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64년간 백제의 수도방어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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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64년간 백제의 수도방어시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17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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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해자 삼아 야산에 2.6km 성벽 건축…산책코스로 각광

 

▲ 공산성 금서루 /사진=김인영

 

충남 공주에 가면 백마강(금강)에 공산성(公山城)이 있다. 성곽길 코스는 빨리 걸으면 30분, 천천히 음미하면 1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백제를 잃고 죽임을 당한다. (475년)

그의 아들 문주왕은 웅진(熊津)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그 자리가 공산성이다.

곰 熊과 나루 津이 합쳐진 웅진은 말 그대로 곰나루라 불리웠고, 당시에는 구마나리라고 했다 한다. 곰을 구마로 읽는 곳이 있다. 일본이다. 일본 구마모토가 熊本이다. 고구려어-백제어의 혈통이 일본어의 뿌리가 되었음을 알수 있다.

 

▲ 공산성 약도 /사진=김인영

 

성의 북동은 금강이 흘러 해자 역할을 하고, 해발 110m의 야산이 방어진지 역할을 했다.

백제시대에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능선에 쌓은 이 성은 동서 약 800m, 남북 400m 정도의 크기로 장방형 구조다. 총둘레 2,660m 가량 된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2.5m이며, 너비는 약 3m이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에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 공산성 왕궁추정지 /사진=김인영

 

백제가 이 곳을 수도로 삼은 기간이 64년에 불과하다. 성벽을 이루는 산세가 야트마해 적의 침공에 허약해 보인다. 이 성은 문주왕에 이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538년(성왕 16년)에 부여로 천도할때까지 짧은 기간 수도로서 역할을 했다. 성왕은 부여(사비, 泗沘)로 도읍을 옮긴지 16년 후 554년 신라군에 의해 살해되었으니, 한강 하류를 빼앗긴후 백제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사적 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처음 이름은 웅진성(熊津城)이었으나, 고려시대 초엽에 공산성으로 바뀌었으며,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도 불리웠다.

성안의 유적으로는 쌍수정, 쌍수산성 사적비, 진남루, 임류각지, 광복루,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못, 공북루, 동문과 서문 등이 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했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가 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 때 인조가 공산성으로 피신해 두 그루의 나무(雙樹) 밑에서 반란 진압소식을 기다렸다고 해서 그후 그곳에 쌍수정을 지었다.

 

▲ 공산성 금서루 /사진=김인영
▲ 공산성 연못지 /사진=김인영
▲ 공산성 진남루 /사진=김인영
▲ 공산성 북동을 흐르는 금강 /사진=김인영
▲ 공산성 둘러보기 /사진=김인영
▲ 공산성 둘러보기 /사진=김인영
▲ 공산성 둘러보기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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