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다빈치 코드, 「뿌리 깊은 나무」
상태바
한국판 다빈치 코드, 「뿌리 깊은 나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05 1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글창제의 시점에 실용주의와 사대주의의 대결구도를 소설화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두 소설은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이 숨겨진 암호를 풀면서 거대한 비밀에 접근하는 내용의 추리물이라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있다. 「다빈치 코드」가 2003년에 출간되었고, 「뿌리 깊은 나무」가 2006년에 출간되었으니, 선후 관계로 보면, 이정명이 댄 브라운의 기법을 상당히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댄 브라운은 어느 인터뷰에서 “먼저 줄거리를 구상하고, 그 스토리를 역으로 엮어낸다”고 자신의 저술 기법을 설명한 적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도 줄거리는 간단하다.

 

▲ 책 표지 사진

 

배경은 조선 4대 세종임금이 한글을 반포하기(1446년, 세종 28) 7일 전.

조선은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새것과 옛것의 대결, 우리의 것과 중화의 것의 대결, 사물의 이치를 중시하는 실용과 사상을 강조하는 경학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세종은 실용주의를 추구하고 백성의 삶에 맞지 않는 중국의 것을 버리고 조선의 것을 만들었다. 박연을 시켜 우리의 음악인 향악을 정리하고, 정인지 등을 통해 우리의 역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변방의 나라가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고 음악을 가진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서 조선은 역법을 만들고도 조선력이라 부르지 못하고 칠정산(七政算)이라는 산법(算法)으로 위장해야 했다.

마침내 세종은 세자에게 권력을 위임한 후 우리 글을 창제할 것을 궁리했다. 이후 천지와 오행의 이치를 기초로 새로운 글을 만드는 작업이 비밀리에 시도되었다.

 

글은 그나라의 혼이요 지식을 담는 그룻이니 바보를 현자로 만들고 무지렁이 농군을 지자(智者)로 만든다. 천민 나부랭이도 글을 깨우치면 반상의 구별 없이 무궁한 지식과 격물(格物)을 깨달아 태평성대할 것이다. 농군은 작물의 수확을 늘리고 대장장이는 담금질의 방법을 개선할 것이고 군인은 진법을 기록하여 연전연승할 것이다.

중화의 글자는 사물에 하나의 글자와 하나의 소리가 조응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물상과 현상을 일일이 상형하거나 차자(借字)하여 평생을 익혀도 모자라니, 그것을 어찌 백성의 글이라 하겠느냐. 게다가 나랏말은 중국과 다르다. 온 백성아 한 나절에 익히고 제 뜻을 펴기에는 적은 소리로 많은 뜻을 싣는 소리문자가 가장 뛰어나니 한글자 한글자를 따로 익혀야 하는 중국의 뜻글자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소리가 곧 글이 되고, 글이 곧 소리가 된다.

 

세종은 소이라는 나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라의 말을 나라의 글로 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그 것이 마음 같지 않다. 대국과 소국이 있으니 소국은 살아 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만일 조선이 대국의 글을 버리고 글자를 만들어 쓴다면 대국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만백성의 편리와 나은 삶 살이를 꾀하여 만든 글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릴수 없지 않겠는가.

 

세종이 걱정한 바대로, 최만리 등 사대주의자들은 세종임금의 철학에 반대한다. 보수파 사대부들은 변화를 싫어했다.

 

새 글이 만들어지면 10년 안에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이제 글은 사대부의 것이 아니다. 학문 또한 사대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을 익히면 세장천지가 학문하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종놈들이 시종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고, 장사치들은 상학을 한다 할 것이며, 갖바치들은 피혁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지는 일이다.

 

이 두 거대한 세력의 싸움을 이정명은 추리극으로 만들었다.

세종 임금을 추수하는 ‘작약시계’라는 비밀결사단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자들이다. 죽음을 겁내지 않았고 죽은 후에 더 오래 남아 혼을 세우려 했다.

훈민정음 반포 7일전부터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장성수, 윤필, 허담, 정초… 모두가 작약시계의 회원이었으며, 죽을 때 이상한 기호를 남긴다. 그 다음 순서인 성삼문이 살해되기 직전에 주인공이 뛰어든다.

주인공은 겸사복(兼司僕)이라는 종8품 말단 직책의 강채윤. 「다빈치 코드」의 로버트 랭던과 같은 인물이다.

여기에 마방진이라는 기하학이 나오고, 음악, 과학, 수학, 해부학, 천문학의 잡학이 등장한다. 작가 이정명이 공부를 많이 했음이 드러난다.

 

소설의 맥을 유지하는 요소는 비서(秘書) ‘고군통서’다. 이 책자는 세종이 작성한 것으로, 첫장부터 끝장가지 사대주의와 모화파들을 비판하고, 이 나라의 얼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명의 속국 조선이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건의 주모자는 최만리가 아니다. 직제학 심종수다. 음모자들은 이 책을 입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궁궐의 침전으로 뛰어든다.

심종수는 자객을 궁궐 안으로 끌어들여 ‘고군통서’를 지난 학사들을 죽게 했지만, 학사들은 언제나 한 발 빨랐다. 그 책자는 궁녀 소이의 손을 거쳐 임금에게 넘겨지려는 순간에 자극들이 들이닥쳐 임금과 결투를 벌이고, 책자를 빼앗아 명나라 사신단에게 념겨진다.

자객들이 임금을 시해하려는 찰라에, 주인공이 등장한다. 책자가 명나라의 손에 넘어가면 명나라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음모의 우두머리 심종수는 세종과 협상을 벌여 나라를 좌지우지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명나라 사신단은 이 책자를 입수하고 세종 임금을 코너로 몰아넣을 작정이었다. 임금을 퇴위케 하고, 한글창제를 비롯해 실용주의 정책을 포기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약하다. 무휼이라는 호위감이 나타나 임금을 감싸는데, 흐름을 크게 잡았다가 약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대제학 최만리가 풀려나는 장면은 어색하다. 명나라 사신들이 고분고분 물러나는 대목은 설득력이 약하다.

심종수라는 주모자 한사람을 제거하면서 소설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세종이 주인공 채윤과 무수리 소이의 결혼을 지시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뒤끝이 개운치 않다.

2011년 SBS가 이 소설을 드라마화했다. 한석규·장혁·신세경 출연.

 

▲ 2011년 SBS 드라마 /SBS 홈페이지에서

 

소설가 이정명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1999년 말 고구려와 비류백제의 역사를 재로 한 러브로망인 첫 소설 「천년 후에」, 2001년 「해바라기」, 2002년 「마지막 소풍」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뿌리 깊은 나무」는 5년간 공백기를 가진후 한국형 팩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저자는 대학 시절 한글의 신비로움과 역동적 개혁 군주 세종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한 후 10년 이상 100여 점의 관련 서적과 논문 등 자료를 수집하고 30번 넘게 고쳐 쓴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융성했던 세종 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