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② 우선매수권 준다지만…늑장 대응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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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전세]② 우선매수권 준다지만…늑장 대응 실효성 의문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4.24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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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추진
우선매수권 준다지만 실효성 의문
원희룡 "전 정권 가격 폭등 탓"
피해자 대출, 3개월 간 고작 8명 이용
전금융권 피해자 지원 행렬 합류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 건축왕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3명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과 경기 동탄, 구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전세사기 피해가 연이어 신고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받은 전세대출은 거대한 빚더미가 돼 이들을 짓누른다. 피해해 규모가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나올 경우 낙찰 우선매수권을 피해자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 우선 부여하는 한시적 특별법 제정에 나서기로 했다.

소유권이 제3자로 넘어갈 경우 살던 집에서 쫓겨 나야하는 우려를 해소하고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게 정보와 여당의 설명이다. 하지만 피부로 와닿을 현실성 있는 지원대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손해를 입더라도 살고 있던 주택을 매입할 여력이 있는 피해자에겐 희소식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등 피해자 개별 상황이 워낙 다양해 보편적 해결방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 정부 탓하는 원희룡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전세사기의 피해의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과 전세값 폭등을 꼽았다. 원 장관은 24일 인천 부평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세피해 관련 대책회의에 참석해 "집값이 폭등하던 시기 절박한 마음에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가족이나 금융기관에 빌려 전세금을 마련했다"며 "결국 그게 계획적인 전세사기 물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피해자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불신을 가질지 충분히 짐작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의 채무를 탕감해달라는 인천시와 야당의 전세 보증금 대납 주장에 대해선 난색을 보였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서만 채무 탕감을 해주겠다는 것은 또 전체 대한민국 전체 신용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국민적 합의와 국가 기본질서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별도로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기로 피해받은 금액을 국가가 대신 내주고 회수가 안되더라도 채무를 떠안는 선례를 정부가 남길 수 없다"며 "피해자를 돕고 싶지만 안되는 건 안된다. 선을 넘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특별법 실효성 의문

전세사기 특별법에서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고는 하지만 전세금으로 전 재산을 투입한 뒤 겨우 생활을 이어가거나 이미 기존 전세보증금 대출로 전세자금을 마련한 세입자들은 정부 대책에 소외될 수 밖에 없다. 낙찰가가 저렴 하더라도 매입을 하기에는 엄두가 아나거나 정부가 최저 0%대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더라도 결국 빚을 내 빚을 막는 구조여서 재산이 아닌 빚만 늘어나게 된다. 

원 장관은 "융자를 내 살던 주택을 사는 경우 만약 향후 가액이 올라 이번에 피해를 본 보증금도 사실상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고 공공임대주택에 안정적으로 살게 되면 현재 임대료 시세로 환산했을 때 상당한 금액이 사실상 이익이 되기에 사기로 피해 입은 돈의 실제 가치 정도가 거의 충당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으로 우선매수권 제도를 악용해 입찰대금을 높여 부르거나, 선순위 채권액을 보전하려할 경우 또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재 상황 등 다양한 변수에 적절한 대응이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새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센터 현황을 들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br>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센터 현황을 들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 대출, 고작 8명 이용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연 1~2%대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한 피해자 수는 지난 3개월 간 단 8명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보증금을 떼여 기존 전세대출조차 갚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대출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에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천춘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 받은 '전세 피해 임차인 지원 대출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대출은 올해 1월9일 출시 이후 모두 8건, 실행 대출 규모는 총 9억원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수만 3131가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이용 실적은 턱없이 저조하다. 정부는 피해자 3000명 가량이 신청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예산 1660억원을 배정했다. 

또한 정부가 내놓은 긴급주거지원 역시 이용 사례가 드물었다. 경매가 끝나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 피해자를 위해 마련한 긴급주거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는 지금까지 9명에 그쳤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제공하는 긴급주거주택은 피해자들 사정과 맞지 않다"며 "대부분 원룸이고 도심과 떨어져 있어 이용률이 낮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주거 보장에 지원책 초점을 맞추면서 이미 주택이 매각된 피해자의 경우 구제 방안이 사실상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상미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채권이 대부업체에 넘어간 경우와 연소득 7000만원이 넘는 피해자들은 대출지원에서 제외돼 억울해 하고 있다"며 "정부는 매각이 끝난 피해자에 대한 구제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사진=연합뉴스

하나·신한·국민은행 등 전금융권, ‘전세사기 피해지원’ 

하나·신한·KB국민·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을 비롯한 전 금융권이 전세 사기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금융지원에 나선다. 피해 세입자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내주고, 기존 전세대출에 대해선 이자를 감면해주는 상생 금융 지원책을 펼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 총 5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지원하고, 1년간 이자 전액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하나 상생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주택 구입·전세자금·경락자금 대출 등을 세대당 최대 2억원까지 빌려주고, 최초 1년간 이자를 모두 면제해주는 게 골자다.

신한은행은 신규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최대 2년간 2%포인트 감면해준다.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구입하거나 경매 낙찰을 받을 때 주택구입 자금을 대출받으면 최대 1년간 2%포인트 금리를 낮춰준다. 특히 무료 법률상담을 통해 피해자들은 소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비용, 변호사 보수 등 실비용을 무료로 지원받게 한다.

KB국민은행은 전세 피해 지원센터로부터 '전세 피해 확인서'를 발급받은 고객에게 전세자금·주택구매·경락자금 대출을 제공한다. 최초 1년간 대출 금리는 2%포인트 감면한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5300억원 규모의 주거안정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상호금융권도 지원행렬에 동참한다. 농협·수협·신협과 새마을 금고는 전세사기 대상 주택의 경·공매를 유예하고 전세대출이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자율을 조정하는 등의 지원안을 내놓았다. 신한·KB국민·현대·삼성·롯데·우리·하나·NH농협·BC 등 9개 카드사도 피해 고객의 신용카드 결제금 청구를 최대 6개월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저축은행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이자율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PF 대출 등으로 가뜩이나 부담이 커진 2금융권이 이번 전세사기 피해 지원으로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에 연루된 주택 대출 대부분이 2금융권에 몰려 있어, 피해 규모가 늘어날 경우 개별 금융사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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