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 읽어본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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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꺼내 읽어본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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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고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책을 사면 가족이 하는 얘기가 있다. 한번 보고 말 거 왜 자꾸 사느냐고. 맞다. 책장에는 한 번만 읽었거나, 서문과 차례만 훑어보고 만 책들로 넘친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읽게 되는 책도 있다. 쌓인 먼지가 무색하게 아름다운 책이다. 이번에 다시 읽은 「사람아 아, 사람아!」는 처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단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격동기 중국에서 살아온 지식인들의 삶. 그 고민의 나날들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쓰고 ‘신영복’ 옮김

 

▲ 사람아 아 사람아 / 다섯수레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1991년이다. 당시 사회과학 독서를 한다 하는 학생들은 거의 읽었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지만 무엇을 느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들 읽기에 나도 읽는다는 ‘트렌드 소비’ 측면이 강했을 것이다.

당시는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이 구소련의 해체로 이어지고 한중수교를 앞둔 시기였다. 사회주의 진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증이 폭발한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중국 특히 중국 지식인을 다룬 소설이 많은 이에게 관심을 받은 것 아닐까.

이 책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이 보낸 광고 메일을 보고 책장을 뒤져 보았다. 앞칸에는 당연히 없고 뒤 칸까지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결혼과 몇 번의 이사로 정리된 책들에 포함되었나. 평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선생이 번역했다는 것이 떠올랐고, 그의 글씨가 들어간 사은품도 맘에 들어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상대방 눈이 되어 나를 본 적이 있는가?

 

혹시 이런 적 있지 않은가?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 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상대의 눈이 되어 나를 보고, 그의 마음이 되어 나를 느껴보는. 나는 그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저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목소리는 어떨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관점에서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앞장에서 A와 B가 토론을 한다면, A의 입장에서, A가 주인공이 되어 B를 바라보며 서술하고. 뒷장에서는 반대로 그 상황을 B가 주인공이 되어 A를 바라보며 서술하는 방식이다. 어떤 한 상황에 관해 두 사람의 입장을 모두 들어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11명의 인물 모두의 처지에서 소설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듣다 보면 각자의 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때 왜 부인에게 이혼 통보를 했는지, 왜 앞장서서 친구를 비판했는지. 자신이 믿고 있는 소신에 어긋나는 글을 왜 발표했는지···.

이런 식으로 모두의 의견을 들어주는 작가의 의도는 명확하다. 제목에도 ‘사람’을 연거푸 쓴 거에도 알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이다.

 

영혼이여 돌아오라

 

작가가 후기에 부제로 쓴 게 ‘영혼이여 돌아오라’ 이다. 이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시대를 다루고 있다. 정확히는 “그런 ‘역사적 갈등’이 인간과 인간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 인간과 인간관계는 이러한 격동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신영복은 역자 서문에 썼다.

사회주의를 모든 민중에게 적용하기 위한 ’계급투쟁‘ 시절인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는, 그 선전 선동에 앞장서야 했고. 사회주의가 자리 잡히자 정파 간 ’노선투쟁‘에 내몰리던 상황을 11명의 등장인물 각자의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시류에 흘러 살아왔는지 각자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이 두 투쟁의 목적이었는데, 사람은 소외되고 사상과 노선만 부각 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은 서로 통한다는 작가의 소신을 등장인물들이 겪은 격랑을 통해 그려내고자 했다. 사람이 우선이고 모든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작가의 경험에서 우려낸 사건들과 인물들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작음이 있긴 하지만 11명의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하는 여자와 딸. 그녀의 전남편과 그녀를 학교 때부터 마음에 담아온 한 남자. 이들의 직장 상관이자 당 간부들. 그리고 동료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거기서 나오는 의견과 행동이 함께 어우러져 전체를 관통하는 큰 이야기로 완성된다. 소설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사건들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중국 지식인들은 소설에서 다룬 어떤 도시의 대학교에서 벌어진 ‘노선투쟁’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겹쳐지는 감정이입을 맛보았다고 한다. 11명의 등장인물 역시 그런 과정에서 있을법한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었을 중국인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는 주인공들이다.

소설에서는 달라지는 세상을 인정 못 하는 구세대를 비판하면서 여러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한 논문을 당 간부가 미리 검열하고 출판국에도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논문 내용에 동조하고 저자를 옹호하는 세력이 많아지자 전혀 다른 사건을 일으켜 본말을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문제 있는 관계로 프레임을 전환 시켜 버린다. 본말전도는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진영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작가 본인은 정작 소설에서 비판했던 ‘당 간부와 출판국의 검열’을 피해가기 어려웠는지 맥락과 어울리지 않게 ‘국가와 사상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 장면을 읽다 보면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이 소설은 당 간부들의 권위주의와 무사안일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최고의 한 구절

 

“결국, 인생이 최고의 분장사인 셈이다.”

수십 년을 돌아온 그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사상도, 외모도. 찡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름지는 얼굴을 인생의 분장사로 비유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달라진 얼굴과 몸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무대로 타고난 배우인 ‘사람’이 그려내는 드라마.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다. 한 장을 읽으면 그 장에서 3인칭이었던 사람이 다음 장에서는 1인칭으로 얘기해줄 그의 입장이 너무 궁금해진다. 그만큼 이들의 세월이 안타까웠고, 엇갈린 사랑에 마음 아팠다. 이렇게 마음을 때리는 소설이 기억나지 않았다니. 당시 읽긴 했었나 싶었다.

이 책을 처음 읽고 25년이 지났다. 주인공들이 겪은 세월만큼이다. 당시에는 이들의 감정과 변화들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렸을까? 이제 그들만큼 나이도 먹었고,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풍파를 겪고 나니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시 꺼내 읽어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사족 한 문단

 

지난 20여 년 많은 중국인을 만나 보았다. 사업가, 직장인, 유학생, 정부 관료··· 그들에게서 사회주의가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라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틈만 나면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토론하며 국가는 이래야 한다는 각자의 생각을 토로하고 있는데. 지금을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사랑하며 이루고 싶은 것을 무엇일까.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UNT( University of North Texas) 수학, 서울 과학기술 대학교 대학원, 컨텐츠 기획, 아트 펀드 기획을 해왔으며 북에세이를 꾸준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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