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레이디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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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정...「레이디버드」
  • 채 담
  • 승인 2018.04.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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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얼샤 로넌의 러블리한 매력이 돋보인 영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아진 건 고무적이다. 물론 그 숫자는 미미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에 끌려 본 영화다. 하나 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빵집 아가씨를 연기했던 시얼샤 로넌이 주인공이라는 것.

제목이 특이하다. 레이디 버드. 주인공 크리스틴에게는 이름이 문제였다. 아름답고 무척 고전적인 이름인 크리스틴을 크리스틴은 싫어한다. 내 이름인데 내가 싫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에게 만들어 준 이름은 “레이디 버드”.

레이디버드는 무당벌레라는 뜻이 있지만 크리스틴이 학생회장 후보 포스터에 그린 그림을 보면 곤충은 아닌듯 하다.

다만 lady를 붙인 것은 카톨릭의 영향이 아닐까 넘겨 짚어 본다 (‘our lady’는 성모 마리아). 스스로를 귀부인이라 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테고.

 

 

▲ 영화 "레이디버드" 포스터 / NAVER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 아니, 태어나는 것도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신생아 네임밴드에는 누구의 아들 혹은 딸로 쓰였다가 후에 자신의 이름이 부여된다. 이름은 생물학적인 꼬리표가 아니라 사회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꼬리표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이름. 그래서 만든 나의 새로운 이름 레이디버드로 불리고 싶은 크리스틴은 남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강한 의지의 소녀다.

 

내가 만들어가는 나

 

▲ 영화 "레이디버드" 스틸 컷

 

영화는 고물차를 타고 칼리지 투어(college tour :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가 지원하기 전에 미리 여러 대학을 둘러보는 일)를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와 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21시간 내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오디오 북을 들었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시대 미 서부 농민들의 피폐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서부, 분노의 포도, 소설 속 조드(Joad) 가족의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 퍼즐이 그려진다.

칼리지 투어가 끝난 후에도 서로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모녀. 이젠 음악을 좀 듣자는 딸을 엄마는 나무란다. 사사건건 맞지 않는 모녀. 크리스틴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크리스틴은 모든게 불만이다. 나고 자란 새크라멘토, 이름, 별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 모델같지 않은 몸매. 대학만은 내 맘대로 정하고 싶다. 오빠처럼 절대 주립대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으나 동부의 대학에 가는 게 목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즐비한 미 동부는 역사적 전통이 있고 예술가들로 넘쳐나며 글로벌하다. 캘리포니아 주에도 좋은 대학이 많다는 엄마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지긋지긋하다.

대신 엄마가 크리스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카톨릭 계통 사립 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형편은 되지 않으나 공립 고등학교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말에 무리한 것이다. 엄마는 그것이 크리스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여긴다.

카톨릭 고유의 규율과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크리스틴이지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방과후 뮤지컬 연습에도 참여하고 이른바 학생부에 좋은 기록을 남기고자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렇다고 부족한 수학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반면 그녀의 절친 쥴리는 오히려 그 반대. 싱글맘인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와 살지만 그녀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자신의 현실에 대해 순순히 받아들인다. 크리스틴 보다 수학도 잘하고 노래도 훨씬 잘 불러 주인공을 맏게 되지만 주립도 아닌 시립대학을 간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 크리스틴의 닉네임도 한 번 흉내냈을 뿐 어쩌면 더 평범한 이름인 쥴리에 불만이 없다.

크리스틴이 나를 만들어가는 도중엔 두 남성이 등장한다. 첫번째 남자친구 대니. 키스만 할 뿐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 젠틀한 대니는 후에 동성애자임이 드러났고 크리스틴은 그의 슬픔을 어루만져준다. 두번째 남자친구 카일. 크리스틴은 그와 만나기 위해 인기 많은 부잣집 친구 제나를 따라다니며 대니 할머니의 저택을 자기 집이라 거짓말도 하지만 카일 역시 그녀가 생각했던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과의 유대가 생각만큼 기쁘지 않던 크리스틴은 프롬 파티(prom party : 미 고등학교 졸업반들의 졸업 파티)에 가지 말자는 그들의 제안을 뒤로하고 자신과 멀어져 괴로워하던 쥴리를 설득해 프롬 파티에 참석한다.

 

불안한 어른들 그리고 엄마

 

▲ 영화 "레이디버드" 스틸 컷

 

명문 버클리대학교를 나와서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어싱한 여자친구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오빠 미구엘. 프로그래머였으나 퇴직 후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는 아빠. 가정파탄 후 신부가 된 뮤지컬 지도 신부 역시 아직도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크리스틴의 엄마에게 상담을 받는 모습이 비춰진다. 사실 질풍노도의 삶을 사는 크리스틴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들이라고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어른들.

그녀를 구속하고 힘들게 하는 엄마 역시 자신의 현실에 버거워하지만 엄마는 어쩌면 우울할 틈이 없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다시 '분노의 포도'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더 이상은 할 수 없어. 내가 그 이상 뭘 하려고 하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될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는게 식구들을 돕는 거야.

 

평생 한 번 입는 프롬 드레스를 thrift shop (중고의류 가게)에서 사줄 수 밖에 없는 엄마. 딸은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지만 엄마의 눈엔 무얼 입어도 눈부실 뿐이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의 취미는 일요일마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다. 25년간 떠나지 못한 그 집을 떠나 아이들에게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엄마. 실현가능성이 낮은 꿈이지만 그 꿈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 그러나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딸의 꿈은 너무 크다.

 

리스틴, 혈액형 A

 

좀처럼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하는 크리스틴. 그러다 한군데로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라갔음을 알리는 편지가 온다. 캘리포니아 주립대로 밀어 붙이는 엄마에게는 말을 못하고 아빠에게 의논한다. 결국 아빠의 지원으로 학자금 대출도 받고 합격 소식을 받고 동부로 떠난다.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 감독 존 포드는 어머니와 아들이 만났을 때 포옹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유는 시골 사람들은 가족끼리 그렇게 인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어머니와 아들이 악수하는 것으로 연기 연출됐다. ( “세계영화작품사전” / 씨네21)

친구들과도 포옹 대신 악수를 하던 크리스틴. 다시 한 번 분노의 포도의 어머니가 오버랩된다. 영화 '분노의 포도'의 오마주인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에는 악수로 친밀함을 표현하는 크리스틴과 딸을 배웅하며 차에서도 내리지 않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주차비가 너무 비싸서 차를 주차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그러나 크리스틴을 내려주고 울며 다시 공항으로 향하는 엄마. 곧 다시 올거라고 위로하는 아빠. 아빠는 이것 말고도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해 준다.

그녀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뉴욕. 친구들과 밤샘 파티도 한다. 고향을 묻는 친구에게 새크라멘토라고 하지만 못알아 듣자 샌프랜시스코 라고 해버린다. 하지만 술에 취해 바라본 별을 향해 브루스 라고 외치는 크리스틴. 대니와 풀밭에 누워 바라본 고향의 별. 그녀는 어느새 고향이 그리워 진걸까.

과음으로 병원 신세를 진 크리스틴. 잠에서 깨니 네임밴드가  보인다.

크리스틴 A형. 자신이 그토록 불리기 싫었던 그 이름 크리스틴이 씌여진 네임밴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침 일요일이란 걸 알고 가까운 성당으로 간다. 아빠가 몰래 넣어준, 엄마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고난 후 아빠에게 전화하는 크리스틴.

운전 면허를 딴 후 엄마의 차를 몰면서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운전하면서 새크라멘토가 아름답다고 했을 때 자신은 수긍하지 못했었다고. 그런데 스스로 운전을 하면서 엄마가 말하던 새크라멘토의 낯익은 풍경들을 사랑하게 됬다??

떠나보면 안다고 그랬던가.

크리스틴은 이제 운전석에 앉았다.

자신의 삶을 '드라이브' 하면서 달라질 크리스틴. 남을 모방하고 나를 속이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까.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고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살아내는 엄마를 크리스틴은 진정 이해하게 될까.

브루스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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