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무역보복 카드 꺼낸 中, 반도체 자력갱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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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무역보복 카드 꺼낸 中, 반도체 자력갱생 가능할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5.23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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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마이크론 구매 금지 명령…사실상 무역 보복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마이크론 반사익 가능성도
中 반도체 자력갱생 시도…기술·인력·장비 등 한계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 금지 명령을 내리며 대중국 수출규제에 대한 무역보복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 금지 조치를 내렸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등 수출규제에 대한 무역보복이다. 지금까지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구매금지 대상은 서버용 메모리반도체가 유력하며 추후 제재 범위 확대 가능성도 짙다. 업계의 관심은 중국 내 반도체 공급 부족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로 쏠린다.

이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중국 내부에선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로 자급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해외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이 마이크론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한국 기업이 대체 공급자로 나설지 주목된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중국 정부의 마이크론 구매 금지 명령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3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는 지난 21일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중국의 중요 정부 인프라 운영자에게 마이크론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실상의 무역보복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결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론 구매 금지 여파로 불거진 중국 내 반도체 부족분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채울 것이라는 기대다. 일각에선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반도체 업체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나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 등을 감안할 때 한국 기업이 아니면 수율을 맞출 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D램(40%)과 낸드(20%)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사이익 누리나

미국 정부가 나서 한국에 대중국 반도체 수출제한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제재 동참 수위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막대한 매출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앞서 파이낸션타임스는 백악관이 지난달 한국 정부에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 판매를 제한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대체 공급자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 역시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자신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라면서 "시장 경제 원칙과 국제 경제 및 무역 규칙을 엄중하게 위반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중국 기업의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관련국 기업의 이익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관 국가 정부와 기업이 중국과 함께 다자무역 시스템,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유관 국가 정부와 기업은 한국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이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기업의 대중국 제재 동참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만약 대중국 제재에 참여할 경우 중국 정부가 나서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다른 산업군의 수출 제한에 나설 여지가 크다. 

국내 반도체 업계 임원은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해야겠지만 어떤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든 어려운 상황이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신들은 한국이 키를 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중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현재 마이크론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기술과 생산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 속에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 노력이 빛이 바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中 반도체 자급자족할수 있나

미국의 제재로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이 새로운 반도체 표준을 만들어 반도체 자급자족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과 미국, 대만을 추격하던 기존 노선을 버리고 중국이 추월을 시도한다는 의견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은 '제제 2025' 정책에서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옴디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50.8%(2405억달러)로 1위, 한국이 18.4%(871억달러)로 2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일본(9.2%)과 유럽(9.2%), 대만(6.9%), 중국(4.8%)이 뒤따르고 있다. 중국의 칩 생산 자급률 역시 20% 내외로 저조하다. 그나마 중국에 진출한 국외 반도체 기업을 제외하면 그 수치는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포부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크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지식재산권과 기술을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다른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이 분야에서 격차를 좁혀나갈 여지는 있지만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데 이견은 크지 않다. 단적으로 현재 중국에서 14nm(1nm는 10억분의 1m) 칩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 뿐이다. 이 칩을 개발하는 데 미국의 기술이 투입됐다.

중국에 대한 칩 및 제조 장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출 제한 등 추가 제재가 수위를 높여갈 수록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단적으로 미국의 견제로 중국은 7nm이하 초정밀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할 수 없다. EUV 장비 없이 7nm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은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대만 압박이 거세지면서 중국 본토에서 일하고 있는 대만의 반도체 기술 인력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의 엄격한 방역과 대만에 대한 강경 정책 등 지정학적 요인으로 대만 기술자들이 중국을 떠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만 정부 역시 자국 내 반도체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이직하면서 기술 정보를 빼갈 것을 우려해 중국행을 자제시키고 있다.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할 경우 간첩죄로 처벌하는 등 제재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대만경제연구소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대만 반도체 기술자 3000명이 중국 본토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내 반도체 기술자 총 4만명 중 7.5%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은 SMIC 등에서 고위 임원으로 근무하는 등 요직에 포진돼 있다. 중국 내 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메울 반도체 고급 인력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을 급하게 육성한 데 따른 부작용도 목격된다. 파산신청을 한 칭화유니그룹이나 정부를 속인 우한홍신(HSMC) 사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미자격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자금을 받고 고의로 파산하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원천 기술 위에 기틀을 다진 반도체 산업의 태생적 한계와 대부분의 반도체 설계 및 제조 장비 업체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현실 등을 감안할 때 중국의 반도체 자력갱생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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