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발견] 2.3. 인식과 결정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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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발견] 2.3. 인식과 결정 과정
  • 주우(宙宇)
  • 승인 2018.03.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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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설명했듯이 제시된 현상에 대해 마음④을 일으키고 정하는 작심乍心manasikara에 따라서 고苦가 환멸하는 정로正路와 고苦가 집기하는 오로誤路가 갈라진다. 인식認識이 대상에 대한 정보를 인지認知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안眼②{~신身}으로 색色①을 보고서{~촉觸을 느끼고서} 생긴 ③전오식前五識에서 이미 식識이 일어난 셈이다.

색色{~촉觸}에 대한 수상식受想識의 인식과정이 자동으로 순식간에 벌어지므로 의식하기 어렵다. ‘사과를 본다’는 자체가 벌써 사과라는 대상이 제공하는 상相을 감지해서 (자신의 상태와 연결하지 못하고) 감정受이 일어났고 상想으로써 사과라고 분류했으므로 식識이 발생한 것이다.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 과정을 깨어서 의식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선 142쪽 오온편에서 서술하겠음) 지금은 이 과정을 상nimitta相과 이에 대한 탐진치貪瞋痴를 중심으로 알아보겠다.

 

인식할 때 우리는 대부분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존재상태가 인식을 좌우한다. 즉 보이는 그대로 믿지 않고 믿는 대로 본다.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는 명색상태를 조건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6장六場āyatana의 상태에서는 인식주체인 6근indriya根과 인식객체인 6경境visaya이 6장六場에서 만나서 6경境이 제공하는 상nimitta相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고 결정해서manasikāra 새로운 6식六識을 낳는다.

이 과정은 먼저 안眼{~신身}이 색色{~촉觸}을 장場에서 만나서 색色{~촉觸}이 제공하는 상相nimitta(색상色相 ‧ 성상聲相 ‧ 향상香相 ‧ 미상味相 ‧ 촉상触相)에 대해 마음을 일으켜서manasikāra 새로운 식識(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심식心識)을 낳는다.

여기서 색色{~촉觸}이 제공하는 상相들에 대해 탐진치가 발생하지 않아서 바르게yoniso 마음을 결정할 때는 대상에 대한 식識이 아니라 반야paññāⒹ로 향하는 정로正路가 시작된다. 즉 사띠sati에 의지하는 마음mano은 색色{~촉觸}의 상相에 대해 집착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받아들여서 바르게 마음을 정한다. 그러면 마음을 정하는 상태에 따라 법경dhamma法境이 주어지며, 이 법경이 제공하는 법상法相을 자신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로 알아보고서 그 의미를 알아내서 적용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색色{~촉}이 제공하는 상相들에 대해 탐진치貪瞋痴로 그르게ayoniso 마음을 정할 때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식識을 낳게 되고, 그리고 비록 마음상태에 따라 법경dhamma法境이 주어지기는 하나 주목하지 않고서 흘려버린다. 그다음에 삼사야합을 통해서 촉phassa觸의 상태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상相에 대한 ‘탐貪’이 발생하면 이에 기반을 두고 의미를 결정해서 새로운 식識을 낳고, 그다음 삼사야합을 통해 촉觸의 상태로 넘어가서 오로誤路의 길Ⓑ을 간다.

이 과정에서 상相에 대한 ‘진瞋’이 발생하면, 즉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 나타나면 관계하지 않고 멀리하고 싶으나 사실 상대의 모습이 자신의 그림자이므로 결국 만남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다음 삼사야합을 통해 촉觸의 상태로 넘어가서 오로誤路Ⓑ로 간다. 만일 싫어하는 대상을 계속해서 내친다면 더 심각한 대상을 만나게 되는 제식연기Ⓐ의 과정을 겪는다. 이 식識이 식온識蘊에 더해져서 증장함으로써 식온은 식취온識取蘊이 된다. 진瞋이란 것도 자기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대상을 꺼리므로 사실상 탐貪이다.

이 과정에서 상相에 대한 ‘치痴’가 발생하면, 즉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되거나 적어도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대상을 몰라보고 무시하거나 현상이 미심쩍다는 감정이 들게 하는 갈등이 생겨서 체험하기를 늦춘다면 이에 기반을 두고 의미를 결정한 새로운 식識을 낳게 되므로 결국 제식연기Ⓐ의 식識으로 나아가고 식을 증장시키기 위해 반복해서 유사한 상황을 삶에 끌어들이게 된다. 그다음에는 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와서 결국 오로誤路의 길Ⓑ을 간다.

이처럼 촉觸으로 막바로 가지 않는 진瞋과 치痴의 경우를 경(S14:13)에서 “계dhātu界를 조건으로 상saññā想, 견diṭṭhi見, 탐색vitakka尋이 펼쳐진다.”고 한다. 즉, 자신에게 특별한 이유로 나타나는 대상에 대해 착오想해서 체험을 미루려는 특정 견해見를 지니며, 자신의 욕망에 적절한 다른 대상을 탐색尋하면서 계산하는 저열한hīnā 활동이다.

 

대상을 탐貪하면 새로운 식識을 낳고 무명촉無明觸으로 나아간다.

대상을 진瞋치痴하면 일시 체험을 미루나 결국 탐貪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색色{~촉觸}을 접한 안眼{~신身}이 주는 상nimitta相에 대해 마음을 정한manasikāra 바에 따라서 담마dhamma가 모습을 달리해서 펼쳐진다. 이 결정 과정은 소위 ‘슈레딩거Schrdinger의 고양이’의 실험에서 제시하는 역설과 같다. 그 실험은 다음과 같다.

 

# saññā상想 vitakka탐색尋 vicāra검토伺

감지受된 것이 어떤 분류에 적당한지를 찾아내는 작용이 상saññā想이라면 이와는 반대로 탐색vitakka尋은 현재 ‧ 과거 ‧ 미래의 사건에 대한 기억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적합한 대상을 샅샅이 추적하고 뒤져내는 사냥(chase)을 말한다. 가령 웹사이트를 분류대로 구분하고 연결해서 제작하는 메커니즘이 상想이고, 만들어진 웹에서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는 것이 탐색尋이고,찾아낸 자료가 적절한지를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이 검토vicāra伺이다.

 

슈뢰딩거는 보이지 않는 안쪽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상상했다. 상자에 있는 방아쇠는 단 하나의 전자라도 그것을 치면 고양이를 죽이는 독을 뿜을 것이다. 한 개의 전자가 상자를 향해서 쏴지는데, 그것은 오직 두 개의 구멍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가 있고, 만약 그것이 왼쪽 구멍을 통한 길을 택하면 그 고양이는 살아남고, 오른쪽을 통한 길을 택하면 죽게 될 것이다. 만일 쏘아진 전자가 어느 구멍을 선택할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면 그 전자가 어떤 길을 택했는지는, 관찰자가 그 상자를 열어보고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어있는지를 봐야만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험은 관찰자의 상태가 그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고양이의 운명은 관찰자의 존재상태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담마의 현상도 상相에 대한 관찰자의 존재상태에 따라서 좌우된다. 이것은 벌어진 현상도 상대가 아닌 주체의 마음가짐(존재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경(M107)에는 “안眼{~심心}으로 색色{~법法}을 보고서{~알고서} 상nimitta相도 연상anubyañjana聯想한 것도 붙들지gāhī 마라.”고 한다. 여기서 연상聯想anubyañjana은 대상을 인식하고 난 다음에 취하는 두 번째 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꿀을 보고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저 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가 아닌 ‘먹고 싶다’는 욕망에 붙들리는 것이 바로 ‘anubyañjana’이다.

새끼줄을 보고서 뱀이라고 착각하듯이 대다수 선입견에 의해 대상에 대한 착오saññā想를 일으킨다. 게다가 두려움 때문에 급히 움직임으로써 타인들까지 혼란하게 한다. 신속한 반응은 때로는 도움되고 생존에 긴요하나 무조건 반응하기를 멈추고, 위험을 예고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평소에 해야 한다.

상相nimitta이란 어떤 상황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는 사진처럼 특정 정보가 들어있는 이미지이다. 물론 같은 사진을 보고서 들어있는 의미보다 사진의 이미지에만 집중하듯이 상相을 보고서도 들어있는 의미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미지에 쏠려버릴 수도 있다. 이 상相에 들어있는 정보인 의미를 담마法dhamma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相에는 이미지라는 감각과 의미라는 지성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색色{~촉觸}을 접한 안眼{~신身}이 주는 상nimitta相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고 의미를 정하는(乍心manasikāra) 수행과정에서 만일 상相을 정지영상인 사진으로 압축해서 본다면 사마타samatha止이고, 동영상인 현상으로 펼쳐서 본다면 위파사나vipassanā觀다. (424쪽을 참고)

 

♨ 실례: 이는 여성(眼~身)이 남성(色~觸)을 만났을 때 마음을 정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나타난 남성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모르는 상태인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성이 던지는 추파에 대해 만일 반응해서 욕망을 일으킨다면 자식(전오식)을 낳게(삼사야합) 되고, 그다음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새 자식을 받아들여 세상(세간)을 체험(觸)해가는 Ⓑ의 길로 가는 셈이다.

같은 상태에서 만일 자신이 싫어하는 남성이 나타나서 관계하지 않고 멀리하려고 노력하나 결국 어쩔 수 없이 만남을 수용한다면 Ⓑ의 길을 가게 되고, 아니면 만일 싫어하는 그 상대를 계속 내친다면 더 심각한 상대를 만나게 되며, 또는 상황이 미심쩍어서 관망하며 망설인다면 이는 식이 증장되는 제식연기Ⓐ의 과정이다.

그리고 만일 비록 허술한 차림이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느낌이 드는 남성이 나타났는데도 무시하고 적극 반응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제식연기Ⓐ의 길에 들어서고 아마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상대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반면에 만일 자신의 기대나 계산에 미치지 않으나 자신에게 특정 의미가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남성이 나타난다면, 즉 마음에 흡족하지 않을지라도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체득해야 할 숙제를 풀어주려고 상대가 나타났음을 가슴으로 알아본다면 상대방의 외모나 조건에 상관하지 않고 마음을 정하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야Ⓓ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녀는 관계에서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또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거나 아니면 적어도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다시 정리해보면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는 명색상태에서 안眼{~신身}이 색色{~촉觸}을 장場에서 만나서 색色{~촉觸}이 제공하는 상相에 대해 탐진치貪瞋痴로 마음을 정해서 새로운 식識을 낳는다. 그리고 비록 (사실은 色~觸과 언제나 함께하던) 법경法境dhamma이 주어지기는 하나 대상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여긴다면, 마음은 그 법경이 제공하는 법상法相을 주목하지 못해서 흘려버리게 되고, 자신이 무지한지 모르는 무명과 호기심을 부추기는 애愛에 의해 발생한 의도(爲) 때문에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새로운 식識은 기존의 6식識인 식취온識取蘊(육식신六識身)과 만나 타협하고 결탁하는 삼사야합을 통해 촉觸의 상태Ⓑ를 낳고 만다.

 

기존의 식온識薀 + 새로운 식識 ⇒ 촉觸 ⇒ 식취온識取蘊(六識身)

 

경(M28)에 의하면 “안으로 안眼{~심心}이 온전하고 밖에서 6장場으로 들어오는 색色{~법法}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에 일치하는 식이 나타납니다. 이 같은 상태에서 색色{~식識}은 오취온五取蘊에 포섭되고 집합되며 합쳐진다.”고 한다.

어릴 적 성장하면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까야kāya身가 형성되고 평생 식識이 쌓여왔으므로 우리가 의식했을 때에는 이미 식취온識取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식이 발생한다 해도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평생 쌓인 6식신識身이 주도한다면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나, 의식하며 살아서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식이 주도한다면 변화할 기회를 맞이하는 것이다.

칸트는 생소한 대상이 나타났을 때 기존의 식이 주도하는 전자의 방식을,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에 넣는 규정적 판단이라고 했다. 새로운 식이 주도하는 후자의 방식을,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접근해가는 반성적 판단이라고 했다. 우주가 우리로 하여금 복습해서 익히게 할 요량이 아니라면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주에는 우연이 없기 때문이다.

색色{~촉觸}이 제공하는 상nimitta相에 중심을 두는 ⒶⒷ의 태도는, 대상에 대한 우월한 입지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대상을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수단으로 여길 때 나타난다. 탐진치貪瞋痴의 대상으로 규정해버림으로써 대상이 자신에게 제시하는 의미를 놓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반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담마法가 제시하는 법상法相에 중심을 두는 ⒸⒹⒺ의 태도는 대상에 대해 동등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태도로 대우할 때 나타난다. 이는 의도意圖cetanā가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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