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 1대1 통화 교환의 착시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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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 1대1 통화 교환의 착시현상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2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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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주민들, 일시적인 부의 효과…기업 파산으로 실업자 전락

 

분단된 나라가 하나로 통일할 때 통치구조의 통합만큼이나 경제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중요한 것은 서로 달리 쓰던 통화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결국, 교환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1990년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점은 화폐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은 마르크(mark)라는 통화단위를 공히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가치가 다른 두 통화를 어떻게 단일 통화로 만드는지 여부가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동서독 통화의 교환가치에 대해 당시 많게는 20대1에서 2대1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가부도 상태에 이른 동독의 화폐는 거의 쓰레기로 전락했기 때문에 2대1의 교환비율, 즉 동독의 2마르크를 서독의 1마르크로 교환해주는 것조차도 무리였다.

 

▲ 독일 통일의 영웅 헬무트 콜 총리 /위키피디아

 

그런데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독일이 통일되면 동둑 국민들에게 똑같은 삶의 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정치적 발언은 화폐 통일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콜 수상에게 2대1의 교환비율이 적정하다고 건의했다. 당시 동서독 간 공식환율도 2대1이었다. 암시장에서는 4대1로 교환되었다.

2대1의 교환비율로 양독 화폐가 통일될 경우 동독인들의 실망감이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동독 주민들은 통일이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당시 마르크 단위 기준으로 서독과 동독 근로자의 임금비율은 2대1이었는데, 화폐교환을 2대1로 하게 되면 동독 근로자의 임금은 서독근로자의 4분의1로 줄게 된다. 이게 맞는 교환비율이었다.

이 때 결정은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콜 총리는 서독인이 희생하더라도 동독인의 통일염원을 적극 이끌어 내야 한다고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된다.

콜 총리는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반대했지만, 정치적 결정을 뒤집을수는 없었다. 통일되기 6개월 전에 양독 화폐비율은 1대1로 확정되엇다.

 

분단된 체제의 화폐 교환비율을 1대1로 하는 결정은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이끌었다. 동독 주민들의 부가 하루 아침에 두배로 불어나게 되었다. 통일은 서독주민들보다 동독 주민들이 더 원하게 되었다. 이 희망의 기대치가 주변 강대국의 질시를 물리치고 독일 통일을 일궈 낸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겼다. 투기꾼은 경제 왜곡을 먹고 산다. 정치적 판단은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준다. 동독과 서독 국경지역에는 암거래상이 장시진을 이뤘다. 서독 사람들은 암거래시장에서 급매물로 쏟아져 나오는 동독 마르크를 샀다. 몇 달만 버티면 동독 마르크를 은행에 가져가 가치가 높은 서독 마르크로 바꿀수 있기 때문에 통화가치의 아비트리지(arbitrage)가 생긴 것이다.

 

▲ 통일 직후 동독에서 생산된 트라반트 차량이 폐기되어 나뒹굴고 있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동독 기업들은 고사 직전으로 몰렸다. 갑자기 동독 통화가치가 두배 이상으로 절상되면서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 동독 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은 물론 독일내 국내 경쟁력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결국은 동독기업들은 1대1 교환비율 결정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동독 기업들의 연쇄 파산이 진행되었고, 문 닫은 공장에서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면 재산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직장만 잃게 된 것이다.

 

환율은 양면의 칼이다. 자국 통화가 절상되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득이지만, 수출 기업엔 절대적 손실이 돌아온다. 결국 1대1 교환비율은 동독 경제를 살지게 한 것이 아니라 피폐하게 만들었다.

동독 주민들의 기쁨은 일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독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매각되면서 경제기반이 무너졌다. 동독 주민들은 결국 실업 수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화폐착시 현상의 무서움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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