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전국새…“쓸데도 없는데 군사만 쫓아오네”

하늘로부터 받은 권력의 상징…진시황이 만들어져 유실과 발견 반복 김인영 기자l승인2018.02.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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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손견(孫堅)이 동탁을 몰아내기 위해 낙양에 진입했다. 동탁은 금은보화를 약탈하기 위해 역대 황제의 능묘를 파헤치고 낙양을 불태우고 우물을 돌과 모래로 묻어버렸다. 손견은 파헤쳐진 능묘를 복구하고 우물을 파내 물을 길을수 있도록 했다.

그때 백옥의 전국새가 나왔다. 손견은 흥분했다. 전국새를 가졌으니,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될수도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손견은 이 옥새를 16살 되는 아들 손책(孫策)에게 맡겼다.

 

전국새(傳國璽) 또는 전국옥새(傳國玉璽)는 중국 황제, 즉 천자(天子)의 상징이다. 이 옥새만 가지면 황제가 된다고 믿었다. 의미 그대로 “나라에서 나라로 전해지는 옥새”라는 뜻이다.

전국새는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만들었다. 진시황은 황제만이 사용하는 인장이라는 뜻으로 ‘새’(璽)자를 처음으로 썼다.

전국새는 장안(長安)에서 가까운 남전산(藍田山)에서 캔 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설과 초나라 사람 화(和)씨가 캐낸 옥(和氏之璧)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전설이 전설을 이어오다가, 후대엔 ‘화씨의 옥’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진시황은 천하의 명옥 화씨벽을 얻어 옥새를 만들라고 명했다 이때 재상 이사(李斯)가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이라는 문구를 전서(篆書)로 새겨 도장을 만들게 하였다. 그 뜻인즉,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하리라”라는 내용이다.

 

▲ 전서(篆書)로 쓰여진 전국새의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이라는 문구 /출처: 每日頭條

 

화씨지벽(和氏之璧)

화씨의 구슬이라는 뜻으로, 천하의 명옥(名玉)을 이른다.

「한비자」(韓非子) 화씨편(和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에 화씨(和氏)라는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발견해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을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케 하였더니, 보통 돌이라고 했다. 여왕은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해 그의 왼쪽 발을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바쳤다. 무왕도 옥을 감정시켜보니 보통 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왕 역시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며 오른쪽 발을 자르게 했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문왕이 그 소식을 듣고 그를 불러 슬피 우는 까닭을 물었다. 화씨는 “나는 발을 잘려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벌을 준 것이 슬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문왕이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하여 그 명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하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시황제가 배를 타고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뻔했다. 시황제가 황급히 옥새를 호수에 던지고는 신령께 빌자 물결이 잠잠해졌다. 8년 뒤 시황제의 사신이 밤에 화음(華陰)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돌연히 어떤 사람이 나타나 사신의 길을 가로막고는 용왕이 돌아가셨기에 돌려준다며 옥새를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시황제의 손자이자 3대 황제로 즉위한 자영이 함양(咸陽)을 함락시킨 전국새를 유방에게 바쳤으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해 한(漢)나라를 세운후 후임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졌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 왕조를 세운 왕망(王莽)이 잠시 이 옥새를 빼앗았다. 왕망은 자신의 고모이자 당시 태황태후였던 왕정군(효원황태후)이 옥새를 감추고 주지 않자 사신을 보내 이를 독촉했고, 왕정군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이라며 사자에게 옥새를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바닥에 내던져진 전국옥새는 손잡이 부분인 용의 모퉁이가 깨졌고 이후에 깨진 부분을 금으로 때웠다는 일화가 있다. 이 때운 자국은 훗날 진짜 전국옥새를 구분하는 증거로 알려지게 되었다.

왕망은 이 전국새를 빼앗아 황제가 되었지만,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전국새를 되찾았다.

후한 말 영제(靈帝, 재위 168~189) 때 십상시(十常侍)의 난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손견이 낙양성 우물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전국새를 손에 넣은 손견은 절대 비밀에 부쳤지만, 비밀이 새어 나갔다. 그의 부하 중에 원소와 동향인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원소에게 고해 바쳤다. 원소가 손책에게 옥새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지만, 손견은 절대 갖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원소 진영에서 탈출한다. 원소는 형주자사 유표에게 손견의 전국새를 탈취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손견은 유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삼국지는 그 상황을 시로 표현했다.

 

옥새득래 무용처(玉璽得來 無用處) /반인차보 동도병(反因此寶 動刀兵)

옥새를 얻어 오기는 했지만 쓸 곳이 없고 /오히려 이 보물로 인해 칼든 군사들만 쫓아오네

 

유표에게 패전해 근거지를 잃은 손책은 그 쓸모 없는 전국새를 원술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군사를 얻어 강동으로 돌아가 오(吳)나라를 세웠다. 손책으로부터 옥새를 얻은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다가 유비와의 싸움에서 지고 그 여파로 죽었다. 전국새는 우여 곡절 끝에 조조의 손에 넘어간다.

 

이후 진(晉) 왕조를 거쳐 5호 16국 시대의 이민족이 세운 후조(後趙), 염위(冉魏)를 지나, 동진(東晉)에서 시작되는 남조(南朝) 6국에 대대로 전해졌고, 수나라와 당나라, 오대 십국 시대 후량(後梁)과 후당(後唐)까지 전해지다가 후진(後晉)의 출제가 요 태종에게 붙잡힌 946년에 유실되었다.

 

이후 몇 차례 전국옥새를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명나라 홍치제(弘治帝) 때도 옥새가 발견되었다고 하고, 후금의 도르곤이 몽골에서 옥새를 발견해 홍타이지가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바꾸고 황제로 등극했으며, 청 건륭제때에도 옥새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진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새는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되풀이 했다. 많은 황제들이 전국새를 내세워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고자 했다. 전국새는 천하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도장이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6대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년∼95년) 때에 전국새가 발견되었다. 건륭제 때에 전해내려오는 전국새는 1천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많은 손상을 입었고, 글씨도 겨우 몇 개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건륭제는 사람을 새켜 전국새를 새로 만들게 했는데, 건륭제가 손에 넣었던 그 전국새도 진위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전국옥새가 진시황제 이후로 천하를 제패하는 사람이 소유함으로써 황제나 황권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으며, 이를 차지하는 사람이 곧 천하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겼다. 후세의 중국 역대 왕조는 한대의 옥새를 모방해 옥새를 만들고 그것을 전국옥새로써 사용했다.

전국새는 하늘로부터 받은 권력의 상징이었을 뿐,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사용된 것은 황제육새(皇帝六璽)였다고 한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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