통의동에서 출토된 내교인 2과와 그 조형적 특징이 매우 유사하다.

 

▲ 발굴현장 /문화재청 제공

 

이번 발굴 지역에선 조선 시대부터 근대기에 걸친 건물지 관련 유구 20여 개소와 도자기 조각, 기와 조각 등의 유물들도 확인되었다.

문화재청은 출토된 내교인장은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유물의 성분과 주조기법 등에 대한 더욱 정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 발굴 인장과 기존 인장의 비교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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