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균의 역사여행⑯…오월 전쟁ⓐ (일곱 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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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균의 역사여행⑯…오월 전쟁ⓐ (일곱 계책)
  • 손봉균
  • 승인 2018.02.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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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는 오나라에 항복했다가 고생하고 돌아온 월왕 구천이 와신상담하면서 결국은 오나라를 멸망시켜 복수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하여 준비한 부국강병책의 내용과 실천과정 등을 소개하겠다. 이번 글은 내용이 많아서 좀 길게 썼다. 부담 갖지 말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손봉균의 역사여행 「오월전쟁」 편은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손봉균씨

 

중국 춘추시대, 기원전 490년경, 오왕 부차, 월왕 구천.

월왕 구천이 회계산의 전쟁에서 지고 오왕 부차에게 항복하여 오나라에 가서 갖은 고생과 수모를 당하고, 월나라로 돌아왔다.

고국에 돌아온 구천은 문종으로 하여금 나라 살림을 다스리게 하고, 범려는 오로지 군대 양성을 맡아서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자기 자신부터 가혹하게 다루었다. 의자나 침상을 쓰지 않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서 기거했다. 또 쓰디 쓴 쓸개를 매달아 놓고 수시로 그것을 핥으면서 자신을 격려했다(여기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구천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게 하면서, 항상 백성들과 노고를 같이 했다. 백성이 죽으면 월왕 구천은 친히 그 집에 행차해서 조문하고 슬퍼했다. 또 궁성 밖으로 행차할 때는 반드시 뒷 수레에다 음식을 싣고 다니다가, 어린 아이를 만나면 음식을 나눠 주고서 일일이 그 이름을 묻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농사 때가 되면 그도 친히 들에 나가서 밭을 갈았다. 월부인은 항상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짰다. 이리하여 그는 7년 동안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았고,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단 옷을 입지 않았다.

아울러 백성에 대한 법령도 보통이 아니었다. 튼튼하고 씩씩한 아이를 낳도록 하기 위하여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며,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게 하였다. 여자가 애를 낳으면 관가에 보고하게 하고 관가에선 즉시 의사를 보내 해산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산부를 돌봐주었다.

이리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면 관가에서 그 산부에게 술과 개 한 마리,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과 돼지 한 마리를 주어 산부를 보하게 하였다. 아들 셋을 낳으면 아들 둘을 길러주고, 아들 둘을 낳으면 나라에서 그 하나를 길러줬다.

 

그러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오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오왕 부차에게 문안하고 예물을 보냈다. 어디까지나 신하로서 자처하면서 속마음을 내 비치지 않았다.

한편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의 지극한 충성에 크게 감심하여 월나라에 많은 땅을 하사했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가 자기에게 충성을 다 하는 줄로 믿고서 어느 날 태재 백비에게 말했다. “이제 사방이 다 무사하고 나라가 태평하니 과인은 큰 궁실을 짓고 편히 즐기고자 하노라. 그런 궁실을 짓기에 적당한 곳이 있냐뇨?”

백비는 건의했다. “고소대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고소대엔 전 임금이 지은 궁실이 있긴 있으나 대왕께서 즐기실 만한 건물은 못 됩니다. 그러니 대왕께선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그 곳에다 백리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이에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궁실을 지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노래하는 동자와 춤추는 여자를 불러 모으고 인간세상의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오”

오왕 부차는 머리를 끄덕이고 즉시 전국에 큰 재목을 구한다는 현상을 내 걸었다.

 

한편 월나라 문종이 이 소문을 듣고 월왕 구천에게 아뢴다.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과일을 탐하다가 죽는 법이며 못 속에 있는 고기는 좋은 미끼를 욕심내다가 죽는 법입니다. 왕께서는 오나라에 복수를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니 먼저 오나라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내 주고 연후에 오왕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이어서 문종이 아뢴다.

“장차 오나라를 격파하려면 일곱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財物)을 써서 오나라 임금과 신하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이며,

둘째는 곡식을 꿔 달래서 오나라 창고를 비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미인(美人)을 보내어 오왕 부차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훌륭한 목공과 재목을 보내어 궁실을 짓게 함으로써 오나라 재물을 탕진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지혜 있는 신하를 보내어 오나라에 난(亂)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어떻게 해서든지 오나라 충신을 자살하도록 궁지에 몰아넣어 적국의 인재를 없애 버리는 것이며,

일곱째는 우리가 재물을 저축하고 군사를 조련해서 오나라를 무찌르는 것입니다.“

 

※ 문종의 일곱 가지 방법을 보면 여섯 가지는 오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며, 마지막 한 가지만 월나라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즉, 나라는 외부의 공격에 의해 망하는 것보다 내부의 잘 못 된 정책에 의해 미리 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 첫 번째로 실천한 계책

 

구천이 묻는다.

“좋도다 그대 말이여! 그럼 당장 어떤 계책부터 실행해야 하겠소?”

문종이 대답한다.

​“지금 오왕 부차가 고소대에다 다시 궁궐을 지을 작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큰 산에 사람을 보내어 좋은 재목을 골라 오래서 오나라로 보냅시오. 그래서 오왕이 궁실을 지으면서 재물을 탕진하게 하여 오나라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구천은 목공 30명을 산으로 보내 좋은 재목을 베어 오도록 하였다. 목공들은 1년여 동안 찾아서 굵고 키가 큰 좋은 나무 2개를 찾았다. 월왕 구천은 크게 기뻐하며 친히 그 산속에 가서 2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베어 왔다.

목공은 대패로 나무를 깨끗이 다듬고 단청으로 오색이 영롱한 용과 뱀을 그렸다. 문종이 큰 배에 그 재목을 싣고 강을 건너가서 오왕 부차에게 바치고 월왕 구천의 말씀을 전했다.

‘동해의 천신인 구천은 대왕의 힘을 입어 조그만 궁실을 지으려다가 우연히 큰 재목을 얻었습니다. 감히 개인적인 용도로 쓸 수 없어 아래 사람을 시켜 대왕께 바치나이다’

오왕 부차는 크게 기뻐하고 고소대를 짓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재목을 모으고 5년만에 고소대는 준공됐다. 고소대 상층에 올라가면 2백리 바깥을 내다 볼 수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

이 거창한 고소대를 짓느라고 오나라 백성은 밤낮없이 중노동을 했다. 그간 병이 나서 죽은 자 만해도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 오나라 수도였던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 있는 고소대(姑蘇臺). 오왕 부차가 지었다. /바이두백과

 

(2) 두 번째로 실천한 계책

 

고소대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월왕 구천은 문종에게 지시하였다.

“그대의 계책대로 오왕 부차에게 솜씨 있는 목공과 재목을 보내어 거창한 궁실을 짓게 하고 오나라 재물을 탕진하게 하였으니 한 가지 계책은 끝났소. 이제 오나라 그 큰 궁실에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절세미녀를 보내어 오왕 부차의 마음을 흔들어 놔야 겠소. 그대는 과인을 위해 다음 계책을 실행하오”

문종이 대답한다.

“널리 미인을 구하면 혹 인심이 동요 될지 모릅니다. 동자(童子) 백명을 뽑아 국내를 돌아다니도록 해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거든 그 이름과 지명을 적어서 보고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인심의 동요 없이 미인을 다 찾을 수 있습니다.”

구천은 문종의 계책대로 했다. 불과 반년 동안에 미인을 천거하는 보고서가 2천 여 개가 들어왔다. 구천은 다시 사람을 시켜 직접 그 2천 여 명의 미인을 일일이 찾아가 보게 하고 그 중에서 특히 뛰어난 미인을 둘만 뽑아오게 했다.

이리하여 2천 여 명의 미인들 중에서 뽑힌 두 여자가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이었다. 두 여자는 모두 저라산 밑에 있는 서촌(西村) 태생이었다. 서촌에는 시(施)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중 하나를 서시(西施)라 고 했다. 다른 한 미인은 서시와 구분하기 위하여 정단(鄭旦)이라고 했다. 두 미인은 강가의 이웃에 살았다.

구천은 범려에게 분부하여 각기 백금을 갖다 주고 두 미인을 데려 오도록 했다. 구천은 두 미인을 토성 땅으로 보내어 필요한 범절을 배우게 했다. 나이 든 선생들이 두 미인에게 노래와 춤과 화장하는 법과 걸음 걷는 법까지 가르쳤다. 즉 두 미인에게 모든 재주와 기술을 습득시켜서 오나라로 들여보낼 작정이었다. 두 미인은 3년 동안 갖은 재주를 다 배웠다.

범려가 서시, 정단을 오왕 부차에게 바치려고 그녀들을 데리고 갔다. 범려가 오왕 부차의 궁으로 들어가서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동해의 천신 구천(賤臣 句踐)은 태산 같은 성은(聖恩)을 입으면서도 친히 대왕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그래서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여자 둘을 뽑아서 대왕께 보내오니 좌우에 두시고 부리시기 바랍니다”

범려는 이렇듯 월왕 구천의 말을 전하고 서시와 정단을 불러들여 오왕 부차에게 배알 시켰다. 오왕 부차가 보니 한 쌍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듯 했다. 그 후로 오왕 부차는 천하절색인 서시와 정단을 총애했다. 그러나 요염하고 비위를 잘 맞추기는 정단보다도 서시가 월등했다. 이리하여 서시는 노래와 춤을 혼자서 맡아 하다시피 했다. 서시는 고소대에 거처하면서 마침내 오왕 부차의 사랑을 독점했다.

오왕 부차는 서시를 위하여 관왜궁이라는 새로운 궁을 짓고, 거기에 사람이 걸으면 부드럽고 아늑한 음향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향섭랑이라는 복도를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에 처음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오왕 부차는 서시를 얻은 후로 고소대로 집을 삼고 춘하추동 때를 따라 흥나는 대로 나가서 놀았다. 이리하여 오왕 부차는 오궁으로 돌아갈 줄을 몰랐다. 자연히 정사에 태만하였다.

 

▲ 서시(西施) 모습 /위키피디아

 

(3) 세 번째로 실천한 계책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가 서시를 총애하고 밤낮없이 즐긴다는 정보를 듣고 다시 문종과 함께 다음 할 일을 상의했다.

문종이 아뢴다.

“나라는 백성으로써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걸로써 하늘을 삼습니다. 그런데 금년은 가을 수확이 부실해서 장차 곡식이 귀할 듯합니다. 왕은 사람을 오나라로 보내서 곡식을 꿔 달라고 합시오. 하늘이 만일 우리를 도우신다면 오왕은 반드시 우리에게 곡식을 보낼 것입니다.”

월왕 구천은 문종을 오나라로 보냈다. 문종은 태재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바치고 매사를 잘 주선해 달라고 청했다. 태재 백비는 문종을 데리고 고소대에 가서 오왕 부차를 뵈옵게 했다.

문종은 오왕 부차에게 금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다는 사정을 이야기 하고, 곡식을 꿔달라고 청했다. 내년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즉시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비의 건의를 듣고 곡식 만석을 월나라에 보내기로 하였다. 문종은 오나라 곡식 만석을 수십 척의 배에 싣고 월나라로 돌아왔다. 월왕 구천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즉시 방방곡곡 가난한 백성들에게 오나라 곡식을 나눠줬다. 백성들은 모두 다 월왕 구천의 은덕을 칭송했다.

그 이듬해 월나라는 크게 풍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이 문종에게 묻는다.

“이제 오나라에 곡식을 갚지 않으면 신용을 잃게 되고, 오나라에 곡식을 갚으면 이는 우리 월나라의 손해라.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문종이 대답한다.

“곡식 중에서 상등품만 가려내어 솥에 약간 쪄서 보냅시오. 오나라는 우리가 보낸 곡식이 상등품인 걸 보고 반드시 뒀다가 내년 봄에 씨로 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계책한 대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월왕 구천은 문종의 건의대로 상등품을 살짝 쪄서 오나라로 보냈다. 오왕 부차가 곡식이 상등품인 걸 보고 기뻐하며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다음 해에 오나라 백성들은 다 월나라 곡식을 심었다. 마침내 오나라는 크게 흉년이 들었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아마 오나라 토질이 월나라 토질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커니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월나라가 곡식을 살짝 쪄서 보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참으로 문종의 계책은 지독했다.

 

손봉균씨는
국토교통부에서 30년간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행정고시 19회에 합격. 전 국토지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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