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은행수 늘리기보다 유기적 경쟁 초점 맞춰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우리, 하나, 신한, KB국민, NH농협) 기준 국내 점유율은 예금 74%, 대출 63.4%다.
이들 5대 은행이 지난해 벌어들인 금액은 13조8000억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은행들의 '돈잔치'를 지적하며 "은행 과점체제의 폐해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고 '완전 경쟁' 도입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금융 분야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과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 사업"이라면서 "업계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행동에 나섰다. 지난 2월 정부 주도로 5대 주요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지난 4개월여 관련 논의를 진행해 온 TF는 이르면 다음 주 중 5대 시중 은행의 과점을 깨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TF를 통해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 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6개 과제를 검토 및 논의한다고 밝혔다.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깨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시장 나눠먹기로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은행이 '돈잔치' 대신 경쟁에 나서야 소비자 이익이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OECD와 비교해도 한국의 상위 5대 은행 자산집중도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 낮은 편인데다 5대 은행 체제는 정부의 통폐합 정책의 산물로 또다시 관치금융으로 마침표를 찍을까 우려한다.
정부가 그리는 밑그림은
금융당국이 그리는 밑그림은 크게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위한 인가 세분화(스몰 라이선스)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인터넷 전문은행 추가 ▲시중은행 추가 인가 ▲저축은행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이다.
스몰 라이선스나 소규모 특화은행은 은행 업무 중 일부 분야에 한해 인가를 내주는 제도 또는 그런 업무를 하는 은행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챌린저뱅크가 있다.
챌린저뱅크는 정보기술(IT)를 활용해 중소기업금융과 소매금융 등 일부 은행 업무를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처리하는 은행이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과 유사하면서도 특정 영역에 특화된 은행이다. 일반적으로 은행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오프라인 지점을 개설해 업무를 수행한다. 챌린저뱅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대형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영국이 2013년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중화된 온라인 뱅킹의 영향으로 유럽 내에서도 지점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TF는 챌린저뱅크가 도입되면 금융서비스 수수료가 낮아지고 소비자 선택권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소자본금은 시중은행의 1000억원보다 낮은 지방·인터넷은행 수준인 250억원 수준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특화은행 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TF가 벤치마킹 사례로 지목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최근 유동성 위기에 따른 지급 불능을 이유로 파산했다. 금융당국은 TF 논의 과정에서 SVB 파산 사태를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은행권의 은행업 진출도 본격 추진한다. 카드사에 종합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과 증권사에 법인대상 지급결제의 문을 열어주는 방안, 보험사에 지급결제 겸영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테이블 위에 올라있다. 지급결제 업무 도입은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의 숙원이다. 당국은 지금까지 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전자금융거래를 해야 했던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가 지급결제 결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고객이 간편결제, 송금, 급여 이체, 보험료 납부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사업자가 되면 예금과 대출을 제외한 모든 은행 업무가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해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에 이은 제4의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론 당장 추진하는 건 아니지만 시장 수요가 있을 경우 언제든지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TF의 최종안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와 관련해 언제든 법상 요건만 갖췄다면 신청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가능성도 있다. 그간 금융당국은 지방은행 중 자본금, 지배구조 요건을 갖춘 굿에 시중은행 인가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외에도 온라인·대환대출 시스템 도입과 은행 경영진 보수 결정 과정에 주주가 직접 참여하는 방안, 손실 발생 시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회수하거나 삭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완전 경쟁' 가능할까
정부의 청사진처럼 은행업권의 완전 경쟁이 실제로 가능할까.
사실 이런 논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부터 있었다. 2020년 한국은행이 발간한 '우리나라 은행사업의 미래와 시사점' 보고서는 "국내 은행산업은 엄격한 진입규제 아래 과점구조가 고착화 됨에 따라 저위험·고수익 추구가 가능한 담보대출 위주의 자산 포트폴리오 편중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디지털 경제 확산,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라 다양한 금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하는 등 금융혁신을 통한 적극적인 은행 수익성 및 안정성 제고를 위한 유인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은 과점체제가 자칫 금융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깨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은행수 늘리기'로 촉발될 은행 산업 경쟁 촉진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2016년 '은행산업의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금융기관 간 건전한 경쟁은 과점 이익 축소를 통해 금융소비자의 후생을 증가시키고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면서도 "경쟁이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과 혁신을 수반하지 않고 특정 부문 시장점유율 확대나 가격 인하 위주로 전개될 경우 금융안정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우려한 특정 부문은 대출로 보고서는 경쟁도가 높아질수록 은행의 무수익여신비율과 부도 확률도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은행 대출시장의 경쟁이 확대될 경우 대출을 주요영업 기반으로 하는 국내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은 "기존 은행 단독으로는 시스템 전환을 위한 막대한 투자 비용과 지배 구조 안정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차세대 은행으로 변화에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금융시장 안정과 국내 은행 산업 진입규제 수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용 최소화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은행산업은 기존 은행,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이 협력, 공존하며 경쟁구도를 형성해 나가는 유기적 구조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은행업 경쟁 촉진과 금융소비자 편익 증진을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정작 고신용자 중심의 대출이 주요 수익이 된 인터넷전문은행 사례를 볼 때 정부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자칫 소비자 피해, 금융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섣부른 규제 완화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현재 체제가 과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지금도 4대 시중은행뿐 아니라 특수은행, 수 많은 지방은행 및 인터넷전문은행과 경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돌리며 '은행수 늘리기'에 나서는 건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