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이 갈라놓은 철강과 석유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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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이 갈라놓은 철강과 석유의 운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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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전에 철이 산업의 핵심…지금은 석유 확보가 국가 목표

 

2차대전에서 독일 철강산지 루르 지방은 쑥대밭이 됐다. 석탄산지인 이 지역은 19세기 이래 2차 대전까지 제철소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중공업지대를 이뤘다. 에센, 도르트문트, 두이스부르크와 같은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가 형성됐다.

에센의 철강산업은 독일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키는 원동력 역할을 했고, 이 도시에는 ‘대포 도시’라는 별명이 따랐다. 1990년대초에 폐광한 에센시의 졸페라인 탄광은 지금까지도 거대한 석탄박물관이자 아트센터로 변모해 있다. 20세기 초에 건립될 당시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노만 포스터가 설계해서 유명해진 졸페라인 탄광은 균형미와 단순미가 잘 조화를 이룬 현대적인 건축물로서 “루르의 대성당”이라고 불리웠고, "세계에서 매우 아름다운 탄광" 으로 꼽혀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은 무참하게 에센을 붕괴시켰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연합군은 파시스트의 심장으로 이해되는 에센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에센은 독일이 두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동안에 성장한 철강재벌 크루프(Krupp) 가문의 도시였다. 사회주의자들이 ‘크루프 안에 에센이 있다’고 비아냥 거릴 정도였다.

연합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에센의 80%가 파괴되었다. 철강 회사이자, 무기 제조창이었던 크루프 공장은 영국 공군의 주요 타깃이었다. 독일의 빌헬름 황제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이 도시를 난공불락이라고 선언했고,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청소년들에게 ‘족제비처럼 잽싸고, 가죽처럼 질기며, 무엇보다 크루프의 철강처럼 단단해지라’고 강조하며 비유하던 철강공장이 연합군의 의도대로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목표는 다름 아닌 철강회사 크루프였다. 크루프는 독일군의 대포와 총, 포탄, 전함 원자재를 만들었고, 이에 힘입어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독일은 선발 국가인 영국과 독일을 상대로 두차례의 대회전을 벌였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에센의 크루프 공장에는 황폐화되어 구부러진 철골 구조물, 부서진 벽과 쓰레기 더미, 그리고 잿더미만 남았다. 그리고 점령군인 영국군 사령관이 크루프 경영진을 불러놓고, “저기 보이는 공장 굴뚝에는 다시 연기를 내뿜지 않을 것이다. 옛날 철강공장이 있던 곳에 들과 풀밭이 생겨날 것이다”고 말했다. 그후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며 산업을 재기시켰지만, 에센의 철강공장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2차대전까지, 즉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의 전쟁은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중세 이전의 전쟁이 토지, 즉 식량 생산기지를 뺏기 위한 것이었다면, 20세기 중반까지의 전쟁에서 중요한 전략 목표는 철강산지와 그 에너지원인 석탄광이었다.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보ㆍ불전쟁에서 프러시아에 패한 프랑스는 알사스-로렌 지방을 독일에게 할양했다. 독일이 알사스-로렌 지방을 빼앗은 것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이 고급이었고, 인접한 루르지방의 철강산지와 결합해 최대의 철강산업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독일어를 사용하던 프랑스의 알사스-로렌 지방의 학교에서는 독일에 넘어가면 더 이상 프랑스어 수업을 할수 없게 된다. 그 마지막 수업을 하던 선생님과 학생들이 조국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는 것이 소설 줄거리다. 독일이 보ㆍ불 전쟁에서 이긴 것은 에센에 근거를 둔 크루프 공장의 대포 때문이었다.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는 처음에는 크루프의 대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크루프가 생산한 대포는 자만에 빠져있던 나폴레옹 3세의 군대를 물리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덕분에 프러시아 왕은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 황제에 취임할수 있게 됐다.

1차 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독일에 보복하기 위해 독일 철강 및 석탄 산지인 루르 및 자르 지방을 점유하며 전쟁 배상금조로 광물을 뺏어갔다. 그 가혹한 배상금이 나치를 등장케 했고, 결국 에센의 철강 공장은 다시 불을 뿜으며, 2차 대전을 촉발시킨다. 2차 대전에서 에센의 크루프 철강공장이 집중타를 당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군국주의 일본도 철강산업을 중시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철강산업이 취약했던 일본은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견제로 철강 수입이 중단되는 변고를 겪는다. 그후 일본은 일본제철을 비롯해 철강 산업을 육성시켰고, 일본군은 이들 공장에서 만들어진 대포와 총으로 만주사변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2차 대전당시 미군은 일본의 철강공장을 초토화시키고,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제철을 산산조각 해체해 버렸다.

 

▲ 1905년 독일 에센의 크루프 공장에서 생산된 전차. /위키피디아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에선 핵무기가 주요 무기로 등장하면서 국가적 목표에서 철강산업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전쟁의 타깃은 ‘검은 황금’, 즉 석유로 전환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 이탈리아 북부 휴양도시 산 레모에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이 만나 몰락한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를 어떻게 나눠먹을지를 논의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의 선봉에 서서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미국은 전통적인 고립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미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동로마제국을 붕괴시킨 700년 역사의 투르크 제국 영토를 분할 통치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미국에 메소포타미아의 유전에 관심을 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의 A. C. 베드포드 회장이었다.

당시 미국 석유산업을 독점했던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독과점방지법에 의해 수십개로 쪼개졌고, 뉴저지주에 본부를 둔 스탠더드 오일의 한 갈래가 오늘날 엑슨-모빌의 원조다. 베드포드 회장은 산 레모에서 벌어진 영-불 협상의 결과를 친구로부터 전해듣고 국무부를 찾아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석유를 장악한 자가 세계를 차지할 것이며, 세계최대의 석유매장량을 확보한 메소포타미아 문제 해결에 미국이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미 국무부는 중동 문제를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취급해나갔다. 베드포드가 주목한 그 일대에 지금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독립국가가 건설됐고, 그가 예언했듯이 메소포타미아는 세계 석유분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석유는 산업 활동 뿐아니라 개인의 일상 생활에도 꼭 필요한 존재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20세기는 물론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말의 힘을 이용한 기마병과 기름을 원료로 하는 전차의 싸움에서 기름의 우위가 인정된 전쟁이었고, 2차 대전에 앞서 미국은 일본에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1990~91년의 걸프전은 서방세계가 쿠웨이트 석유를 보호하기 위해 침략자 이라크를 축출하는 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세계 2위 매장량을 보유한 이라크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정설이다. 러시아가 산악지대의 소국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곳을 지나는 송유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이 신쟝성 분리주의자를 탄압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석유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지난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송유관 관통을 반대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것은 석유의 이해가 개입됐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인류 역사에서 근대화란 한정된 자원을 끊임없이 고갈시키며 산업화를 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철의 생산이 산업의 핵심이었으며 전쟁을 뒷받침했지만, 지금은 석유의 확보가 국가적 목표가 되고 산업활동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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