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드라마 '대행사'가 보여준 현대판 머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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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드라마 '대행사'가 보여준 현대판 머슴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4 09: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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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JTBC 드라마 <대행사>가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1회에 4.8%로 시작한 시청률이 2월 26일의 마지막 회에서는 16.044%를 기록했다.

재벌 계열사인 광고대행사에서 오직 실력으로 성장해가는 고아인(이보영 분)의 서사를 다뤄 사랑받았다. 다만 주인공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 혹은 프레임이 눈살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드라마 속 두 이야기 

드라마 <대행사>를 소재나 배경으로 구분하면 두 개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광고대행사 이야기와 재벌가 이야기.

<대행사>는 제목으로 내세웠듯이 광고대행사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 서사이다. 대중들은 알게 모르게 접하는 광고가 많지만 이를 만드는 광고인의 세계는 낯설다. 그런 면에서 광고인이나 광고인을 상대하는 직군의 사람들, 혹은 그런 이들을 지인으로 둔 사람들 외에는 생소하게 다가온 부분이 많은 드라마였을 것이다. 

대표적인 게 광고업계의 직군이다. 드라마 속 VC기획은 기획 부문과 제작 부문으로 나뉜다. 세부 직군으로는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가 있는데 씨디(CD), 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회사로 나온다. 물론 드라마 속 대행사와 실제 대행사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맥락상 창조적인 일을 하는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보여주었다.

그런 <대행사>는 소재만 광고업계에서 가져왔다.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드라마 속 광고인들의 행태는 여느 회사의 직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처럼 보였다. 실력보다는 학연을 선호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기보다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사내 정치에 유능한 인물이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태에 맞서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설정이었겠지만.

한편, <대행사>의 주 배경으로 나오는 VC기획은 재벌 계열사다. 회장의 딸이 임원으로 등극하는가 하면 회사 정책에 본사의 회장 비서실장이 입김을 불어 넣기도 한다. 

이런 배경에는 이 모든 기업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회장이 있다. <대행사>에서 ‘회장님’으로 불리는 이가 두 명 나오는데 창업주인 왕 회장과 그의 아들인 현 회장이다. 그리고 왕회장의 손주인 현 회장의 자녀들은 후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행사> 속 모든 서사는 사실 이들 재벌 가족이 벌이는 암투에서 출발한 풍선효과, 혹은 반사작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재벌가의 언행이 거슬릴 때가 많았다. 흙수저 출신 주인공의 성공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장치였겠지만 씁쓸한 건 사실이다. 바로 ‘머슴’이라는 표현이었다. 

없어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의 머슴

<대행사>에서 왕 회장은 머슴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자기는 주인이고 직원은 머슴이라는 거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주인보다 똑똑한 머슴에게 맡기면 된다는 해결책도 갖고 있다. 문제를 풀면 중용하면 되고 실패하면 내치면 된다는 것. 마지막 회에서는 “어디 감히 머슴들이”를 외치며 ‘일이 잘되면 주인 탓이고, 일이 잘못되면 머슴 탓’이라는 논리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왕 회장은 심지어 손주들은 물론 아들마저 자기에게 월급 받는 머슴으로 치부한다. 이런 할아버지를 닮은 손녀는 '신묘한 머슴'을 비서로 부린다.

<대행사>의 주인공 고아인과 그녀의 경쟁자는 서로를 이기기 위한 실적 다툼을 벌인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VC기획 대표에 오르는 것. 이를 왕 회장의 논리에 대입한다면 머슴들이 상머슴, 혹은 마름이 되려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이 지점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직원을 머슴으로 치부한 재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자금 흐름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했다.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은 ‘머슴에게 새경을 많이 주면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물론 일부 재벌의 철학이겠지만 다른 재벌이 이런 철학을 가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논란을 일으켜온 일부 재벌 2세와 3세들의 행태를 보면 그렇다. 분명 누군가로부터 보고 듣고 배웠을 테니.

이런 사례들을 보면 특권 의식, 자기 신분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그들 세계에서만큼은 보편적 인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특권층은 비단 재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인, 고위 관료, 법률가 등 권력에 가까운 이들도 그런 신분에 속한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의 언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수년 전 어느 고위 공직자의 ‘국민은 개돼지’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사회성 부족한 어느 엘리트 관료의 술자리 실언으로 믿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엘리트들이 자기와 ‘급’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특별한 신분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세습된다. 어느 유명 정치인의 아들은 사고를 칠 때마다 아버지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았다는 특혜 의혹이 일었다. 최근에는 어느 전 검사의 아들 사례도 공분을 샀다. 그가 동급생에게 가한 폭력의 수준과 그의 검사 출신 변호사 아버지의 대처는 특권층이 ‘급’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이렇듯 <대행사>는 특권층의 드러나지 않은 민낯, 혹은 삐뚤어진 인식을 떠오르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jtbc 드라마 '대행사'. 사진제공=jtbc

머슴 프레임으로 기억되는 드라마

우리의 주인공 고아인은 모든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해 VC기획의 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에필로그로 보여준 1년 후 모습에서는 독립 광고대행사를 창업한 대표가 되어 있었다. 후배들이 대기업 대표를 박차고 나와 조그만 회사 대표가 되니 행복하냐고 묻자 고아인은 “내가 영원히 머슴으로 살지 알았어?” 하고 반문한다. 

드라마 <대행사>는 어쩌면 머슴들이 연대해 승리하는 통쾌한 피날레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슴 프레임’에 갇힌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부잣집 머슴으로 살기보다는 가난한 집 주인으로 살겠다는. 

고아인의 선택이 만약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면 어떤 모습이 펼쳐지게 될까. 현실 속 대한민국은 갑과 을의 계약으로 물든 나라다. 때로는 을보다 약한 병이나 정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머슴으로 살 때가 좋았다는 푸념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마 쓰기 싫지만, 머슴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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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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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1319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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