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컬쳐 프리즘] '범죄도시3' 흥행의 교훈...눈덩이 효과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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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의 컬쳐 프리즘] '범죄도시3' 흥행의 교훈...눈덩이 효과 노려라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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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2023년 코로나 19 팬데믹의 여파로 인한 한국 영화의 위기가 언급되는 가운데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하나의 희망적 모델로 부상했다. 그 핵심 동인 가운데 하나는 눈덩이 효과다.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작게 출발하지만, 점점 커지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릴 수 있지만, 꼭 부정적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눈덩이 효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언급한 인물은 문화나 콘텐츠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로 주식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이었다. 복리의 효과를 위해 설명했는데 습기를 머금은 눈을 뭉쳐 길게 뻗은 언덕에서 굴리면 처음에는 작은 눈덩이가 몸집을 불리며 속도를 더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이 뭉칠 수 있는 습기다.

영화에서는 '본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만큼 속편으로 우려먹는 제작 행태가 만연했음을 뜻한다. 이를 깨부순 것이 스노볼 던지기였다. 할리우드의 마블이 대표적이다. 영화 역사를 새로 쓴 '어벤져스' 시리즈의 처음은 미미했다. 2008년 영화 '아이언맨'(Iron Man)이 그 시작이었고, 아무도 그 파급효과와 결과를 생각하지 못했다.

마블 시리즈가 대박난 비결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만 해도 시원찮았다. 아이언맨이자, 토니 스타크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대중에게 생소한 배우였다. 당연히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고 할리우드에서는 말썽꾼에 가까웠다. 따라서 배우가 발휘할 수 있는 티켓 파워는 기대가 없었다.

더구나 아이언맨은 일반 영화 관객에게는 접해 본 적이 없는 소재였다. 만화 캐릭터인지조차 몰랐다. 심지어 마블의 많은 만화에서 여러 히어로 캐릭터 가운데 아이언맨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단지 설문 조사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낯선 소재와 인지도가 낮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에 무슨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아이언맨'은 2008년 북미 흥행수익 2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선전했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417만 명을 넘어 430만 명으로 당시 국내 최고 외화 흥행작이 됐다.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흥행 캐릭터인 배트맨을 처음 찾아온 낯선 아이언맨이 이겨버린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어벤져스' 시리즈는 계속 흥행 가도를 달렸고, 마블은 한국 촬영을 추진하기도 했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그 뒤 다양한 캐릭터가 변주해 등장하는 마블유니버스를 구축했다. 미리 짜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아이언맨'을 제작할 당시에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성공작의 속편을 만들어가는 방식과 달랐다. 흥행작을 우려 먹기로 하는 급조된 방식과 차별화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중물과 눈덩이 효과다. '아이언맨' 제작진은 이미 만화 팬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마블의 캐릭터를 영화적 세계로 구축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에 장대하게 구성할 계획을 전제하고 투자금을 미리 유치하지도 않았다. 특히, 마니아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섣불리 제작했다가 팬심이 오히려 떠날 수 있었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띄운 의도하지 않은 영화 '아이언맨'의 성공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블의 확장된 세계관 구축이 가능하게 했던 점이 분명 있다. 이른바 눈덩이 효과의 전형이 됐다. 작은 눈 씨앗이 점점 더 큰 눈덩이가 돼 가늠할 수 없는 규모가 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글로벌 콘텐츠업계에 산사태를 일으켰던 것이다.

2008년 영화 ’아이언맨‘ 이후 2019년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어벤져스 4')이 마침내 역대 글로벌 흥행기록 1위를 차지했다. 영화 ’아바타‘는 2009년 개봉 이후 약 10년간 세계 흥행기록 1위를 지켜왔지만, 더 이상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2019년 7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2위로 밀렸다. 비록 1년 반 뒤에 중국 재개봉으로 탈환했지만, 재개봉을 제외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1위다.  ’아바타 2‘가 지난해 개봉됐지만  20억 5400만 달러(2조 5357억 원)로 5위에 랭크돼 스노볼 효과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결론났다.

사실 이런 스노볼 방식은 영화 '존윅4'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존윅’의 경우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가 좋아하는 영화가 횟수를 늘려갈수록 관객 수가 계속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재개봉 관객 수를 제외하고 1편 11만 6000여 명, 2편 25만 9000여 명, 3편 100만 4000여 명. 그리고 ‘존윅 4’의 관객 수는 170만이었다.

북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영화 ‘존 윅4’의 개봉 첫 주말 흥행 성적은 7300만 달러로 시리즈 사상 최고의 오프닝 기록했다. 갈수록 증가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영화 '가오갤'은 한국에서 1편(134만 명)과 2편(273만 명)에 이어 3편에서 400만을 넘었다. 점점 더 관객이 증가하는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영화 '범죄도시3'. 사진=연합뉴스

블록버스터 만능 시대는 지나갔나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작품 자체도 그 배경 요인이지만, 무엇보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이 일반화하면서 눈덩이 효과는 더욱 커졌다. 볼 만한 작품은 SNS나 OTT를 통해 얼마든지 입소문으로 팬덤을 만들기 때문이다. 작품의 흥행은 대규모 홍보 마케팅과 스크린 독과점, 티켓파워가 아니라 관객들이 만들어낸다. 이는 팬덤이 케이 팝을 형성시키는 자산이라는 점과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작용하는 원리를 간과해 왔다. 멀티플렉스를 통해 대형 독과점을 이루는 블록버스터형 영화모델을 선호했다. 연작 시리즈를 기획해도 관객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서두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달걀이 아직 병아리가 되지 않았는데 이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이미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 3부작 시리즈는 물론 영화 '외계+인'은 1편과 2편을 한꺼번에 제작을 발표했다. '한산'은 선방했지만 '명량'에 비해 턱도 없었고 350억 원 이상을 들인 천만 감독 최동훈의 '외계+인'은 두 편을 제작했지만, 새로운 시도와 작품성과 관계없이 완전히 망한 수준이 되었다.

현실주의가 강한 한국적 문화 풍토에서 초현실적인 컨셉은 낯설어서 친숙한 과정이 필요했다. 즉 너무 비용을 많이 들여서 완성형 모델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스타 감독에 인기 배우, 흥행 코드에 대규모 제작비, 마케팅 비용으로 처음부터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승자독점 방식을 취했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주연의 영화 '비상선언' 사례도 스타 캐스팅에 스타 감독이면서 대형 재난 오락 영화의 전형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커졌지만, 아직 불안하고 공포스럽게 비행기 재난 소재에 관객들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 역시 멀티플렉스 시스템과 불가분의 관련성이 있다. 멀티플렉스 블록버스터 공식 같은 공급자 방식의 제작·공급·소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무너졌다.

아무리 스타 캐스팅이라도 관객의 팬덤니즈에 맞지 않으면 찾지 않는다. 시각적 특수효과의 경험이라도 OTT만큼의 트렌디함이, 극장만이 오감 체험이 없다면 선택하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인한 영업손해를 관람료 인상에 반영한 결정은 관객의 심리적 저항감을 샀다. 

’범죄도시‘는 2017년 개봉 이후 5년 만에 2편이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70억 규모의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였다. 수익을 과연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하드보일드 스토리와 괴물 형사 마석두 캐릭터의 진지한 구축을 통해서 코어 팬덤을 형성했다. 이후에 잔인한 장면을 배제하고 대중적인 내용을 넣으면서 외연을 확장했다. 마석두만의 코믹한 대사와 좀 더 인간적인 면모들을 구현하면서 친근한 한국적 코드를 구축했다.

개봉 5일째 400만을 돌파하고 손익분기점 180만명을 일찌감치 넘었다. 이전에 성적을 보면 1편은 687만여 명, 2편은 1269만여 명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형국으로 '범죄도시 3'은 그 이상을 능가할 것으로 관측되었다. 2편이 400만을 돌파하는 기록을 이틀 정도 앞당겼다. 전형적인 스노볼 효과다. 한국식으로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불문율을 깨어 버린 것이다.

관객의 눈높이에 정답 있어

앞으로 한국 영화의 해법은 간단하다. 무조건 '기획자-제작자-극장'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눈덩이를 부지런히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눈덩이에 많은 관객이 같이 붙어 구를지 알 수가 없다. 다양한 시도 속에 블록버스터 제작·유통·소비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눈사람을 완성하여 제시하기보다는 눈덩이를 만들어 눈사람이라는 세계관 유니버스를 완성해야 한다. 의미 있는 눈덩이를 더욱 크게 구를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관객 중심주의로 가야 한다. 그것이 습기의 역할이다. 2022년 영화 '육사오'처럼 신예 배우, 감독,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제작비를 손익분기점 관점에서 실질화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는 깊게 보기와 넓게 보기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관객의 눈높이에 철저하게 맞추는 서번트(servant)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이제 영화계도 법칙이다. 작가주의라는 아티스트는 그 이후에 문제이다. 왕관은 관객이 올려주기 때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한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다. 1990년대 말부터 K 컬쳐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해왔으며, 문화 현상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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