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㉓ 경의선 숲길, 철길이 시민의 산책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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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㉓ 경의선 숲길, 철길이 시민의 산책로 되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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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경의선 숲길은 도심 속 쉼터입니다. 인공적으로 조성했지만,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나무숲과 꽃밭은 주거 공간과 업무 공간, 그리고 상업시설이 즐비한 도시의 건축물들 사이에서 숨길을 터주는 존재이지요. 연남동에서 홍대 구간이 특히 유명하지만, 경의선 숲길은 마포와 용산에 걸쳐, 공덕역 일대와 원효로 근처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경의선 숲길은 옛 경의선의 폐철로를 뜯어내고 녹지로 만들어 공원화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숲길이 예전에는 경의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이었습니다. 

1906년 4월 3일 용산과 신의주 사이의 철도로 개통된 경의선은 경부선과 연결되어 한반도를 동남에서 서북으로 연결하는 철도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보면 경의선 부설은 여러 열강이 눈독을 들인 이권 사업이었는데 러일전쟁 와중에 일본 군대에 의해 군용철도로 부설되었습니다. 하지만 철도 부지 확보와 철로 건설 과정에서 일제가 자행한 수탈이 매우 가혹해 한국인의 반철도 항일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주·시베리아까지 닿았던 경의선

한반도 강점 이후 대륙까지 침략한 일제는 만주철도를 경의선과 철로 넓이가 같은 표준궤도로 만들었고, 철로 규격을 통일한 덕분에 1930년대에는 경의선을 통해 베이징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만주철도와 시베리아철도를 거쳐 런던까지 연결되는 기차표도 판매했지요.

경의선은 해방 후 단축 운영되다가 전쟁이 터지자 중단되었습니다. 2000년에 평양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사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고, 2003년 6월 14일에는 연결 행사가 군사분계선(MDL)에서 열렸습니다. 현재는 서울역에서 문산역까지 52.5km를 ‘경의중앙선’의 일부 구간으로 전철을 운행 중이지요.

홍대 인근의 경의선 숲길. 사진=강대호

지금의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은 수도권 전철인 경의선과 중앙선을 통폐합한 노선입니다. 경의선 숲길은 경의선의 지선이었던 용산선이 지나던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니까 지상 구간이었던 용산역과 가좌역 사이가 지하철 구간이 되면서 지상에 놓였던 철로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만든 거죠.

홍대 인근의 경의선 숲길은 경의선 책거리로도 불립니다. 출판 관련 회사와 종사자가 많은 홍대 인근과 잘 어울리는 콘셉트인 것 같습니다. 숲길을 걷다 보면 열차 모양을 한 서점들과 전시 공간을 볼 수 있지요. 간이역과 플랫폼을 본뜬 쉼터도 있습니다. 책거리에서는 도서 관련 행사나 문화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립니다. 

연남동 방면의 경의선 숲길처럼 홍대 인근 숲길도 폭이 좁은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공원 바깥 양편으로 카페와 식당들도 늘어섰지요. 예전에는 기찻길 옆 주택가였던 동네가 공원을 찾는 이들을 겨냥한 상업시설로 바뀌어 가는 모습입니다. 곳곳에서 공사 중인 모습을 볼 수 있지요.

홍대 인근의 경의선 숲길에 조형물로 재현된 ‘땡땡거리’. 사진=강대호

숲길을 걷다 보면 철도 건널목이 나옵니다. 차단기가 조형물처럼 서 있는데 “땡땡 땡땡” 소리도 냅니다. 이 건널목 일대는 예전에 ‘땡땡거리’로 불렸다고 합니다. 홍대 인근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던 식당과 술집이 모여 있던 거리였다네요. 지금도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선술집 여러 곳이 있습니다.

산책로 곳곳에는 폐철로를 장식처럼 깔아놓았습니다. 철로가 두 곳으로 갈라지는 곳도 있었는데 그 지점에는 선로전환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곳은 예전에 경의선과 경성순환선이 갈라진 지점이라고 합니다. 숲길 인근 신촌로를 건너 창천동 주택가에 가면 지금은 사라진 경성순환선의 흔적, 높은 담장 속 공지로 남은 철도 부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이처럼 홍대 인근의 경의선 구간은 주변 지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지선 중에 지금의 상수동 방향, 정확히는 당인리 방향으로 가는 철로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다음에 준비돼 있습니다.

가좌역 건너 연남동과 동교동을 거쳐 홍대 인근을 지나온 경의선숲길은 서강대 인근을 거쳐 마포 방향으로 향합니다. 고층 빌딩이 많은 공덕역 일대의 숲길은 인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입니다. 그런데 숲길의 진행이 막힌 곳이 있습니다. 아예 철제 가림막이 처져 있지요.

공덕역 인근 경의선 숲길. 가림막 안 일대에 ‘경의선 공유지’가 있었다. 사진=강대호

그곳은 2015년부터 2020년 5월 초 철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경의선 공유지’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경의선 숲길 개발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난 사람들과 새로운 시민자치의 대안을 만드는 시민들이 공유지 운동을 진행한 장소였지요.

저는 경의선 공유지가 폐쇄되기 전에 여러 번 방문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수공예품 상점, 분식집, 작은 텃밭 등이 모여 있었지요. 각종 행사와 공연도 열렸었고요. 고층 건물이 늘어선 공덕역 주변의 화려함과는 다른 소소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경의선 공유지' 운동에 담긴 뜻

이곳이 ‘경의선 공유지’로 명명된 이유는 과거 국유지였던 경의선 철길에 조성된 공터이기에 시민이 주인이 돼야 한다는 뜻을 담은 거였습니다. 반면 대기업이 참여하는 개발을 염두에 둔 마포구청은 이곳을 시민들이 ‘불법 점유’했다고 봤지만요.

공덕역에서 공유지 운동은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철도 부지 개발이 민자라는 구호 아래 대기업의 영리 활동에 이용되는 현실을 지적한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의선 공유지’ 운동을 주제로 한 도서와 학술 문헌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공유지 운동이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남동 방면에서 시작한 경의선숲길은 공덕역까지의 마포 구간은 거의 평지입니다. 그런데 공덕역을 지나면서는 구릉이 나옵니다. 숲길 근처 버스 정류장 이름이 ‘용마루 고개’인 것에서 보듯 용산 구간의 경의선 숲길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조오부도 등 고지도를 보면 효창묘에서 한강으로 뻗은 산 끝자락에 용산이라고 표시돼 있습니다. (원효대교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인) 만초천의 북서 방향에 있지요. 용의 정기를 품은 용산(龍山)이 어디냐로 한때 논란이 일었었는데 현재 용산성당이 자리한 언덕이 용산이고,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산을 여러 고지도에서는 둔지산(屯之山)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용산성당. 용산(龍山)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강대호

폐역된 효창역 구간의 경의선숲길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효창공원앞역 도로와 공원 사이에 있는 건물들이 무척 오래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거기에 입주한 점포들은 빈티지스럽게 꾸몄네요. 

하지만 건물 바로 옆으로 철도가 놓였던 시절에는 기차가 지날 때마다 건물이 흔들리고 시끄럽지 않았을까요?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속 아기는 “칙칙폭폭” 소리에도 잠을 “잘도 잔다”지만요.

그런데 어쩌면, 전형적인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홍대 근처에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경의선에서 갈라진 지선인 ‘당인리선’ 열차가 지나던 곳이지요. 철로 옆에 있던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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