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㉒ 골목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연희동과 연남동
상태바
[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㉒ 골목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연희동과 연남동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28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연희동과 연남동은 아현동과 북아현동처럼 같은 동리였지만 다른 자치구로 갈린 사례입니다. 1975년에 서대문구 연희동의 일부가 마포구로 편입되며 연남동이 된 거죠. 연남동은 연희동의 남쪽이라는 뜻입니다.

연희동(延禧洞)의 이름은 연희궁(延禧宮)에서 따왔습니다. 연희궁은 세종 시절인 1420년에 지어진 이궁(離宮)이었습니다. 이궁은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을 의미하는데 왕의 재액을 피하고자 방위를 달리한 곳에 궁을 조성하는 고려시대부터의 전통에 따라 건립했다고 합니다.

연희궁이 들어선 무악은 조선 개국 당시 수도 후보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정도전이 삼각산 아래 한양을 도읍으로 추천했다면 하륜은 무악을 추천했지요. 결국 한양에 도읍지가 들어섰고 무악에는 이궁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도성의 서쪽에 자리한 연유로 한동안 서이궁으로 불리다 문종 시절에 연희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연희궁에서는 세종의 부왕인 태종이 머물기도 했고, 세종도 세자인 문종에게 정사를 맡기고 잠시 머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희궁은 연산군 시절 들어 연회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연희궁에서 연산군이 궁녀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거죠. 연회장이 된 연희궁은 이궁으로서 기능을 점차 잃게 됩니다. 

결국 1764년 영조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인 수경원을 연희궁 자리에 조성하면서 이궁으로서 연희궁은 폐지되었습니다. 다만 ‘궁뜰’, ‘궁동’, ‘궁동산’이라는 인근 동네 지명이 연희궁의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여기서 ‘궁’은 연희궁을 의미하지요.

연희동 전경. 사진=강대호

곳곳에 남아있는 '연희궁'의 흔적

이 일대는 조선시대에 한성부 성저십리 서부의 연희방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연희동 일대는 경기도가 되었다가 다시 경성이 되는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희동은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연희리가 되었었는데 1936년 경성 확장 과정에서 경성부 연희정(延禧町)으로 복귀한 거죠. 

1943년에는 조선총독부가 경성부에 구(區)제도를 도입하면서 연희정은 서대문구로 편제됩니다. 일제식 동명인 연희정은 해방 후인 1946년에야 우리 식으로 바뀌며 연희동이 됩니다. 
  
오늘날 연희궁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연희궁을 폐지하며 들어선 영빈 이씨의 묘 ‘수경원’이 연세대학교 부지 안에 있었던 건 확실해 보입니다. 연세대 박물관에 그 기록과 흔적이 남아 있지요. 사실 연세대라는 이름도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교가 합치며 두 학교에서 한 자씩 교명을 따온 것입니다.

연세대 정문 근처의 ‘연희궁터 서잠실터’ 표석. 사진=강대호

 

 

 

 

 

 

 

 

 

 

연세대 정문을 지나 교정으로 들어서면 ‘연희궁터·서잠실터’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연세대가 연희궁 자리에 들어선 것을 보여주는 한편 연희궁에 잠실도회가 설치됐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종은 연희궁에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양잠을 장려할 목적으로 시범적으로 설치한 일종의 국립양잠소입니다. 여러모로 유명한 송파구의 잠실은 도성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잠실로 불렸고, 도성의 서쪽에 자리한 연희궁의 잠실은 그래서 서잠실로 불렸지요.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 일대에도 잠실이 들어섰었는데 신잠실로 불렸습니다.

1975년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마포구로 편입된 연남동에는 맛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이 많지요. 그런 만큼 화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나 8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의 화교들은 태평로나 서소문 일대에 모여 살았습니다. 특히 서울시청 건너편 소공동에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 등 중국식 업소가 많았지요. 하지만 1991년 소공동 일대 재개발로 화교들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일부가 연남동 일대에 자리 잡은 거죠.

1996년 8월 13일 국내 일간지들은 일제히 같은 취지의 기사를 냅니다. 연남동 일대가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되고 있다면서요. 이 기사들은 명동에 있던 한성화교중고등학교가 연희동으로 옮겨 왔고 김포공항이 가까워 대만과 항공을 이용한 무역이 수월해 연남동에 화교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이 기사들을 보면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 의류 포장회사, 무역회사 등이 자리 잡고 있던 1990년대 중반 연남동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철길을 경계로 나뉜 연희동-연남동

연희동과 연남동의 경계는 철길입니다. 신촌역과 가좌역을 연결하는 경의중앙선 지상 구간의 철로를 기준으로 북쪽이 연희동, 남쪽이 연남동이지요. 예전에 교외선 열차가 지나던 구간으로 연세대 정문 건너 굴다리 위로 난 철길을 말합니다.

경의중앙선은 가좌역에서 두 방향으로 갈립니다. 서울역 방향의 지상 구간과 용산역 방향의 지하철 구간으로요. 경의중앙선 지하철 구간의 지상에는 오래전에 경의선 철도가 지났고, 지금 그 폐선 구간은 공원이 되었습니다. 경의선 숲길로 알려졌지요.

경의선 숲길은 가좌역 인근부터 연남동을 거쳐 동교동과 서교동, 그러니까 홍대 인근을 지납니다. 그렇게 공덕역을 지나 용산 원효로 인근까지 숲길이 조성돼 있지요. 물론 군데군데 끊긴 구간도 있지만요. 경의선과 기찻길 옆 동네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려 합니다.

연남동 미로골목. 사진=강대호
연남동 미로골목. 사진=강대호

연남동은 골목들이 이채롭습니다. 그 골목들에는 지금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숨어있지요. 골목 이곳저곳들의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면 방향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미로골목’이라는 별칭이 붙은 곳도 있습니다.

미로골목 인근에 연남동 동진시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연남동 주민들이 이용하던 전통시장이었는데 2010년대 말부터 주말이면 플리마켓으로 변신하던 곳입니다. 시장 건물 내외부는 물론 인근 골목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 관광객들이 몰리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바뀐 듯합니다. 동진시장에서 영업하는 가게도 있었지만 빨간 페인트로 X자가 쓰여 있는 가게도 있었습니다.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일종의 명도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인근 가게 주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연남동의 간선도로변과 골목에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식당도 있지만 한국식 맛집과 예쁜 카페, 그러니까 SNS에 올려 자랑해도 될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게들이 더 많은 듯합니다. 새로운 가게로 변신을 꾀하는 공사도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고요. 

그러고 보면 연남동은 방문할 때마다 골목들 풍경이 달라지는 듯합니다. 그런 분위기는 한때 같은 동리였던 연희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의 연희동 주택가에도 주택을 개조한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는 추세이거든요.

연희동과 연남동은 골목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서울에서는 흔치 않은 정경을 가진 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만 두 동네가 지금의 개성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매주 일요일 연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