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선은 어떻게 생겼을까…금강송으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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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선은 어떻게 생겼을까…금강송으로 재현
  • 김현민
  • 승인 2018.02.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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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본 외교 위해 12번 오간 선박…재현선 상량식 22일 개최

 

조선 왕실은 일본 막부에 사절단을 보냈다. 이 사절단을 조선통신사라고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으킨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대가 열리면서 조선은 사명대사 유정을 일본에 파견해 국교를 회복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200여년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했다. 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해,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館)의 삼사(三使)이하, 화원(画員)·의원(医院)·역관(駅官)·악사(樂士)등 모두 400~500명의 대사절단이었다.

한양(漢陽)을 출발해 일본 수도 에도(江戸)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3,000㎞의 여행이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 제작 중인 조선통신사선 재현선 /문화재청 제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조선통신사선의 재현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전남 영암 대불공단에서 이 배의 건조작업이 진행중이다.

이 연구소는 22일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의 대들보 격인 ‘멍에’를 올리고, 진수까지의 안전을 기원하는 상량식을 개최한다.

 

▲ 제작 중인 조선통신사선 재현선 /문화재청 제공

 

조선통신사선은 조선통신사들을 태우고자 국가에서 제작‧운영했던 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당시 사행의 기록과 2015년 4월부터 발굴조사한 조선 시대 조운선(마도4호선) 등을 참고해 원형을 설계한 후 지난해 6월 22일 배짓기 고사를 시작으로 실물 크기의 선박 재현을 착수했다.

재현선 제작에는 ▲선박 운항실태가 적힌 「계미수사록(癸未隨槎錄)」(1763) ▲선박의 치수가 기록된 「증정교린지(增政交隣志)」(1802) ▲전개도와 평면도가 수록된 「헌성유고(軒聖遺槁, 필사본)」(1822) 등 문헌자료가 참고되었다.

이들 사료를 토대로 재현선은 길이 34.5m, 너비 9.3m, 높이 3.0m, 총 톤수 137톤의 규모로 제작된다.

재현선 제작을 위해 강원도 삼척과 홍천에서 자생한 70~150년생 금강송(소나무) 900여 그루가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배 밑 저판(底板, 물에 뜨도록 만든 밑판)과 좌‧우의 외판(外板), 선수(船首)와 선미(船尾) 등을 제작해 약 65%정도 공정을 마친 상태다. 특히, 멍에는 해발 1,000m 고지대에서 벌채한 금강송(길이 20m, 직경 60㎝) 15그루가 사용되었다.

 

상량식은 사해용왕께 올리는 불제(祓除, 재앙을 물리침)를 시작으로 상량문 낭독,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初獻)과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亞獻), 철상(撤床) 후 마지막으로 멍에를 올리는 상량의식 순으로 진행된다.

진수식은 배가 완공되는 올해 10월경에 이뤄질 예정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재현선이 완성되면 배와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고, 섬과 오지 등을 오가며 재현선을 직접 운항하여 선보이는 승선 체험 프로그램을 가지며, 한국과 일본에서 해마다 추진하는 조선통신사 축제와 각종 해양문화행사에 활용할 활용할 계획이다.

 

▲ 조선통신사 행로 /조선통신사문화사업 홈페이지
▲ 조선통신사 그림 /조선통신사문화사업 홈페이지
▲ 2017년 5월 부산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축제 /조선통신사문화사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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