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⑯…오월 전쟁ⓑ (도광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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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⑯…오월 전쟁ⓑ (도광양회)
  • 손봉균
  • 승인 2018.02.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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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 오월전쟁 편의 두 번째입니다. /편집자주

 

▲ 손봉균씨

 

(4) 군사훈련의 강화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문종이 간한다.

“아직 오나라를 칠 때가 아닙니다. 오나라엔 아직도 오자서 등 무서운 충신들이 있습니다. 이 일은 범려와 함께 상의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월왕 구천은 이 일에 대해서 범려와 함께 상의 했다. 범려가 아뢴다.

“오나라를 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왕은 좀 더 군사를 조련시키면서 때를 기다립시오. 싸움에는 군사가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반드시 군사 하나하나가 다 강해야 합니다.”

범려는 월왕 구천에게 보고하고 칼을 잘 쓰는 낭림 땅 처녀와 활을 잘 쏘는 진음이라는 사람을 초청해서 군사들을 조련시켰다. 칼을 잘 쓰는 낭림 땅 처녀는 1년 남짓 동안 군사 3천명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서 낭림 땅으로 돌아갔다. 활을 잘 쏘는 진음은 군사 3천명에게 한 번에 화살 세 대가 연달아 나가는 비법을 가르쳤다. 진음은 3개월 동안 전력을 기울여 활 쏘는 법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월나라 군사는 칼과 활을 잘 사용하는 강군이 되었다.

한편 오자서는 월왕 구천이 열심히 군사를 조련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고소대로 갔다. 오자서가 눈물을 흘리면 오왕 부차에게 간한다.

“구천은 범려를 시켜 밤낮 없이 군사를 조련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나라 군사들은 열심히 칼 쓰는 법과 활 쏘는 법을 배워 모두 다 놀라운 강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월나라 군사들이 일조에 우리나라로 쳐들어온다면 대왕은 어떻게 그들을 막으시렵니까? 구천을 믿지 마시고, 사실을 확인한 후에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제야 오왕 부차는 의심이 나서 간첩을 월나라에 보냈다. 간첩이 수개월 만에 돌아와서 오왕 부차에게 ‘월왕 구천이 칼과 활의 명인을 초빙하여 월나라 군사를 조련하였다고 합니다’ 라고 보고 하였다.

그 때부터 오왕 부차는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자서(伍子胥) 상 /위키피디아

 

(5) 자공의 외교 등 그 후의 전개과정

 

한편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제나라의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나라를 방문했다. 자공은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도록 권유했다.

자공이 오왕 부차를 뵈옵고 말한다.

“지난 날 오나라가 노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쳤기 때문에 그 후 제나라는 오나라와 노나라에 대한 지난날의 복수를 하기 위해 노나라를 치려고 문수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제나라 군사가 노나라를 무찌르고 나면 그 다음은 오나라를 칠 것입니다. 대왕은 왜 미리 제나라를 쳐서 노나라의 위기를 풀어주지 않습니까? 대왕께서 제나라를 치고 노나라를 거느린다면 오나라 위세는 진(晉)나라보다도 크게 되며, 천하 패권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오왕 부차가 대답한다.

“제나라가 지난번에 약속한 공물을 보내지 않아 과인도 다시 제나라를 칠 작정을 하고 있던 참이오. 그런데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월나라가 과인을 치려고 군사를 조련하고 모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장차 과인은 월나라부터 쳐서 무찔러 버리고 연후에 제나라를 치겠소.”

자공이 말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강한 제나라를 치고 천하 패권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대왕이 월나라에 대해서 안심할 수 없다면 신이 대왕을 위해서 월나라에 가겠습니다. 그리고 제나라를 치는 데 월나라 군사도 따라 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왕 부차가 크게 기뻐하며 당부한다.

“진실로 그렇게만 해 준다면 참으로 고맙겠소”

자공은 월나라를 방문했다. 월왕 구천은 공자의 유명한 제자인 자공이 온다는 기별을 받고 친히 30리 밖에까지 가서 자공을 영접하고 가장 훌륭한 공관으로 그를 안내했다.

월왕 구천이 자공에게 공손히 국궁하고 묻는다.

“궁벽한 동해가의 이 누추한 곳에 고명한 선생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자공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신이 이번에 오왕을 만나본즉, 오나라는 노나라를 돕기 위해 제나라를 칠 작정입니다. 그런데, 오왕은 대왕이 오나라에 쳐들어오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제나라보다 먼저 대왕을 칠 작정입니다. 대저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이 먼저 적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한다는 것부터가 졸렬한 짓입니다. 또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이 적에게 자기 뜻을 알린다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짓입니다. 대왕이 좀 더 신중하지 않으면 월나라를 위해 좋지 못할 것입니다.”

월왕 구천이 크게 놀라 무릎을 끓고 자공에게 청한다.

“그렇다면 선생은 이 몸을 위하사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줍시오”

자공이 대답한다.

“오왕은 교만하고 간신을 좋아하고 태재 백비는 세도를 누리기 위하여 아첨을 잘 합니다. 그러니 대왕은 좋은 보물로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공손한 말로써 예의를 다 합시오. 그리고 대왕은 친히 일군을 거느리고 오나라 군사를 도와 제나라를 칩시오. 오나라가 제나라를 쳐서 지면 국력을 많이 소모하게 되고, 이기면 더욱 교만해져서 천하 패권을 장악하려고 그 다음엔 저 강한 진(晉)나라를 치러 갈 것입니다. 그 때가 대왕에겐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도광양회[韬光养晦]를 하라는 말이다. 도광양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덩샤오핑 시기 중국의 외교방침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이 중국의 외교방향을 제시한 소위 ‘28자 방침’에 사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자공은 오왕 부차에게 돌아가서 갔다 온 경과를 알렸다.

며칠이 지나자 월나라에서 문종이 왔다. 문종이 오왕 부차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월왕 구천의 말을 전한다. 즉 이번에 제나라를 치시면 월왕이 직접 정병 3천명을 이끌고 대왕을 돕겠다고 하였다. 오왕 부차는 자공의 자문을 받아 군사만 보내어 지원하고 월왕께서 직접 참전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오왕 부차는 제나라를 치기 위하여 크게 아홉 군의 군사를 일으켰다. 월왕 구천은 대부 제계영에게 군사 3천명을 내 주고 오나라 군사를 도와 제나라를 치게 했다.

오왕 부차가 출발 준비를 한참 서두르던 참이었다. 오자서가 또 오왕 부차를 간한다.

“월나라는 우리 오나라에 있어 뱃속 병과 같고, 제나라는 우리 오나라에 있어 그저 부스럼 종기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제 왕은 10만 대군을 일으켰으니 제나라를 치려면 천리 먼 곳까지 군량을 대줘야 합니다. 뱃속 병은 고치지 않고 부스럼 종기를 걱정해서 이렇듯 군사를 출동시켜야 쓰겠습니까? 신은 왕이 제나라를 쳐서 이기기도 전에 월나라가 먼저 이곳으로 쳐들어 오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대로한 오왕 부차는 태재 백비에게 어떻게 오자서를 처벌해야 할지를 상의했다.

백비가 비밀히 아뢴다.

“오자서는 선왕 때부터 벼슬을 산 원로입니다. 그러니 왕께서 친히 죽여선 안 됩니다. 차라리 그를 제나라로 보내어 우리의 선전포고문을 보내도록 합시오. 그러면 제나라는 대로하고 오자서를 죽일 것입니다.”

오왕 부차는 백비의 건의를 받아들여, 선전포고문을 작성하게 했다. 그 내용은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고 한다 하니 이는 우리 오나라에 대한 모욕이라는 죄목을 들어 격렬한 어조로 제 간공(齊簡公)을 욕한 것이었다. 즉, 제 간공을 격노시켜 오자서를 죽이게 하려는 악독한 수법이었다.

오자서는 제나라의 도읍 임치에 이르러 제간공에게 선전포고문을 바쳤다. 선전포고문을 읽고 대로한 제간공이 오자서를 죽이려고 했다. 대부 포식이 간한다.

“오자서는 오나라 충신입니다. 그는 누차 오왕 부차를 간하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게 됐습니다. 이번에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보낸 것은 우리 제나라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감은 오자서를 무사히 돌려보냅시오. 오자서를 죽여 우리나라가 세상의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제간공은 오자서를 크게 대접하고 싸울 날자를 알려주고 돌려보냈다.

오왕 부차는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로 쳐들어가서 제나라를 격파하고 승리했다. 제 간공은 전쟁에 크게 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사신을 오왕 부차에게 보내고 많은 황금을 바치고 화평을 청했다. 오왕 부차는 제나라가 노나라를 다시는 침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화평을 수락했다.

오왕 부차가 돌아와서 정전에 오르자 문무백관들이 일제히 절하고 승전을 축하했다. 월왕 구천도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친히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에게 조례하고 승전을 축하했다.

그러나 오자서는 축하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앞일을 걱정하는 말을 한다.

“하늘은 장차 사람이나 또는 나라를 망칠 때에는 먼저 조그만 기쁨을 주고 연후에 큰 근심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이긴 것은 조그만 기쁨에 불과합니다. 신은 곧 닥쳐올 큰 근심이 두렵습니다”

오왕 부차는 승전에 대하여는 한마디의 축하의 말을 하지 않고 잔소리만 하는 오자서에 대해서 대로하여,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보냈다(촉루검을 보낸 것은 자결하라는 뜻이다)

촉루검을 받은 오자서는 껄껄 웃었다.

“너의 할아버지가 패왕이 된 것도, 네 놈이 왕위에 오른 것도 모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위에 올랐을 때 네 놈은 오나라의 반을 내게 주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난 그걸 받지 않았지. 그런 나를 이젠 모함해서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내가 죽고 나면 과연 네가 무얼 하겠다는 거냐?”

 

※ 오자서는 할아버지인 오왕 합려가 임금이 되기 전인 공자 광 시절부터 오왕 합려를 모셨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쿠테타를 일으켜 임금이 되도록 하였으며, 오왕 합려가 후계자를 정할 때도 부차가 후계자가 되도록 하였다. 즉, 부차가 왕이 되는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오자서는 촉루검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오자서는 죽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눈을 빼서 동문(東門) 위에 놓아 다오. 내 눈으로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망하는 꼴을 확인해야겠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오자서가 자살 한 뒤 시체를 술 담는 말가죽 부대에 넣어 강물에 던지도록 하였다.

 

제나라에 승리한 오왕 부차는 진(晉)나라와 천하 패권을 다투기 위해 만단준비를 하였다.

오왕 부차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을 향하여 올라갔다. 탁고 땅에서 노 애공(魯哀公)과 회견하고 발양 땅에서 위 출공(衛出公)과 회견하고 장차 위나라 황지 땅에서 모든 나라 제후들을 불러 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오왕 부차는 노, 제 두 나라 임금과 함께 황지 땅에 가서 진(晉)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대회에 참석하도록 진 정공(晉定公)을 초청했다. 진 정공은 싫지만 할 수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황지 땅에 갔다.

오나라와 진나라는 누가 대회의 맹주가 되어야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손봉균씨는
국토교통부에서 30년간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행정고시 19회에 합격. 전 국토지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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