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⑰…원교근공책ⓑ (범저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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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⑰…원교근공책ⓑ (범저의 복수)
  • 손봉균
  • 승인 2018.02.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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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손봉균의 역사여행, 원교근공책’의 두번째글 입니다. /편집자주

 

 

<진(秦)나라는 전국시대 말기에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기본적인 외교정책으로 채택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원교근공책의 내용과 진소양왕(秦昭襄王)이 범저의 건의에 따라 원교근공책을 채택하게 되는 과정에 관하여 소개하겠다. 진나라가 상앙의 개쳑으로 가장 강한 국가가 된 후, 소진과 장의가 주장한 외교정책인 합종책과 연형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실패한 후, 범저가 등장하여 원교근공책을 주장하였다.>

 

▲ 손봉균씨

 

(3) 범저가 위나라 정승 위제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

 

진나라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위나라를 치려고 하자, 위나라 왕은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평을 청하기로 하였다. 진나라에 가는 사신으로 중대부 수가를 선정하였다.

범저는 위나라에서 수가가 왔다는 보고를 받고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었다. 속으로 ‘이제야 지난날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범저는 비단 옷을 벗어 버리고 거지꼴로 변장하고 수가가 머무는 관역에 가서 수가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수가는 반가워하면서 ‘그대는 정승 위제에게 맞아 죽은 줄로 알았는데 어찌 살았느냐?’고 물었다. 범저는 옥졸이 자신이 죽은 줄로 잘 못 알고 교외에 내다 버렸기 때문에 겨우 살아났다고 하면서 흘러흘러 진나라에 왔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날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가는 범저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부하에게 시켜 솜옷 한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사신으로 왔는데 승상 장록에게 나를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면 천거해 달라고 하였다.

범저는 대답했다. “자신이 모시는 영감이 승상 장록과 잘 아는 사이입니다. 가끔 주인을 따라 승상부에 간 적이 있으며, 주인 영감이 승상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 막히면 제가 옆에서 몇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승상은 제가 구변이 있대서 술과 음식을 주기도 하여 자연 친근하게 되었습니다”.하면서 “만일 대부가 승상 장록을 만나 보겠다면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하였다.

수가는 좋다고 하면서 수레를 타고 바로 출발하였다. 승상부에 도착하자 범저는 자신이 승상에게 아뢰겠다고 하면서 먼저 승상부 안으로 들어갔다. 수가가 문 밖에서 서성거렸다. 한참동안 기다려도 범저가 나오지 않자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부탁했다. 친구가 안으로 들어갔는데 나오질 않는다고 하면서 좀 불러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친구는 아까 수레를 몰던 그 사람인데 이름은 범저라고 알려주었다.

문지기가 놀라면서 말했다. “수레를 몰고 오신 분은 바로 우리나라 승상 장록이십니다. 승상께선 옛 친구를 만나 보시겠다면서 미복으로 관역에 갔다 오셨습니다. 어째서 우리나라 승상을 범저라고 부르십니까?”

수가는 <범저에게 속았구나. 난 이제 죽었지 별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안에서 들어오라고 하였다. 수가는 승상 범저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연신 사과하였다.

범저는 수가가 자신에게 저지른 죄를 말하고, 너를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만 아까 관역에서 자신에게 좋은 마음으로 솜옷 한 벌을 주었기 때문에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대신 위나라로 돌아가서 정승 위제의 목을 끊어서 자신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그 전에 범저는 진 소양왕에게 가서 자신의 이름은 범저인데, 사정이 있어서 대왕께 장록으로 이름을 속인 죄가 있다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여 용서를 받았다. 진 소양왕은 범저의 사정을 듣고는 앞으로 위제에게 복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진 소양왕은 범저의 건의를 받아들여 위나라가 청하는 화평을 수락하였다.

 

위나라 왕은 진나라의 조건을 받아들여 범저의 가족을 진나라로 보냈다. 그러나 자신의 정승 위제를 죽여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데, 위제가 위나라 왕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정승의 자리를 버리고 조나라로 달아났다. 위제는 전부터 잘 아는 조나라 평원군 조승에게로 갔다.

 

※ 전국시대에 식객 3천명을 두고 그들로부터 좋은 정책을 자문 받는 4대 공자가 있었다.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말한다. 이 시대에는 군주들은 약간 뒤로 물러나고 군주를 보좌하는 참모들, 즉 4대 공자들이 활약하는 시대로서 사기(史記)에서는 이 시대를 식객의 시대로 분류하였다.

 

▲ 진나라와 6국 형세도/중국 每日頭條

 

이러한 보고를 받은 진 소양왕은 조나라가 그 동안 진나라에 대해서 지은 죄를 합쳐서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조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조나라에서는 진나라에 항전하면서 제나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나라에서 요청을 받아들여 제왕은 전단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지원병력을 보냈다.

진나라 대장 왕전이 제나라 군사가 조나라를 도우러 온다는 정보를 받았다. 왕전이 진소양왕에게 건의했다. “제나라가 조나라를 도우면 두 나라를 상대로 우리가 이기기 어렵습니다. 군사가 상하기 전에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진 소양왕은 평원군 조승에게 편지를 보내,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는 이유는 위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정승 위제를 보내주면 진나라는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평원군은 위제가 자신에게 와 있지 않다고 하였다. 세 번이나 사자를 보냈으나 끝까지 잡아 떼고 위제를 내 놓지 않았다. 진 소양왕은 평원군이 위제를 내 놓지 않을 것을 알았다.

진 소양왕은 여러 가지로 고민한 끝에 범저의 복수를 위하여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진 소양왕은 조 효성왕에게 서신을 보내, 진나라에서는 위제가 평원군 문하에 있다는 헛소문을 듣고 위제를 잡으려고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면서 이제 조나라에서 뺏은 3개의 성을 돌려주고 철수한다고 하면서 조나라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진 소양왕은 평원군 조승을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평원군은 조왕과 상의하고 진나라로 갔다. 진 소양왕은 환영잔치를 베풀고 술을 같이 마신 후 조나라 평원군에게 위제를 내 놓으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평원군은 위제가 자기 집에 와 있지 않으니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진 소양왕은 평원군이 순순히 위제를 내 놓지 않을 것을 알고는 관사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 위제를 죽여 그 목을 보내주면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이나, 그렇치 않으면 평원군을 진나라에 구류할 것이고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로 쳐들어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조왕은 위나라 정승 위제 때문에 조나라의 보배인 평원군을 잃을 수 없다고 하면서 위제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정보가 미리 새어나가 위제는 평원군 문하 선비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다. 조나라 정승 우경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우경은 정승을 사직하고 위제와 함께 위나라 신릉군에게 찾아 가서 위제를 도와 달라고 말을 전했다. 그러나 신릉군은 위제를 숨겨주면 진나라가 위나라를 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숨겨주어야 할 것이지를 고민을 하면서 며칠 동안 우경과 위제를 만나지 않았다.

이에 위제는 신릉군이 거절하는 것으로 알고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난처하게 만들 수 없다고 하면서 자살하였다. 우경도 세상인심을 탄식하고 백운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시국을 풍자하는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냈다.

조왕은 위제가 자살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나라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위제의 목을 받아와 진나라로 보냈다. 이에 진소양왕은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 보냈다.

 

손봉균씨는
국토교통부에서 30년간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행정고시 19회에 합격. 전 국토지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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