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겉모습에 미혹되지 말라...‘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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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겉모습에 미혹되지 말라...‘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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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은유가 담겼다고 생각했지만, 직관적인 제목이었다. 다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이 그랬다. 영어 제목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Why fish don’t exist)’라며 저자의 집필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저자 ‘룰루 밀러’는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 Jordan)’의 삶을 추적한다. 이 책은 유명한 생물학자의 업적을 기록한 평전이면서, 이 과학자의 실체를 밝히며 성찰하는 저자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또한 과학의 이름으로 인류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오류의 역사를 바로잡아주려는 소망을 품고도 있다.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한 과학자

19세기 중반 미국 뉴욕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린 시절에 별을 사랑했다. 그래서 자기 이름에 별(star)을 넣었다. 자연 속에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에 몰두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데이비드는 생물학자가 되었다.

데이비드는 어류 분류학자다. 그가 활동한 당대에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1/5을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했다. 발견했다는 건 이름을 붙였다는 걸 의미한다.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Agonomalus Jordani) 같은 라틴어 학명으로. 일본 연안에서 발견한 어느 ’날개줄고기‘에 데이비드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붙인 것처럼. 

천여 종의 물고기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에서 보듯 데이비드는 물고기에 관해서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다. 이런 명성 덕분에 1891년, 데이비드는 갓 마흔에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이 되었다. 학교 설립자 부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는 물고기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1906년 4월 어느 날 “지구가 어깨를 들썩였다.” 샌프란시코에 대지진이 닥친 것.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들이 무너졌다. 데이비드가 평생 수집해온 물고기들을 담아둔 유리병들도 박살이 났다. 표본이었던 물고기들이 깨진 유리병 조각에 찢기기도 했지만, 그 유리병에 물고기와 함께 담아뒀던 이름표들도 깨진 유리병 조각들과 함께 흩어져버렸다. 

그러니까 데이비드가 평생 연구해온 기초 자료가 산산이 흩어진 것. 그 순간 데이비드는, 저자 룰루 밀러가 그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게 한 행동을 한다. 바늘을 꺼내 물고기의 목구멍을 향해 찔러 넣었다. 데이비드는 평생의 업적이 산산조각이 난 그 상황에서 물고기 표본에다 이름표를 꿰매 붙이기 시작했다. 유리병이 깨져도 물고기와 이름표는 헤어지지 못하도록.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에 계층 사다리가 있다고 믿은 우생학자

좌절의 순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이비드에게 저자 룰루 밀러는 호기심과 함께 존경심을 느꼈지만, 인간으로서, 과학자로서의 그의 삶에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가 물고기 표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유색 인종 어부들의 그물을 빼앗기도 하고, 물에다 독을 뿌리는 등 도덕적으로 비판 받을 만행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독을 연구에 활용한 데이비드는 심지어 그의 학사 운영 관행에 반대하는 학교 설립자를 독살했다는, 최소한 의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데이비드는 말년에 특정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큰 자취를 남긴다. 바로 우생학,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데에 일조한 그런 분야에서.

데이비드는 어류를 연구하면서 고등생물과 하등생물, 즉 자연에 계층적 사다리가 존재한다고 믿게 된 걸로 보인다. 그 기준과 척도는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적격자와 부적합자'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1차세계대전 시절 평화를 부르짖고 다녔다. 미국의 참전을 반대한 것. 그 이유는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데이비드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었다.

특정 인간들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던 데이비드에 대해 저자는 정작 데이비드 본인의 생각이 오염된 건 몰랐다며 그 오염의 증거를 책 곳곳에서 밝힌다. 또한 나치와 싸웠던 미국이, 비교적 최근까지 정책적으로 우생학을 옹호한 역사를, 사회적 약자를 강제로 격리하고 불임시술을 한 사실을, 희생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고발하기도 한다.

외면 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봐야

저자 ‘룰루 밀러’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기자다. 룰루는 과학자인 아버지에게 이 세상은 우주의 한 점 먼지보다 작고, 인간은 그 한 점 먼지 속에 사는 미세한 존재일 뿐이라는, 그러니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조언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룰루에게 아버지의 가르침은 전혀 와 닫지 않는, 알고는 있지만 믿기지는 않는 과학적 수사일 뿐이었다. 인간관계가 주는 좌절감에서 허우적거리던 룰루 밀러는 오히려 인간의 존재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데이비드의 회복력에 호기심이 갔다. 어떻게 대지진으로 평생의 업적이 산산조각이 난 좌절의 순간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달려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룰루는 다양한 자료를 뒤지며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하다가 그가 '악당'이었단 것을 알게 되고, 삶의 모델로 삼고 싶었던 데이비드의 잔인성과 무자비함에 오싹함까지 느끼게 된다. 룰루가 데이비드 행위에 대해 통쾌하게 반박해줄 말을 찾아 나선 이유다. 

그 결과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어류'로 분류되는 생물은 세상에 없다는 것. 룰루는 ‘캐럴 계숙 윤(Carol Kaesuk Yoon)’이라는 아마도 한국계 과학자가 쓴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라는 책을 읽은 후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에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물에 사는 생물이라고 해서, 비슷한 패턴의 피부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어류라는 한 종류의 생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캐럴 계숙 윤’과 그가 인용한 분기학(cladistics)에 따르면 우리가 통칭 어류로 부르는 물속 생물들은 다양한 해부학적 특성을 가진 여러 종류라고 한다. 즉, 어류라는, 하나의, 최상위의 생물 종류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어류라는 생물은 원래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주장은 데이비드가 평생 천착해 왔던 어류 분류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저자가 인터뷰한 과학자들도 분기학자들의 어류에 관한 주장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과학자로서 업적과 인간으로서 면모가 재평가되고 있다며 룰루는 책을 마무리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삽입된 삽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2021년 연말 한국에서 출판돼 2022년 서서히 입소문이 나더니 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종합 상위권에 오른 책이었다. 지금도 대형서점의 과학 서적 부문에서 상위권에 있다. 

이 책의 어떤 특별한 점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아마도 과학 이야기를 유려한 문체로 담은 글의 힘에 있을 것이다. 그에 더해 '연대의 그물망'이 인류를 발전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는, 또한 '민들레의 법칙', 민들레가 누군가에게는 잡초일 뿐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약초나 물감처럼 널리 이롭게 쓰인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따뜻한 위로를 준 건 아닐까. 

무엇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겉모습에 미혹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급’이 나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는 걸 떠올리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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