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취약계층 앞에서 사라지는 은행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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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취약계층 앞에서 사라지는 은행 지점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3.04.1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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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절대 다수의 국민이 은행 지점을 방문하던 시기가 있었다. 은행은 고객이 전달하는 피 같은 돈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지점을 급속히 늘려나갔다.

핀테크라는 말이 없던 시기, 은행의 핵심경쟁력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점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디지털 컨버전스 패러다임이 도래하기 전 아날로그 시대, 은행 지점은 신뢰의 장이었다.

은행이 '라떼 시절'에 머물며 안주하던 틈을 타 국내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영역을 조용히 침투해왔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금융업과 무관한 IT기업들은 모두 파이낸스 영역에서 핀테크를 외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은행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흐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전국적으로 점포를 빠르게 감축시켜 나갔다. 

은행 지점이 사라지는 시대 

2004년 필자가 모 은행의 신입행원 면접을 보던 시기, 은행이 가장 경계해야 할 기업으로 첨단기술 기업을 얘기하자 면접관이 은행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며 불쾌해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혁신가는 오프라인에 안주하는 은행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하자 면접관은 업(業)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며 다시 공부하라는 핀잔을 내게 던졌다.

2004년 면접 당시 첨단기술 기업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은행 지점 방문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미 금융거래에 있어서 온라인 거래가 조금씩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여론 조성 및 트렌드 형성이 다음, 네이버 등 포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직관적으로 하이테크 기업이 금융에 침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후 은행에서 점포 이른바 지점을 폐쇄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 해마다 120개가 넘는 점포를 폐쇄했다. 매달 우리 곁에 10개의 은행 지점이 사라지는 셈이다. 5대 은행은 지난 5년간 608개의 지점을 폐쇄했다. 현재 은행은 디지털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은행에 가면 행원이 60대 이상 고객에게도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을 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예금, 적금금리의 경우 대다수 은행에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황이다. 은행원들도 인터넷뱅킹의 편리함을 얘기한다. 10년 후 전국의 모든 은행 점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은 이제 한 둘이 아니다.

취약계층을 더욱 외면하는 은행 지점

문제는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인구 그리고 지방에서 보다 빠르게 은행 지점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초 매일경제 보도에 의하면 평균 나이가 많은 지역 그리고 고령인구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지역일수록 은행 점포가 더욱 줄어들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대면을 가장 원하는 고객층이 정작 대면에서 가장 소외되는 모습이다.  

지역 인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거나 육박하는 지역인 경북, 부산, 경남은 지난 5년간 은행 점포 감소율에서 각각 23.4%, 23.8%, 22.4%를 기록했다.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이 수익성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은행은 결국 비용 절감을 고려,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를 줄여나가고 있다. 수익 논리 앞에 취약계층은 무너진다. 

고령 인구는 여전히 카드보다 현금을 사용하고 온라인뱅킹보다 은행 지점 방문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한국은행 조사 결과 사회생활의 주력인 30~50대는 신용카드 사용률이 90%를 넘지만 60대 이상의 현금 사용률은 97%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주요 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60~70대 중 온라인뱅킹 선호 비율은 2%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 모바일로의 전환 그리고 고정비용을 고려했을 때 은행의 지점 축소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수익성을 토대로 금융거래에 있어서 가장 적은 금액을 다룰 수밖에 없는 지역 지점을 연이어 폐쇄한다면 내부적으론 임직원의 불만을, 외부적으론 고객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시대는 경제적 가치 이전에 사회적 가치를 따져 묻는다.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은행점포가 더 많이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연합뉴스

은행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은행은 고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금융은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공공성을 저버려서도 안 된다. 지속적인 은행 지점 폐쇄는 이미 일자리 축소와 임직원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고 고령인구에게 금융소외 등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비대면 금융 활성화와 핀테크 타격에 은행은 어떻게 대응하고 왜 존재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환경에 대응하는 전략이 은행 지점 폐쇄라면 이는 수동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디지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면 젊은 고객에겐 은행이 보다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하고 고령인구에게는 누구보다 접근하기 쉬운 UI(User Interface)가 제시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에서 고령인구를 제외하는 건 패착이다.

참고로 방송통신위원회가 2022 방송매체 이용행태를 조사한 결과, 60대의 스마트폰 비율은 93.8%를 차지했다. 그리고 60대의 46.6%는 스마트폰을 필수 매체라고 응답했다. 70대 이상에서도 스마트폰 이용률은 50.7%를 기록했다. 좀 더 접근성이 편리한 UI 그리고 유용한 금융정보를 제공하면 고령인구도 충분히 디지털에 적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빅테크 기업은 은행이 오프라인에 안주하던 시절, 첨단기술로 금융을 핀테크로 전환시켰고 은행은 뒤늦게 디지털을 선언하며 오프라인 지점을 줄여나갔다. 취약계층에 대한 고민 없이 은행이 지점을 줄이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혁신가는 은행의 빈 자리를 파고들 수 있다. 수동적인 전략과 대응은 늘 혁신가의 선제적인 시장 침투를 초래한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 은행은 수동적 자세가 아닌 혁신의 방식 등 능동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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