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KT 'CEO 리스크'…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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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KT 'CEO 리스크'…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역설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3.28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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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CEO 리스크' 결국 주주 권익 훼손으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중립성 확보 관건으로
연금 고갈 우려 속 CEO 인선 개입 신중해야
KT 'CEO 리스크' 이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움직임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국민연금이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첫 번째 타깃이 된 건 KT다. KT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정치권의 반대 속에 오는 31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폐기했다. 이로써 사상 처음으로 대표이사 없이 4월을 맞이한다. 경영 공백이 우려되는 KT 사례 이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도 불리는 소유분산기업의 경영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주 권익을 극대화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 공익을 실현한다는 긍정론과 새로운 형태의 '관치'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상존한다.

주주가치 위한다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역설

KT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내정됐던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해서 대표이사 후보직에서 내려왔다. 윤 사장이 '대표이사에 정식 취임하더라도 정상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업계 안팎에서 새어 나온다. 그간 윤 사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이권 카르텔', '구현모 대표의 아바타' 등 날선 비판과 압박을 받아왔다. 여기에 최근 검찰은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윤 사장에 대한 업무상 배임 및 일감몰아주기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KT의 'CEO 리스크' 이후 국민연금과 정치권이 강조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주주 권익과 무관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연금 및 정치권 등이 민영화지 21년째인 KT의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기업가치가 추락했다. KT 주가는 올해들어 구현모 대표와 윤 사장이 연이어 사퇴하는 과정에서 11.24% 하락했다. 한때 10조원이 넘던 시가총액은 7조83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2%의 변동폭을 보였다. 실제 증권가에선 KT의 목표주가를 최대 24%(NH투자증권)까지 내려 잡는 등 KT의 기업가치를 부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명분이 무색해졌다. 

KT는 사상 처음으로 대표이사 없는 4월을 맞이한다. 사진은 구현모 현 대표이사(왼쪽)와 최근 자진 사퇴한 윤경림 전 대표이사 후보 모습. 사진제공=KT  

중립성 확보 화두로

KT 'CEO 리스크'로 국민연금 등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과정에서 중립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는 지난 1월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분산기업들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돼야 한다"고 발언한 뒤부터다. 그동안 소유분산기업은 CEO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이사회를 꾸린 뒤 성과와 상관없이 연임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있던 날 이동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장은 국회서 열린 '소유분산 기업 지배구조 세미나'에 참석해 "부정행위가 있음에도 CEO·회장 등이 연임하는 지배구조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국민연금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단행했다. 

문제는 국민연금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소유분산기업의 CEO를 입맛에 따라 갈아치우고 낙하산을 앉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KT 대표이사 후보 선출 과정에서 현 정부와 연이 닿는 정치권 인사 등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KT와 같은 소유분산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전제가 없다면 관치 우려를 불식시킬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총장 역시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서 전개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칫 국민연금이 정권의 집사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긴장하는 재계…'제2의 KT'는 포스코?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국내 상장 기업은 264개사로 이 중 1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45개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행보에 다른 기업들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재계 안팎에선 국민연금이 정부의 의중을 대변해 주요 기업의 인사에 관여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2019년에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KT의 'CEO 리스크'까지 더해져 재계 안팎의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사실상 정부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설사 KT 기업 경영진에 문제가 있더라도 KT 이사회나 공정위 등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지 국민연금이 과도하게 개입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T 대표 연임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새 대표이사 후보를 반대한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정부가 개입했다는 오해를 살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KT 대표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부분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다. 

재계에선 KT뿐 아니라 포스코홀딩스 등 기업의 CEO 선임과 연임 문제가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정부와 독립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주주권 행사가 존중 받기 위해선 독립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오는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연금 고갈 우려 커져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7일 국민연금 기금은 오는 2055년, 건강보험 적립금은 오는 2028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운용 손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1988년 제도 도입 후 역대 최대 규모다. 손실금은 79조6000억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적립금은 890조5000억원이며 이 기간 수익률은 '-8.22%'였다.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제도 도입 후 세 번째이며 이 중 지난해 손실폭이 가장 컸다. 지난해 자산별 수익률은 국내주식 -22.76%, 해외주식 -12.34%, 국내채권 -5.56%, 해외채권 -4.91%, 대체투자 8.94%였다. 

국민연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경색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대체투자 확대와 달러 강세로 환차익을 통해 손실 폭을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이 반대로 움직이는데 지난해 주식과 채권이 동반 하락했다"면서도 "기금 설립 이래 누적 연환산 수익률은 5.11%로 지난해 손실분을 고려하더라도 최근 5년간 모두 151조원의 운용 수익을 거뒀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실적이 좋은 기업의 CEO를 무리수까지 두면서 바꾸려 하는 것은 정치적 개입으로 오해 받을 수 밖에 없다"면서 "상당한 실적이 있는 기업과 CEO 등 인사에 개입하는 건 경영 안정성 측면에서나 주가 및 기업가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진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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