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에 홍준표가 비유한 뮌헨회담은?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영국 체임벌린 총리…끝내 체코 침공 김인영 기자l승인2018.03.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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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남북회담 합의에 대해 1938년 독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영국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총리에 비유했다.

홍 대표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영수회담에 참가하기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대북특사가 가져온 남북회담 합의문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1938년 9월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체임벌린의 뮌헨회담을 연상케 한다”며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승인해주고 유럽의 평화를 이룩했다고 영국 국민들을 환호케 했지만 그건 히틀러의 속임수에 불과했다”고 썼다.

홍 대표는 이어 “달라진 것 없이 그동안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김정은이 북핵 완성의 시간 벌기용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북핵 쇼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또 한번의 세계와 대한민국을 기망하는 6월 지방선거용 희대의 위장 평화쇼가 될 것”이라며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 히틀러와 체임벌린이 한 뮌헨회담 전후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

 

▲ 좌로부터 체임벌린(영국), 달라디에(프랑스), 히틀러(독일), 무솔리니(이탈리아). 1938년 9월 29일 뮌헨회담. 위키피디아

 

1933년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고, 단계적으로 팽창정책을 취했다. 1936년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진주시키고,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다음 타깃은 체코슬로바키아였다.

1938년 9월 12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은 라디오 생중계 연설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곧 체코를 침공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밝혔다. 히틀러는 체코가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다면 10월 1일에 침공한다며 날자까지 노골적으로 흘렸다.

히틀러는 한마디로 체코의 주데텐(Sudetenland)을 달라고 했다. 체코에서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을 주데텐이라고 불리었다. 주데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역명이 아니라 나치가 등장하면서 임의로 만든 명칭에 불과하다. 독일계 주민들은 독일에 인접한 체코의 동북쪽 산맥지대에 주로 거주했는데, 보헤미아인들이 주도하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대한 귀속감이 적었다. 당시 인구 1,350만명의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업생산 70~80%를 차지했고, 세계 10대 공업국에 들어갔다. 공장지대와 은행은 주로 독일인이 사는 주데텐에 밀집되어 있었고, 은행 주인은 대부분 독일인이었다. 이 주데텐을 독일에 떼우주면 체코슬로바키아 경제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 /그래픽=김현민

 

이런 상황에서 그 유명한 영국총리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등장한다. 영국은 체코의 동맹국이었다. 이때 영국 체임벌린 내각이 취한 정책은 미친 개에게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이 비겁한 총리는 1차 대전이 끝난지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전쟁을 치르는 게 겁이 났다.

당시 영국 언론은 어떤 글을 썼나. 9월 7일자 런던타임스는 “파멸적인 전쟁을 치르느니, 주데텐을 양보하는 일을 체코 정부는 고려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영국 신문이 남의 나라 내정간섭을 하는 칼럼을 실은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사설이 목표하는 것은 체임벌린 총리가 체코 정부에 그렇게 압력을 넣으라는 여론 조성이었다.

체임벌린이 나섰다. 체임벌린은 의회에 나가 “어떤 사정이 있어도 대영제국을 전쟁으로 끌어넣을 수는 없다, 무력 충돌은 악몽이다. 나는 영혼 깊숙한 곳까지 평화 애호가다”고 외쳤다. 영국국민들은 전쟁을 거부하는 체임벌린 총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후 체임벌린은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는 뮌헨에서 회담을 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에게 자신은 침략자가 아니라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독일과 통일하고 싶어하는 동포들의 뜻을 따를 뿐”이라며 “한 사람의 체크인도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체임벌린이 “정 그렇다면 주데텐을 양보하도록 체코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뮌헨 회담에서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요구 대부분을 들어주어 평화를 사는데 성공했다. 체임벌린은 영국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선언문을 들어 보이며 “여기 우리시대의 평화가 있다”고 외쳤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에 대해 “그 사나이는 냉혹하지만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며 지지자들에게서 다시 안도의 박수를 받았다. 자신이 마치 대단한 협상가(negotiator)인양 자부했다.

그때 처칠은 “총리의 협상 결과는 전면적 절대적 패배입니다”라고 부르짖었지만, 많은 의원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아야 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s)는 보헤미아 출신으로 반나치 정책을 고수했다. 그는 1차 대전중 오스트리아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결국 영국의 체임벌린은 체코 베네시 대통령의 등에 칼을 찔렀다. 체임벌린은 주데텐을 독일에 떼주어 히틀러를 달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영국 의회도 윈스턴 처칠 등 소수파만 반대했고, 주데텐 할양안을 통과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혈맹인 프랑스는 오히려 영국보다 더했다. 프랑스는 “문제가 되는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할양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1938년 9월 29일. 뮌헨 회담에는 영국의 체임벌린,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 독일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만났다. 정작 국토를 내주어야 할 체코 대표는 협상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옆방에 대기했다. 회담이 끝나고 체코 대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을 때, 체임벌린은 하품을 하며 무반응이었고, 프랑스의 달리디에는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뮌헨 회담 다음날인 9월 30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총리 실로비는 대국민 연설에서 “세계가 우리를 버렸습니다! 우리는 외톨이입니다.”라고 외쳤다.

체코는 주데텐을 독일에 뺏겼고, 곧이어 폴란드와 헝가리에도 땅을 내주었으며, 슬로바키아도 독립해 면적과 인구는 3분의1로 쪼그라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1939년 나치의 독일은 보헤미아도 침공해 삼켜버리고 슬로바키아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영국 체임벌린 총리의 경우는 정치학에서 유화정책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유화정책(appeasement)의 교과서는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속고 속이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체임벌린의 반대편에 윈스턴 처칠이 등장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글

 

이번 대북특사가 가져온 남북회담 합의문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1938.9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은 챔버레인의 뮌헨회담을 연상케 합니다.

챔버레인은 히틀러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승인해주고 유럽의 평화를 이룩했다고 영국 국민들을 환호케 했지만 그건 히틀러의 속임수에 불과 했습니다.

달라진 것 없이 그동안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김정은이 북핵완성의 시간 벌기용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북핵 쇼는 DJ.노무현에 이은 또 한번의 세계와 대한민국을 기망하는 6월 지방선거용 희대의 위장 평화쇼가 될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두번이나 속고도 또 속아 넘어가는 우를 범하는 문정권은 나중에 통치행위가 아닌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를 자행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북핵 청와대 회동을 합니다. 어떤 보고를 할지 잘 듣고 오겠습니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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