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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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나가면서
  • 주우(宙宇)
  • 승인 2018.02.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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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에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듯이, 칸트도 주체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는 객체를 파악한다는 기존의 방식에서 객체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는 주체를 파악한다는 완전히 혁명적인 인식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현실을 인식할 때와는 달리 실상(眞理)을 파악하려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태양을 파악하려고 하지 말고, 움직이지 않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서 움직이는 지구라는 입지에서 파악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지구가 움직일 때마다 태양의 모습이 바뀌듯이 주체의 입지가 바뀔 때마다 대상인 물자체가 변신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입체주의의 피카소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는 주체와 객체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객체가 바뀌게 하려면 나 자신의 입지가 바뀌어야 함(用變)을 일러줍니다. 현실에서는 주체가 손수 객체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 유리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에서는 주체가 바뀌는 방식이 객체에 영향을 끼치는 데 장기적으로 유익함을 칸트는 파악했던 것입니다. 다만 주체의 변화에 따른 객체의 결과가 드러나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므로 기다려야 하는(不動本)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처럼 칸트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서 봉착한 철학적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듯이, 우리도 객체의 변화(大三)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運三)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봉착한 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이 기존의 방식대로 하면서 삶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그런 이를 정신병자라고 합니다.

태양이 움직여야 한다는 오감에 의한 현실이 실제가 아니듯이 객체가 변해야 한다는 오감에 의한 정보나 세속의 진술은 실상이 아닙니다. 이처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이 실제이듯이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리고 오감이나 외부 정보를 참고하되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한 자기 내면의) 이성에 의해서만 실상을, 진실을, 진리를, 반야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도 오감에 의한 오욕락(五欲樂)에 좌우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건 없는 자신만의 준칙이란 의미에서 정언명령입니다.

칸트가 ‘코페르니쿠스 전회’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 자신만의 이데아를 변증(辨證)으로 상기(想起)해냄으로써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을 정립해서 서양철학의 대전환을 이뤄내게 되고(코페르니쿠스 전회가 칸트 철학의 결론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었듯이, 여러분도 천부경을 통해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서 자신만의 이데아를 알아보게 됨으로써 인류에 이바지하는 인생 대역전을 이뤄내기를 바랍니다.

다만 자신의 존재상태(一)를 바꾸려면 실천해야 합니다. 칸트가 영혼 · 신이 실체가 아니므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위해 이성을 쓸 때에야 작동된다고 했듯이, 붓다도 자신의 영혼인 실아(實我, atta)는 담마를 배운다고 드러나지 않고 담마(本)를 적극 실천할 때에야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 집단의 本太陽 대한민국 현실

지금 이 땅에 사는 다수 사람의 존재상태가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과 꼭두각시 박근혜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요. 그러면 이렇게 드러나는 원인이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그 사람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이 천부경에서 말하는 수행인의 차원에 들어서고자 한다면 그 현상이 벌어진 요인이 나한테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대다수가 자의식이 생긴 이후에 초등학교 때 학원에 가는 것도 부모의 조종으로 가는 실정이고,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며, 또 대학교에 갈 때 학교와 전공까지도 부모 코치에 따라서 정한다고 합니다. 그다음 직장도 부모의 조종을 받고 결혼도 부모의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이 땅의 다수 사람이 자식들을 조종해서 자기 뜻대로 공부를 잘하게끔 해서 뭔가 뜻을 이루고자 하는데, 이 현상은 최순실이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만든 행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땅의 다수 사람의 속과 겉이 통일되지 않아서 남북이 통일되지 않고 있듯이, 이런 배후조종 에너지에 있는 사람들이 배후조종하는 최순실을 나쁘다고 해도 유사한 상황으로 반복될 것이므로 외부를 지적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아~ 저도 훌륭한 엄마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자식을 조종해서 키웠음을 인정합니다. 자식을 내 뜻대로 세상에서 주목받고 인정받도록 버젓한 과시용으로 키우면서, 자식을 위하는 엄마라고 나를 속이고 자식도 주변도 속였지요. 진정 자식이 잘되도록 이바지한 엄마가 아니라, 자식을 허영의 도구로 삼은 부끄럽고 한없이 미안한 엄마입니다.

 

박근혜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사실상 자신만을 위하고 있었듯이, 사람들도 대다수 말로는 자녀를 위한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사실상 자녀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박근혜의 정체성은 ‘나는 (공주 대접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을 이용한다’이고, 다수 부모의 정체성은 ‘나는 자녀를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입니다.

우리가 촛불을 든다는 의미도 촛불에 ‘귀신 같은 최순실 박근혜는 쫓겨 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배후조종 요인이 자신한테 있음을 밝게 비춰 보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회사나 가정, 학교나 군대 등 다양한 곳에서 상대를 조종하거나 조종받고 있고 또는 조종받기를 허용하며 사실상 서로 거래하고 있다면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놀란 게 있습니다. 꼭두각시를 다른 말로 괴뢰(傀儡)라고 하더군요. 제가 어렸을 때 반공 시간에 ‘북한 괴뢰’라고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는데, 북한이 자기들 뜻대로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소련의 의사에 좌지우지되고, 그다음 공산당의 일당 독재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아도 특정 행위나 주장을 하는 모습을 괴뢰, 꼭두각시라고 하더군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이 타인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고 하는 그 에너지가 바로 최순실과 박근혜라는 本太陽으로 드러났다는 것이죠. 이것을 각자가 중단하려고 노력해서 일정 사람들이 조종하기를 멈추는 흐름이 대세가 되기 전에는 아마 이들이 사라져도 또 다른 대체물이 나타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라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잘 알다시피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각자들한테 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잖아요.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다고 본다면 메시지를 놓친 것입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사람들이 희생되었듯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나 엉터리 언론을 통해서 지금 안전하니 자리를 지키라고 하는 정보에 누구나 희생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수행인이라면 이렇게 사건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 자식을 내 뜻대로 되게끔 조종하려고 하는지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겉으로 조종하지 않는 척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속에 그런 의도가 있다면 겉으로 드러내놓고 조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겉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상황을 꼬이게 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숨어서 조종해온 비선인 최순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겉으로 상당히 예의 바르게 잘하는 사람인데 특정 순간이 되면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를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속마음이 외부현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거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접근한 책이 있는데, 바로 󰡔착하다는 사람이 왜 나쁜 짓 할까?󰡕라는 책입니다. 예를 들어 의식적으로는 A쪽으로 가고 싶은데 정신 차려보면 B쪽을 가고 있다거나 틀림없이 A를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엉뚱한 B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의 본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本心 즉, ‘담마의 마음’이란 신이 각자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주는 메시지입니다. 마치 ‘너도 모르게 지껄이는 그 말이 바로 진정한 너의 마음이야!’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실수에 本心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본심을 󰡔붓다의 발견󰡕에서 실아라고 번역했습니다. 팔리어로는 아타atta입니다.)

사실상 영혼인 실아(實我)는 때로는 本心을 넘어서 本太陽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즉 집합 영(靈)으로 작동해서 각자에게 삶의 지표를 외부에 제시해줌으로써 자기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 本太陽입니다. 그러므로 담마(本 dhamma)를 사인sign을 통해서 보내는 本心은 ‘혼(魂 soul)의 마음’이고, 시그널signal을 통해서 보내고 있는 本太陽은 ‘영(靈 spirit)의 마음’입니다.

붓다는 앙굿따라니까야(A3:40)에 ‘세 가지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실아(實我 atta), 세간(世間 loka), 담마(本 dhamma)며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한 비밀은 없으니 그 사실을 자기도, 신(神)도, 여래도 알고 있으니 실아와 세간을 우선시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本心은 실아(實我 atta), 本은 담마(本 dhamma), 本太陽은 세간(世間 loka)에 해당합니다. 실아와 세간 양쪽 다 담마가 있으므로 실아를 우선시하는 자는 (자신을 성찰하는) 사띠를 행하고, 세간을 우선시하는 자는 현명해져서 선정에 들(어 세간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알아보)며, 담마를 우선시하는 자는 바른 담마를 (이론으로만 그치지 않고서) 실천한다고 합니다.

 

☸ 극복되지 않은 역사의 반복

이 땅에서 우리는 1592년 임진왜란, 1636년 병자호란의 교훈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1882년 임오항쟁, 1884년 갑신정변의 실패 그리고 이어서 민비와 진령군의 교훈이 얼마 전까지도 반복됐고, 1894년 동학항쟁의 실패, 1905년, 1910년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교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아직 못하고 있으며, 3·1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의 실패에서도, 1950년 6·25에서 그리고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기에, 이 땅의 구성원들이 집단으로 숙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도 말이지요. 이런 점에서 과연 우리의 자기의사결정권이 어찌 된 건가요?

그럼에도 설사 실패하더라도 제대로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은가요?

우리가 4대 강국과 무력으로 상대한다면 명백히 실패하는 결과가 예측되는데도 무력으로 잘되기를 바란다면 기대에 불과하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로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바란다면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우리만의 ‘신 르네상스’ ‘신 동학’을 이끌어내려면, 반만년 이전에 이 땅에서 실천됨으로써 세상의 문화를 선도(先導)했던 우리 고유의 천부경을 통해서 문화적인 실력을 갖추는 집단적인 결단이 요구됩니다.

되찾은 ‘민족혼’ 미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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