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과 미국의 이익이 맞물려 조여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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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과 미국의 이익이 맞물려 조여 올 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2.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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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외정책은 車산업과 결부…GM 공장 폐쇄, 트럼프의 호혜세 발언

 

1952년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을 지낸 찰스 윌슨(Charles Erwin Wilson)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윌슨은 상원 청문회에서 “국가의 이익과 GM의 이익이 충돌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오랫동안 미국에 좋은 것이 GM에 좋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해왔다.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GM은 너무 크다. 이 회사는 미국의 행복과 함께 간다. 미국에 대한 GM의 기여는 엄청나다.”

▲ GM 로고 /GM사

그후 “GM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이다”(What is good for GM, is good for America)는 윌슨의 발언이 많은 논란을 빚었다. GM이라는 특정회사가 미국의 국가 이익과 동일시되어야 하는가. 2008년 자동차 빅스리에 대한 구제금융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을 때,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 “빅스리 중 1~2개를 파산시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자”며, “파산은 고통스럽지만 군살을 빼고 복지병을 치유할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디트로이트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인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공장지대인 중부 러스트벨트(rust belt)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지난 1월 3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도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를 위해 에너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토요타등 해외 자동차메이커들에게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넓히도록 팔을 비틀었다. 아울러 한국 등에는 FTA 재협상을 통해 더 많은 자동차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은 교묘하게 자동차업계, 곧 GM의 이익과 결부되어 왔다. 과거의 이력을 들춰보면, 윌슨은 미국의 속내를 드러냈음을 알게 된다.

자동차는 수만개의 부품을 조립해 생산하는 제품인 만큼 관련 산업이 방대하고, 고용효과도 크다. 국가 브랜드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배경에 장갑차는 물론 전투용 차량을 생산한 자동차산업의 기여가 컸다. 2차 대전이 끝난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세계시장을 주도했고, 미국을 대적할 나라는 없는 듯했다.

그러나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1980년대초엔 미국시장에서 일제차 점유율이 20%를 넘게 된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등 이른바 미국의 빅스리는 기울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 본고장인 디트로이트는 폐허로 변하고 일제차가 어쩌다 보이면 노동자들이 두드려 부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외국산 자동차산업 때리기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가 1985년 플라자 협정이다. 1985년 9월 21일 미국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의 재무장관을 불러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달러 절하를 통보한다. 말이 합의지, 미국식 행패의 전형이었다.

이 네 나라는 모두 자동차 생산국이다. 당신 나라들이 무역 흑자를 내고 있으나,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값을 떨어드려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직접적 타깃은 일본이었고, 특히 자동차 산업이었다. 1달러당 240엔 하던 교환비율이 10년 후에 달러당 80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값이 3배나 뛰었으니,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견뎌내기 어려웠다. GM이 최대 수혜자였고, 약달러에 힘입어 미국 자동차업계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업계의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마른 수건을 짜듯 내핍경영을 하면서 경쟁력을 키웠고, 미국 자동차를 다시 위협한다.

미국이 두번째로 쓴 수단은 통상압력이다. 1980년대엔 미국은 수입 규제정책을 취해 일본은 대미수출물량을 자율규제해야 했다. 1990년대엔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일본 고위관리들이 미제차를 관용차로 사용하는 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집요한 통상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크라이슬러는 독일 회사에 넘어가고, GM은 마침내 2009년에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더 이상 미국 자동차 회사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20세기 후반들어 미국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의 하드웨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인텔·구글·애플등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전환함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하지만 자동차가 미국의 국가 이익에서 완전 배제된 것은 아니다.

21세기 들어와서 미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외제차에 대해 감시를 철저하게 했다. 2009년 일본 토요타 리콜사태, 2015년 독일 폭스바겐 리콜 사태도 미국 빅3의 견제수를 미국 정부가 대행했다고도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쇠락했다. 중부 러스트벨트는 자동차산업의 쇠락이 빚어낸 것이다.

 

▲ 한국지엠 군산공장 /한국지엠 자료사진

 

미국이 국가이익과 동일시되는 GM이 13일 경영난을 겪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5월말까지 군산공장 폐쇄로 직원 약 2,000명(계약직 포함)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 일자리 창출을 경제의 최우선목표로 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결정이다.

GM은 한국지엠의 회생을 위해 3조원 규모의 증자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산업은행이 지분비율(17%)로 5,000억 증자에 참여해달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정부와 여권은 일단 협상에 응한다는 분위기다. 정부는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GM측의 일방적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객관적이고 투명한 실사를 진행하도록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더 적극적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군산지역 표를 의식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나 노동조합이 회사의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GM의 결정에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관심이다. 물론 미국 행정부가 개별 기업의 경영사안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다만 외부적인 조건을 만들어주는데 기여를 한다.

트럼프가 12일 백악관에서 대규모 인프라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 발언을 주목해 보자. 그는 “우리는 한국, 중국, 일본에 어마어마한 돈을 잃었다. 그들은 25년째 살인(미국의 무역 적자)을 저지르고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동맹국이지만, 무역 면에서는 동맹국이 아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관세를 매기고,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지속할 수 없다“면서 곧 ‘호혜세’(reciprocal tax)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안에서는 GM이 공장을 폐쇄한다고 압박하고, 밖에서는 행정부가 나서 세금을 때리겠다고 한다. 죽이 잘 맞지 않는가.

GM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우리 경제를 압박할 때 대한민국의 이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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