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호시탐탐] 페리클레스와 오바마와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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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호시탐탐] 페리클레스와 오바마와 윤석열
  • 이종근 시사평론가
  • 승인 2023.06.08 11:0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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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 시사평론가] 수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수많은 연설을 남겼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연설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국가 지도자의 연설은 강렬해야한다. 연설의 길이가 길든 짧든 청중은 맥락을 모두 이해해서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뇌리에 화살처럼 꽂히는 한 두 문장의 울림에 반응한다.

링컨의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게티즈버그 연설이나 윈스턴 처칠의 "나는 피, 땀, 눈물 외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의회 연설, 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 자체입니다"라는 취임사 역시 언급한 대목들이 두고 두고 회자될 정도로 그 연설 자체를 빛나게 하고 있다.

전쟁이나 테러에 의해 희생된 전몰장병 또는 무고한 시민들을 추모하거니 남겨진 유족들을 위로하는 추도사, 추념사일 경우는 보다 더 큰 울림이 남아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연설을 통해 갈라진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야 하고 국가가 또 다른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국민들이 기꺼이 국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버락 오바마의 2011년 1월 12일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 연설 장면이다. 

오바마, 51초의 침묵으로 국민과 감성적 소통

오바마는 해당 사건으로 숨진 8세 소녀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며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면서 "우리 모두는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장면은 그 직후 이루어졌다. 오바마는 연설을 중단했고, 10초 후 오른쪽을 쳐다본 뒤 20초 후 심호흡을 했으며, 30초 후에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무려 51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는 연설을 다시 이어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의 51초 침묵에 대해 '국민과 감성적 소통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1년 1월 12일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의 추모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당시 51초의 침묵 시간을 보냈는데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1년 1월 12일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의 추모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은 뭐니뭐니해도 그리스 전성기 아테네의 최고 권력자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링컨, 처칠, 루스벨트의 연설이 모두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 연설은 수많은 명연설의 모태가 됐다.

페리클레스는 늘 반대파의 모함에 시달렸지만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그리스의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 전쟁이 벌어졌고 그의 추도사는 전쟁에서 죽어간 장병들에 대한 첫 장례식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예로부터 이런 장례 연단에 선 많은 연사들은 관례에 따라 전몰장병들을 추도하며 장병들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관례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 누워 있는 전몰장병들은 용맹한 행동과 업적 그 자체로 존엄을 보였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업적 자체가 명예이며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들이 보여준 용맹한 행동과 덕행이 연사 개인의 추도 연설이 훌륭하다거나 서투르다고 하여 이를 통해 판단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몰자의 용기와 헌신에 대한 칭송으로 시작한 페리클레스는 그후 조국 아테네에 대한 찬사와 선조들의 노고에 대한 경의로 연설을 이어간다.

"나는 먼저 우리 선조에 관해 언급하려 합니다. 이런 기회에 그분들을 기억함으로써 그분들의 명예를 높여드리는 것이 정당하고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이 대대로 이 나라를 차지하고 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우리가 자유국가를 물려받은 것은 그분들의 용기 덕분입니다. 그분들도 분명 칭찬받을 만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더욱 칭찬받을 만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노고도 불사하며 자신들이 물려받은 것에 지금 우리가 다스리는 제국 전체를 보탠 다음 지금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페리클레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나라가 돼야”

한껏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애국심으로 고조시킨 페리클레스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몰자 못지않은 헌신을 요구한다. 그의 연설 마지막 대목은 전몰자들에 대한 정당한 예우가 국가의 부름을 기꺼이 응하게 하는 동력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들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에 필요한 것은 도시국가가 책임집니다. 이는 전몰자들과 그 유족들이 겪을 시련에 대해 나라가 해야 할 당연한 보상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나라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감한 시민들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등을 건설하고 스파르타에 맞서 용맹한 전적을 기록한 페리클레스의 진짜 무기는 칼이 아닌 말이었다. 말은 시민들을 움직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하는 힘이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에 왜 속해 있는지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치인의 말로써 일깨우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 2023년 3월 2일 국가보훈부 승격 및 재외동포청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공포안에 대한 공개 서명식에 이어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세 번째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수년간 국가의 품격은 추락했다. 국가의 품격은 또한 정치인의 말로써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에서 정치법학을 전공했다.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논설실장과 인터넷신문위원회 윤리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선거보도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신문기자로서는 은퇴했지만 평론가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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