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①…장백폭포 달문 거치니 천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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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등정①…장백폭포 달문 거치니 천지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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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만주족의 영산…중국 땅에서 중국 백두를 만나는 서글픔도

 

백두산을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자,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의 시원이 되는 산이다.

우리는 최고봉인 장군봉의 높이를 2,744m로 배웠다. 이는 한국의 수준 원점인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북한은 원산 앞바다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2,749m라고 한다. 우리보다 5m 더 높게 세운 것이다.

백두산(白頭山)은 두 나라의 산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이 산을 반으로 나눠 갖고 있다. 우리 민족은 민족의 시조 단군(檀君)이 탄생한 곳으로 신성시하고, 중국은 금(金)나라와 청(淸)나라의 시조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발상지라며 숭배한다.

우리는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는데, 중국에선 이 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른다. 두 나라가 이름은 달리하지만 ‘흰 백’(白)자를 쓰는 것은 같다. 산이 전체적으로 회색이다. 중국은 이 산의 흐름을 장백산맥이라고 한다.

지금은 북녘땅 끝이 되어버린 북한 백두산을 갈수 없고, 우리는 중국 땅에서 중국 백두산을 가야 했다. 우리 땅인데, 마음대로 밟지 못하는 서글픔이 흥분과 함께 스쳐간다.

 

▲ 등정 코스/그래픽=김인영

 

때는 2005년 9월 8일, 벌써 12년도 더 지났다. 지금 백두산 등정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등산로가 보다 개선되었을 뿐, 땅과 못, 내, 폭포는 그대로다. 그들도 12년도 더 된 과거에 우리가 갔던 길을 갔다.

가이더는 우리에게 천운(天運)이 있다고 덕담을 던졌다. 9월초 날씨로 이렇게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천지가 맑고 투명하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당시 북방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모 정치인이 백두산을 찾았지만 일기가 불순해 천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가이더는 전했다.

서울을 출발해 지린(吉林)성 옌벤(延邊)조선족자치주의 어느 숙소에서 밤을 보낸후 우리는 일찍 출발했다. 안투현(安圖县)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곳을 경유했다. 이 곳엔 백두산의 삼림자원과 화산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만들어낸 가벼운 부석(浮石)이 풍부하다. 부석은 건축재료로, 홍콩, 타이완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된다.

백두산 등산 출발지는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바이허(白河)라는 마을이다. 관광 버스와 열차가 오갈 뿐 아니라 저렴한 숙소나 식당이 많다.

 

▲ 백두산 등정 입구의 온천관광호텔 /사진=김인영

 

버스 주차장에 내린 시각은 오전 9시 40분. 9월초인데도 제법 서늘하다. 산을 오르다 보면 더워지겠지 하며, 가을 바람을 쏘이며 출발했다.

백두산이 화산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금새 알수 있었다. 개천가에 온천수가 흰 수증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 흰 수증기를 내뿜는 노상 온천 /사진=김인영

 

길 가엔 뜨거운 온천수에 계란, 옥수수, 감자를 삶아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온천의 최대 온도는 89도이고, 평균 온도가 60~70도라고 한다.

 

▲ 계란 옥수수 감자등이 뜨거운 온천수에 삼겨지고 있다 /사진=김인영

 

검표소에는 중국 경찰들이 지켰다. 한글과 한자가 동시에 표기되어 있다. 북한쪽에서 백두산을 가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이곳을 통해 백두산을 찾기 때문이다.

 

▲ 검문소 /사진=김인영

 

이제부터 등산로다. 평지 길을 5분쯤 걸었더니 시원한 폭포수가 눈앞에 들러났다. 장백폭포다. 백두폭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땅이니, 자기네 산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천지(天池)에 가두어진 물은 북쪽 중국 땅으로 흘러 이 거대한 폭포수를 만들었다. 천지의 물은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승사하(혹은 통천하)를 따라 흐르다가 절벽을 만나 장백폭포를 만든다. 폭포 물은 68m의 수직 절벽을 따라 떨어지며, 한여름에도 폭포 아래에는 겨울의 눈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엔 눈이 없었다.

계곡의 양편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암석에 발달한 주상절리와 빙하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얼고 녹음이 반복되는 기후 조건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암괴들이 급경사의 절벽 아래 너절하게 깔려 있다.

경관은 우리를 압도했다. 저기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 등산로만 없었다면 마치 다른 혹성에 온 것인 양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폭포 옆으로 무식하게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중국인들이 하는 것은 늘 그렇다. 이 대자연의 멋을 살리면서 등산의 편리성을 줄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터인데….

저 우악스러운 등산로마저 없었을 때엔 겨울철에 눈으로 덮여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눈이 녹은 후에도 길이 무너지고 암석이 떨어지기 때문에 통행이 가능한 날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등산로가 생겼기 때문에 편하게 갈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이더가 우리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다.

 

▲ 장백폭포 /사진=김인영

 

콘크리트 등산로는 피곤했다.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거의 올라보았지만, 백두산은 역시 백두산이었다. 백두산은 허약하고 인내력 없는 사람에겐 오르지 못하게 하는구나 생각되었다. 팍팍한 다리를 이끌고 콘크리트 계단을 한칸 한칸 올라갔다. 뚜벅이 걸음으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천지에 도달하겠지.

무려 한시간이나 올랐다. 다리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우리는 장백폭포 위쪽의 물길을 만나게 되었다. 이 곳을 승사하(乘槎河) 또는 통천하(,通天河)라고 한다.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 ‘하늘을 통하는 내’라는 뜻이다. 해발고도 2,000m. 천지 달문에서 빠져 나온 물줄기는 1.25km의 협곡을 따라 흘러 장백폭포를 만든다.

 

▲ 승사하 /사진=김인영

 

승사하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그리고 만난 곳이 달문이다.

달문(闥門)은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만주대륙으로 삐지는 수로다. ‘달’은 산을 나타내는 만주어라고 한다. ‘산의 문’이라는 뜻이다. 백두의 칼데라가 만든 천지 물이 달문을 통해 빠져나가 통천하, 승사하를 거쳐 장백폭포를 이루고, 쑹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다.

 

▲ 달문 /사진=김인영

 

승사하와 달문까지 30분. 우리는 드디어 천지(天池)에 도착했다. 검문소에서 천지 입구까지 1시간 30분의 고된 등정길이었지만, 천지를 만나자 말끔히 피로가 씻겨 나갔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천지물을 발을 담갔다. 쾌감이 느껴졌다.

 

▲ 천지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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