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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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어려운 이유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3.03.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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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한일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했다. 지난 16일,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다수 국민도 어려운 경제여건 그리고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전제 조건에 있어서 정부와 국민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정부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잠시 내려놓자고 얘기하지만 여전히 국민은 과거에 대해 일본이 진솔한 반성과 참회를 표현한 이후 미래관계를 긍정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변함없는 고자세 

국민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는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 발표문과 인터뷰에서도 기시다 총리의 반성 의지가 별로 없었다는 데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역사에 관한 과거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점 이외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양국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길 기대한다는 언급이 전부였다.

소재, 부품, 장비 등의 수출규제 해제 이외 우리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구체적인 성과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물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소재품목의 수입이 활성화되면 공급망 불안 해소가 가능해질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원천기술, 노하우 등 일본의 소재, 부품 등에서의 강점을 교류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일본의 경제정책 방향성에 있다. 일본은 기시다 총리 출범 후 경제안보영역의 담당 조직을 신설, 거너번스 체계를 강화하고 있고 기술안보에선 특정 기술의 R&D 역량을 강화하면서 국가안보 관점 하에 신기술에 대한 개발 및 투자 전반을 국가가 직접 관리한다는 점을 공고히 밝혔다. 

일본의 경제안보정책, 산업정책, 과학기술정책에서 우리와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다기보다 일본은 경제와 산업을 자국의 안보로 간주하기에 철저히 자국 중심의 기술 발전과 혁신에 국가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요 영역에서 별도의 핵심기술을 선정, 보안에 신경 쓰고 있다. 

국가안보를 우선에 둔 일본의 기술정책

일본의 내각부는 지난해 운송·이송, 컴퓨터, 의료, 공학·소재, 네트워크, 에너지를 핵심기술 품목으로 선정하고 이들 품목 영역에 소속된 기술을 특정중요기술로 지정했다. 2022년 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일본의 전략기술 확보전략 및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해당 기술의 상당수는 우리의 핵심기술과도 중복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 및 머신러닝, 양자정보과학, 바이오, 로봇공학, 첨단재료과학, 데이터분석, 사이버보안, 첨단엔지니어링 등은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기술과 중복된다. 일본은 이들 기술을 외부에 빼앗기거나 다른 나라가 독점할 경우 국가 및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기술이라고 정의, 경쟁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정부가 관리·통제하고 있다. 

일본의 기술력은 실제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일본 이공계 대학의 R&D 수준은 기초, 응용 모든 면에서 국내 대학을 압도한다. 제품으로 만드는 역량은 부족하지만 제품 작동을 뒷받침하는 수준 높은 품질의 원재료, 센서 등은 여전히 일본이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역량이 다르기에 서로 기술 협력이 원만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일본의 내각부가 지난해 발표한 <종합 이노베이션 전략 2022>에서도 중요 기술은 모두 국가의 경제안전보장과 직결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일본이 경제안보보장 추진을 위해 별도의 컨트롤타워(경제안보담당대신)를 구축한 점은 경제영역을 새로운 안보영역으로 규정, 포함시켰다는 점을 의미한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일본에 면죄부를 주어선 안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일 관계가 경색된 지난 3년간 21조원의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유발 효과가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매년 7조원씩 경제효과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일부 언론에서 잃어버린 20조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유다. 정부 역시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와의 경제협력 단절로 일본이 겪은 피해도 적지 않은 점을 직시해야 한다. 실제로 소재, 부품, 장비 영역에서 우리의 자립화가 일부분 가능해졌고 글로벌 혁신역량에서도 국내 기업은 일본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K-POP 및 콘텐츠 수출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정부는 얘기했지만 K-콘텐츠는 이미 일본 없이도 세계적 수준을 입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에 관해서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우리는 일본과 공동으로 기술개발하며 비용을 절감하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은 기술과 경제를 안보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일본의 속내에 대해 정확한 분석 없이 성급히 면죄부를 부여한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역사의식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20조원이 아무리 급해도 우리의 잃어버린 36년 역사와 아픔을 교환할 수는 없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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